캐럴 오프 (지은이) | 배현 (옮긴이) | 알마 | 2011-01-26 | 원제 Bitter Chocolate: The Dark Side of the World's Most Seductive Sweet



초콜릿에 얽힌 추억 1.

초콜렛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발렌타인데이... 사실, 그 이전의 어릴적 내 기억 속에 초콜렛이란 건 없다. 사실 먹어보기야 했을 터이고, 과자에 발라져 있는 초콜렛까지 치자면 내 기억이 허락하는 정도를 넘어서 정말 꼬꼬마 시절부터 경험이야 했겠지만... 내 기억속의 초콜렛은 어쩌면 코코아에서부터 시작할 지도 모르겠다. 코코아와 초콜렛이 한집안 두 가족이라는 건 아주 나중에 알았지만 말이다. 초콜렛이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판형 초콜렛이나, 키세스 같은 개별 포장의 초콜렛은 '교회 오빠'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현대판 레알 사전 버전으로 하자면, 80년대 이은정에게 초콜렛이란? - 좋아하는 교회 오빠에게 어떻게 하면 더 이쁘고 더 특색있는 초콜렛 무더기를 안겨줄 지 고민하게 만드는 발렌타인데이의 소모품... 1년에 딱 한번, 그 날 이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초콜렛...


초콜릿에 얽힌 추억 2. 

회사에 갓 입사했을 때 우리팀엔 아담 사이즈의 이쁘장한 대리가 하나 있었다. 무척이나 스타일리쉬 하면서 순대국이라든가 부대찌개 따위와는 도통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었고, 실제로도 뜻이 맞는 극소수의 사람들과 주로 밥을 먹으러 다녔고, 피자나 스파게티를 먹으러 가거나, 버거킹에 자주 갔던 것 같다. 우연치 않게 함께 하루짜리 교육을 받으러 강남에 같이 갔었는데, 그 때 난 TGI Friday 라는 패밀리레스토랑에 처음 가봤고, 케이준 샐러드라는 걸 처음 먹어봤다. 그 당시 핑크빛 꽃으로 디자인된 'LG Lady Card'를 테이블에서 내밀며 점심을 사주는 모습을 보며, 나도 저렇게 후배를 위해 이렇게 멋진(!) 식당에서 카드를 턱 내밀며 밥을 사주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가슴 설레기도 했었다.(지금 생각하니 진짜 별 거 아니었는데... 쩝)

어쨌든, 그런데 그 대리님의 책상 서랍엔 늘 초콜렛이 들어 있었다. 가끔은 그 초콜릿을 따뜻한 미소와 함께 나누어주기도 했었는데, 난 그 때 초콜렛을 '상복'하는 사람을 처음 보았다. 그냥 발렌타인 데이 때나 먹는 달콤쌉싸름한 군것질, 많이 먹으면 살을 찌게 하는 나쁜 군것질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초콜렛이, 누군가에게는 그 사람의 특성을 규정짓는 특별한 '음식'이 되고, 더 나아가 나와는 다른 세계에 속한 어떤 사람을 규정 짓는 특별한 의미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어쨌든, 나와 초콜렛은 그닥 밀접한 관계는 아니다. 다만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케이크나 과자 류를 집어들 때 가끔씩 함께 먹게 되는 양념과 같다고나 할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초콜렛의 역사를 역사적, 지리적, 문화적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한 '초콜렛의 사전'과 같은 책이다. 사실, 이미연이 어떤 남자의 바바리 속에 들어가서 쉴 새 없이 눈웃음을 날리던 선전 때문에 우리에게 초콜렛의 대명사는 '가나 초콜렛'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사실, 초콜렛은 '가나'가 최고이자 원조가 아닐까라는 오해를 했었다. 이건 다 이미연 때문이다...라고 하면 좀 웃기겠지만. ㅋㅋ

남아메리카의 고대 제국에서 시작한 카카오 재배와, 카카오를 둘러싼 전쟁들,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으로 옮아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카카오 농장의 노예 노동, 아동 착취까지... 카카오에 대해서 전혀 몰랐던 많은 것들이 흥미롭게 설명되고 있어서 매우 두꺼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재미나게 읽었다. 블러드 다이아몬드 못지 않은 블러드 카카오랄까. 공정무역커피 못지 않게 공정무역초콜렛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에서는 연약한 아이들이 자기들이 만드는 카카오가 어떻게 소비되는 줄도 모르고, 그것을 어떻게 먹는 지도 모르는 채 아무런 댓가도 받지 못한 채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걸 생각한다면, 무심코 집어 드는 초콜렛 하나, 핫초코 한모금도 쉬이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하나 새롭게 안 사실은 라스카사스 신부에 대한 것이다. 라스카사스는 1512년 사제 서품을 받아, 아메리카의 최초의 사제가 된 사람이다. 그 당시 스페인은 그라나다를 무력으로 함락하고 무슬림을 폭력에 의해 카톨릭으로 개종시켰듯이, 남아메리카의 인디오들도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라틴어로 개종 권유문을 낭독하고 거부하는 경우 산 채로 화형에 처하는 등 잔인한 살육을 자행했고, 설사 기독교로 개종한다 하더라도 그들을 열등한 존재로 간주하여 노예로 부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라스카사스 신부 역시 아메리카 대륙의 선교를 위해 그곳으로 가서 처음엔 노예들을 당연히 부리며 선교의 임무를 수행하다가, 인디오들의 비참한 현실을 목도하고는 완전히 변화하여 인디오들의 권리를 위한 투쟁을 전개하고, 본국에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때로는 저항하기도 하면서 선교의 임무를 수행했다. 어찌 보면, 남아메리카 해방신학의 기원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처음엔 기득권 세력의 저항도 거셌지만, 결국 1530년, 스페인 국왕은 라스카사스의 청원을 받아들여서 신대륙에서 노예제도를 폐지하도록 했다고 한다. 과테말라의 치아파스의 주교가 된 이후에는, 노예를 즉각 석방하지 않는 식민정복자들에게는 성체성사를 베풀지 말도록 지시할 정도로 과격한 정책을 펴기도 했다. "인디언들 또한 우리들의 형제이며, 그리스도는 그들을 위해서도 자기 생명을 바쳤다."-라스카사스

과연 하나님은 누구의 하나님인 지, 종교의 역할은 어떤 것인지 지난번 읽었던 책과의 연장선 속에서 다시 한번 고민을 해보게끔 해준 존재 라스카사스 신부. 누군가가 평전을 썼다고 하는데, 우리 나라에 번역이 되어서 나오면 참 좋겠다.



"이처럼 그들의 생활은 개선되었지만 마야인들은 여전히 원두 재배 이상의 것은 하지 못한다. 초콜릿 제조는 다른 이들의 몫이다. 유럽의 세관 장벽이 가공식품 수출을 가로막고 있다. 소비자 만족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오로지 원료 수입만 허용된다. 관행이 바뀌어 마야인들이 가공식품을 수출하게 된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들의 이름을 딴 판형 초콜릿을 살 만큼 부유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p.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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