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엄 촘스키 (지은이) | 노승영 (옮긴이)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1-11-09 | 원제 Hopes and Prospects


얼마 전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라는 책을 보면서 촘스키가 쓴 책이 생각났다. 한참 전에 사두었으나 이런 저런 이유로 읽지 않고 미뤄두었었는데, 촘스키와의 대담 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의 가지들을 끄집어낸 덕분인지 빨리 읽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촘스키가 얘기했던 민주주의와 촘스키가 바라는 세상, 그리고 세계의 경찰인 양 행사하는 미국의 세계 정복 의지에 대한 촘스키의 좀 더 많은 얘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예상대로, 이 책의 절반 내용을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이야기이고, 나머지 절반은 미국과 라틴아메리카의 이야기이다. 팔레스타인과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이야기들을 씨실로 해서 광범위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의 이야기를 엮어서 이른바 서구권에서는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이야기들을 끄집어내 고발하고 있다.

촘스키는 유대계 러시아 이민자 2세이다. 따라서 그의 관심의 영역이 전지구적임은 어쩌면 그의 삶의 배경 측면에서 설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그 관심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더 집중될 수밖에 없는 것도 당연할 수 있다 하겠다. 그는 직접 팔레스타인도 방문을 했었고, 이미 오래 전 이스라엘·팔레스타인·미국과 관련한 책을 통해 세 국가의 실타래처럼 얽힌 갈등의 고리와,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두 국가 간의 거래와 지원 등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그 뒤로도 그의 발언은 쉬지 않았으며, 그 결과 유대인이면서도 이스라엘 입국을 거부 당하는 일까지 겪어야 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말하는 '합법적'이란 '불법적이지만 이스라엘 정부가 승인하고 미국이 묵인한'이라는 뜻입니다."

이 세 국가 간의 관계에 대한 촘스키의 관점은 이 한 문장에 압축적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한쪽에서는 팔레스타인을 테러 집단을 규정하고 이스라엘의 군사적 행위를 정당방위로 주장한다. 그러면서 계속 평화를 파괴하는 건 팔레스타인 쪽이라고 한다. 이 내용은 어쩌면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배웠던 내용이기도 하고, 일반적으로 서구의 언론에 의해서 보여지는 관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한다면 과연 누가 침략자인지부터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시오니즘으로 대표되는 이스라엘의 선민의식과 자기 중심적 세계관이 여전히 서구 세계를 지배하고 있음은 아닌가? 성경 속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갈리리 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광야를 건넜던 고난의 행군을 지금의 세계로 그대로 옮겨온 것이 팔레스타인 지역의 분쟁 아닌가.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이 약속하신 자신의 땅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이 팔레스타인 입장에서는 가당키나 한 일인 것인지. 촘스키는 그렇다고 어떤 해법을 내놓지는 않는다. 다만 누군가의 암묵적 동조 혹은 지원 하에 힘의 균형은 이미 기울었고, 따라서 지금과 같은 역학관계에서는 결국 한쪽은 불리할 수밖에 없는 전쟁 게임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조용히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라틴아메리카과 미국과의 관계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이제는 라틴아메리카 여러 나라들에 대한 미국의 정치 개입과 친미 정권 수립을 위한 그들의 비밀스런 지원, 폭력적 강압 또한 이제는 완전히 새로운 사실은 아니다. 이미 로메로 주교의 죽음과 칠레의 아옌데 정권 등에서 대리인을 통한 미국의 지배를 강화하고자 한 미국의 노력은 많이 알려져 있다.

닉슨이 말합니다. "칠레에서 우리의 주 관심사는 (아옌데가) 입지를 다지고 이것이 전세계에 그의 승리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이다. 남아메리카의 예비 지도자들이 자기들도 칠레처럼 양다리를 걸칠 수 있다고 생각하도록 내버려둔다면 골치 아픈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남아메리카가 이렇게 할 수 있다는, 이렇게 하고도 무사하리라는 인상을 심어주어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전세계가 우리를 우습게 볼 것이다." 심지어 주류 학계에서도 미국이 민주주의를 지지한 것은 전략적·경제적 이익에 부합할 때뿐이라고 인정합니다. (p.156)

라틴아메리카에서 미국의 주도권이 약해지게 되면, 이는 곧 세계에 대한 미국의 주도권 약화를 의미 했기에 그들은 아메리카 대륙 내에서 그 어떤 정권도 자신들에게 대립각을 세우는 것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국가에 아이티 또한 속해 있다는 것을 나는 전혀 몰랐다. 얼마 전부터 아이티의 어린 소녀 한 명을 후원하고 있는데, 그 아이가 살아가는 나라에 대해서 내가 너무도 많이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갑자기 미안해졌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가난과 잦은 자연재해로 신음하는 그 나라는 아직도 미국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스스로 떨쳐 일어섰던 기억마저도 이젠 희미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가슴 아팠다. 그저 한달에 한번, 작은 소녀 하나에게 생활비 보내는 일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다라는 것이 미안하지만, 이제라도 좀 더 그 나라에 대해 알아보고 계속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게 그 아이가 살아가는 나라에 대한 나의 도리이리라.

그는 희망에 대해서도 전망에 대해서도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 않는다.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에서도 이렇게 말했었다.

나는 한국 사람들이 그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1980년대, 그때 한국인들은 잘 조직됐고, 함께 모였고, 열심히 싸웠어요. 매우 용감하게, 매우 효율적으로 미국의 지지를 받고 있던 잔혹한 독재정권을 타도하고자 일어났습니다. 마침내 무너뜨렸죠. 이 땅에 대단한 민주적 혁명이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 바람을 불러일으켰죠. 그때 한국인들은 누구에게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지 않았고, 오직 그것을 하고 있을 뿐이었고 해냈습니다. 기회는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많아요. 한국에는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래도 예전의 독재만큼 심각한 것은 아니잖아요? 할 일이 수없이 많이 있으며, 당신들은 오직 당신의 역사 속만 들여다보면 됩니다. 그 속에 답이 있습니다.

