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경 (지은이) | 오마이북 | 2013-01-31



7명의 석학이 들려주는 희망은 어떤 것일까. 그 석학들의 면면이 마음에 들어서 장바구니에 넣어놓고도, 왠지 딱딱하고 재미 없는 원론적인 이야기들만 어설픈 번역체로 나열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 계속 미루고 있었다. 그런데 다시 책 소개를 자세히 살펴보니, 일단 대담집이었고, 그 인터뷰어가 한국인이었으며, 그 인터뷰이가 직접 정리하는 책이라는 것에 다시 호기심을 느꼈다. 그럼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재미가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감에 책을 골랐다.

과연, 노엄 촘스키가 말하는 민주주의와 로버트 서먼의 쿨한 혁명 이야기를 출근 길 지하철 안에서 읽다가 내리는 역을 놓칠 뻔 했고, 지하철에서 내려 걸어오는 15분 동안 그 여운을 느끼느라 음악도 듣지 않고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지금 잘 살고 있는가'를 되뇌이기만 했다. 심지어 노엄 촘스키 교수가 크레인 위의 김진숙 지도위원과 나누었던 교감, 그리고 김진숙 지도위원의 답장을 읽으며 코끝이 찡하기까지 했다. 

로버트 서먼의 'Cool Revolution' 역시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분노와 증오가 어우러진 혁명은 유사 이래 단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그의 말에 대한 진위 여부를 떠나서, 지금 우리가 처한 사회에서의 변혁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를 생각한다면 Cool Revolution 이 의미하는 바를 충분히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전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더이상 없으며 결국 모두의 파멸만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군대에서 배우는 전쟁 서적에서는 역사적으로 볼 때 전쟁으로 인한 사상자는 95%가 군인이라고 나오지만, 현대 사회의 전쟁에서는 95%의 사상자가 민간인이라는 그의 지적을 우리 모두 잘 새겨봐야 한다. 그러면서 재미난 이야기를 하는데, 여성이야말로 차가운 영웅이라고 서먼 교수는 이야기한다.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박근혜는...? 서먼 교수의 대답은 이렇다. 여성은 여성을 지지해야 하는데, 그것은 여성성을 가진 지도자를 의미한다. 사라 페일린의 경우는 여성이었지만, 그는 남성성을 지닌 여성이었다. 그렇다면 박근혜의 경우에 대해서도 명쾌한 결론이 나오지 않을까. 하지만, 여성인 나는 여전히 과연 여성성이 Cool Revolution 에 도움이 되는 지 잘 모르겠다. 단지 역사적으로 볼 때, 남성에 비해 좀더 평화적인 것만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육체적 특성으로 인한 것이지 정말 여성 안에는 내재적인 평화 유전자가 존재하는 지에 대해서는 섣불리 동의하기가 어렵다. 난 여자이지만 여자를 믿을 수가 없다! ^^

그 이후의 대답 역시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조지 레이코프의 '승리하는 프레임'은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이후 선거철이면 수도 없이 듣게 되는 '프레임'의 실체는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리해주는 느낌이었다. 물론, 나도 그 책을 읽었기에 프레임이란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프레임을 선점해야 하고, 상대방의 프레임에 끌려가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지만, 그것이 현실 사회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제대로 된 프레임을 선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는 아무도 알고 있지 못한 듯 했다. 알면서도 맥없이 당하는 상황이랄까. 하지만, 그가 얘기하는 프레임은 어려운 게 아니었다. 우리만의 언어들을 다시금 정의해 내야 하는 것, 그러면서 가장 근본이 되는 도덕적 프레임을 고수하는 것, 그렇게 긍정의 프레임을 만들어내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 외에, 경쟁의 사회에서 행복이 무엇인 지를 고민해 보게 만든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자연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 피터 싱어, 즐거운 저항을 보여주는 코넬 웨스트, 생명의 숭고함을 웅변하는 반다나 시바...

반다나 시바와의 대담을 읽으면서는 가슴이 참 아팠다. 

우리 나라의 대표 기업 중 하나인 포스코가 인도에 투자를 하고 자원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모양이다. 사실, 상사류의 대기업들은 기존의 무역업에 안주하지 않고 해외의 자원 개발에 뛰어든 지 꽤 오래 되었으니, 포스코도 예외일 수는 없을 터. 그런데 그 와중에 인도의 마을 하나를 도로로 뒤덮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그들에 대한 철거와 이주 과정에서 큰 반발에 부딪혔다. 그들은 시위를 했으나, 국가와 기업이 자행하는 폭력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고, 그 와중에 어린 아이와 여자들이 죽임을 당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반다나 시바는 이렇게 우리에게 묻는다. "여러분은 인도에서 사람을 죽이고, 그 죽음에 기초한 번영을 얻고 싶은가요? 우리는 하나의 인류입니다. 이는 '나는 오른손의 번영을 돕기 위해 내 왼손을 자를 거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한국인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더불어 강정마을과 밀양, 평택 대추리, 양양댐, 그리고 용산을 떠올리게 된다. 자국민에게도 똑같은 폭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하는 사람들인데 저개발국가의 약자들에게야 오죽하겠는가. 과연 우리가 추구하는 번영은 어떤 것인가?

세계적 석학들이 들려주는 인문학의 향연이랄까. 책을 덮었을 때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책 중의 하나이다. 발동 걸린 김에, 사둔 지 한참 된 노엄 촘스키의 책을 꺼내서 읽어야겠다.


[본문 중에서...]

미국 헌법제정회의(1787년 5월)에서 이런 말이 오갔어요. "만약 우리가 진정한 민주주의를 갖는다면 그 속에서 대중의 다수는 그들의 의지를 표현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가난한 사람이 다수가 될 수밖에 없고, 그들은 부자들의 재산을 빼앗는 데 표를 쓸 것이다. 농지를 다시 구획하는 토지개혁 등을 통해 그들은 땅을 나눌 것이다." 헌법 제정자들은 그런 일이 벌어지면 안 된다고 목청을 높였고 다수가 권력을 누리는 것을 허락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죠.(p.40, 노엄 촘스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자도 빼고 노예도 빼고 자유를 가진 남자들하고만 토론했습니다. 그는 아테네에서 '다수가 지배하는 일이 생긴다면?'이라는 고민을 했습니다... 시간을 뛰어넘어 아리스토텔레스와 매디슨은 같은 질문을 마주했습니다. 하지만 답은 정반대 방향으로 도출됐어요. 아리스토텔레스의 결론은 불평등을 감소하는 것입니다. 그는 복지국가를 이루는 법이 답이라는 데 도달했어요. 모든 사람들을 본질적으로 중간 계급으로 만들어야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p.40, 노엄 촘스키) 

나는 한국 사람들이 그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1980년대, 그때 한국인들은 잘 조직됐고, 함께 모였고, 열심히 싸웠어요. 매우 용감하게, 매우 효율적으로 미국의 지지를 받고 있던 잔혹한 독재정권을 타도하고자 일어났습니다. 마침내 무너뜨렸죠. 이 땅에 대단한 민주적 혁명이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 바람을 불러일으켰죠. 그때 한국인들은 누구에게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지 않았고, 오직 그것을 하고 있을 뿐이었고 해냈습니다. 기회는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많아요. 한국에는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래도 예전의 독재만큼 심각한 것은 아니잖아요? 할 일이 수없이 많이 있으며, 당신들은 오직 당신의 역사 속만 들여다보면 됩니다. 그 속에 답이 있습니다. (p.42, 노엄 촘스키)

선거를 포기하면서 그 공간을 그저 폭로의 공간만으로 활용하면 안 됩니다. 이는 권력의 키를 최악의 인간들에게 내주는 겁니다. 우리는 덜 나쁜 악마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으며, 완전히 새로운 것을 원한다고 말하면서 이상주의자가 되는 것은 좋지 않아요. 이는 롬니 같은 이들의 실체와 또 그네들이 주장하는 경제정책의 파괴성, 그리고 군대에 대한 멍청한 자세를 분별력 있게 보려 하지 않는 태도예요. 차이점을 살펴봐야 합니다.(p.58, 로버트 서먼) 

증오에 사로잡힌 오늘, 증오는 탐욕과 함께 한다. 세상의 탐욕과 증오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각자의 내면에 있는 탐욕과 증오부터 조절해야 한다. 거대 자본이 못되게 굴더라도 우리 안의 분노를 그들이 떠안을 이유는 없다. (p.67, 로버트 서먼)

전쟁으로 해결되는 일은 없습니다. 핵무기를 가져도 사용할 수가 없죠. 왜냐하면 그 누구도 승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양쪽 다 파멸하죠. 이렇게 극단으로 치달으면 결국 전쟁을 멈출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것이 전쟁이 만들어내는 결말이며, 거대한 힘을 가진 그 어느 편도 상대를 무찌를 수 없다는 진실입니다. (로버트 서먼)

리처드 슈로브 "한 사람이 고요를 발견하면 세상은 그만큼 더 고요해지죠. 한 사람이 조금 더 분명하게 세상을 대하게 되고, 그렇게 맑아지면 세상은 그만큼 더 맑아집니다."

정부가 개입해서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곳에 정부의 책임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그저 시장이 조절할 것이다 또는 자연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할 수만은 없습니다. 타인이 배를 곯고 있는 것이 우리 책임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거죠. 우리는 이러한 일들에 대해 진정으로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악에 대항하면 그 악을 막아낼 수 있고, 착한 정의를 이루고자 하면 그 선을 행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p.180, 피터 싱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나는 가난한 나라들에게 주는 도움의 양을 엄청나게 늘릴 겁니다. 지구의 빈곤을 줄일 거예요. 나는 공장식 축사를 없앨 겁니다. 그래서 동물이 비록 도살되어 고깃덩이가 되더라도 죽기 전까지는 짐승다운 생을 살게 하겠어요. 그리고 나는 불필요한 고통을 줄일 겁니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게에서 의료 서비스가 이를 정말로 필요로 하는 사람들, 삶을 절박하게 이어가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사용되는 것을 볼 겁니다.(p.186, 피터 싱어)

마지막 나무가 죽고, 마침내 온 강이 오염되고 마지막 물고기가 잡힌 다음에야 인간은 돈을 먹고 살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p.  아메리카 인디언)

당신의 목소리를 찾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타인에게 용기를 북돋워줄 수 있는 거죠. 그렇게 힘을 채워주는 자가 진정한 블루스맨, 블루스우먼이에요. 이런 사람들의 노래는, 비록 어둠에 대한 것일지라도 어둠 속에서 밝은 빛을 줍니다. 그래서 계속 싸우고 사랑하고 웃음 짓고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거예요. 우리에겐 이와 같은 희망이 필요합니다. 이는 낙관주의가 아닙니다. 블루스는 낙관적이지 않아요.

오늘날 단 10개의 기업이 230억 달러 규모의 상업용 종자 시장의 32퍼센트를 점유하고, 유전공학적으로 조작된 변형종자 시장의 100퍼센트를 통제하고 있답니다. 이런 기업에서 유종한 종자들의 경우 그 종자를 키우기 위해 꽇ㄱ 구비해야 할 살충제가 한 쌍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이들은 결국 농약 시장까지 장악하는 셈이죠. (p.241, 반다나 시바)

새로운 교배 종자들은 해충에 취약하기 때문에 살충제를 더 많이 필요로 합니다. 가난한 농민들은 종자와 농약 모두를 같은 회사에서 외상으로 구입해요. 그러다가 해충이 마구 들끓는다든지 불량 종자가 대규모로 섞이면 그 해 농사를 망치게 됩니다. 그럼 농부들은 빚내서 구입한 그 살충제를 먹고 죽습니다. 인도 와랑갈 지역에서는 1997년에 400명이 자살했어요.(p.242, 반다나 시바)

농사는 땅과 사람을 살리는 순환 활동이 아니라 단순하고 기계적인 노동이 됐습니다. 여성은 공장으로 이동하고, 아이들은 공짜 영양원을 잃었죠. 수출 목표를 달성하여 외환소득을 늘릴 잉여농산물을 얻어내려는 정책은 여성, 어린이, 환경의 조건을 악화시켰어요. 간디가 말하길, 어떤 결정을 하든지 가장 약한 마지막 사람을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말을 마지막 어린이를 생각하라고 바꾸고 싶습니다.(p.254, 반다나 시바)

문득 2011년 늦가을에 인터뷰했던 생태학자 조애나 메이시 선생의 호소가 떠올랐다. "내가 만약 밍크라며, 내가 만약 바위라면, 내가 만약 우라늄이라면...... 이렇게 명상해 보세요. 우리 인간은 이런 상황에 스스로를 놓고 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있습니다." 그렇게 집중하며 명상하는 동안, 내 가슴은 제주 강정마을 구럼비바위의 호소로 뜯겨나갈 듯했다. 젖이 불어 어기적 서 있는 젖소의 고통 또한 내 아이에게 처음 젖을 물리던 그 때의 진저리 나는 아픔으로 다가왔다.(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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