결국은 우리들 모두가 진실을 제대로 알아가는 것이 일의 시작이 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 촘스키도 지속적으로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발언을 하고 자신의 생각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닐까. 가끔씩 느끼는 것이지만, 결국 정치란 멀리 있지 않고 내가 살아가는 삶 자체가 정치이고, 일상 곳곳으로 정치의 영역은 이미 들어와 있다는 걸 사람들이 인식하길 바란다. 내가 쓰는 물건 하나가 어디서 오는 지 생각해 보는 것, 뉴스에서 전해오는 소식 하나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고 그 보이지 않는 이면을 떠올려 보는 것, 가만히 있어도 들리는 승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힘에 의해 억눌린 약자의 소리를 듣기 위해 조금만 더 몸을 숙여 보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일 게다. 또한,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 곳곳에 퍼져서 이제는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공간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날 것 그대로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이 하나의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을 등에 업고서 대통령을 납치하고 의회와 대법원을 비롯한 모든 민주주의 기구를 해산했으나 이내 민중 봉기로 무너진 군사 쿠테타 지도부를, 차베스 대통령이 그해 말에 사면한 사실도 좀처럼 주목을 받지 못햇습니다. 비슷한 일이 벌어졌을 때 서구가 차베스의 모범을 따를 가능성은, 좋게 말해 비관적입니다. 이 모든 사실은 '문명의 충돌'을 이해하는 데 실마리를 던집니다. 이 실마리를 마음속에 간직하기 바랍니다. (p.190)

어쨌든 그렇게 강하게 억누르며 이스라엘과 협공작전을 펼치고 있으나 팔레스타인은 여전히 잘 싸우고 있다. 그리고 라틴아메리카는 시간이 흐를수록 쿠바로부터 시작하여,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브라질 등등 점점 미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을 해왔고, 그것은 점점 거스를 수 없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남에게 '악의 축'이라며 함부로 손가락을 치켜올렸던 그들은 과연 '악행'에서 자유로운 역사를 만들어왔는지 진지하게 자문해 보아야 할 때가 오고 있다면 과장일까.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며, 이스라엘 못지 않은 선민사상으로 무장한 그들이 과연 우리의 후손들의 세상에서도 똑같은 위상을 지니게 될지 그저 궁금할 따름이다.


[본문 중에서...]

9.11은 잔인무도한 테러였지만, 그보다 더한 만행을 얼마든지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알카에다가 초강대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미국 정부를 전복하려 한다고 가정해봅시다. 백악관에 폭탄을 떨어뜨려 대통령을 살해하고 사악한 군사 독재 정권을 세우고 5만~10만 명의 국민을 학살하고 70만 명을 잔인하게 고문하고 테러·전복 기지를 건설하여 전세계에서 암살을 자행하고 고문과 살해를 거리낌 없이 저지르는 신나치 '안보국가' 수립을 지원했다고 가정해봅시다. 게다가 독재 정권이 경제 자문을 불러들여 몇 해 안에 미국 경제를 사상 최악의 재앙으로 내몰았으며 자문역들은 노벨상을 비롯한 온갖 영예를 받았다고 가정해봅시다. 9.11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일 아닙니까? 칠레인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굳이 상상할 필요도 없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실제 일어난 일이니까요. 1973년 9월 11일에 일어난 '첫 9.11' 말입니다. 다른 점이라고는 인구에 맞추어 수치를 바꾼 것뿐입니다. 하지만 첫 9.11 이후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당연합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사건들이었으니까요. (p.42)


역사를 통해 수없이 입증된 지배적인 운영 원칙이 여기에서도 관찰됩니다. 정책이 (천명된) 이상에 부합하는 것은 이익에 부합할 때뿐이라는 원칙 말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익'이라는 용어는 자국민의 이익이 아니라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 집단의 이익을 일컫습니다. (p.67)


발언권을 가진 자들은 따로 있습니다. 지금껏 다져진 관행을 보면 그런 자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 가장 정확한 지표는 (앞에서 언급한) 정치경제학자 토머스 퍼거슨의 '정치투자이론'으로, 선거는 투자자 집단이 나라를 주무르기 위해 제휴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p.145) 


이스라엘 카츠 교통부 장관은 "이스라엘 현 정부는 유대와 사마리아에서의 합법적 정착 활동을 동결하는 행위를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라고 선언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말하는 '합법적'이란 '불법적이지만 이스라엘 정부가 승인하고 미국이 묵인한'이라는 뜻입니다. (p.248)


부시의 연설문 작가 마이클 거슨은 이렇게 썼습니다. "오바마의 인선에서는 중도뿐 아니라 성숙함이 느껴진다. 결과야 어찌 되든, 오바마는 놀랍도록 옳은 일을 하고 있다." 여기서 '옳은'은 곧 '오른'입니다. (p.296)


레흐 바웬사가 엘살바도르에서 노조 조직 사업을 했다면 '민간인 복장에 중무장한 사람들'의 손에 의해 이미 실종자 명단에 올랐거나 노조 사무실에 날아든 다이너마이트에 산산조각 났을 것이다. 알렉산더 두프체크가 엘살바도르 정치인이었다면 헥토르 오켈리(과테말라에서 엘살바도르 암살단에게 살해된 사회민주주의 지도자)처럼 암살되었을 것이다. 안드레이 사하로프가 이곳에서 인권운동을 했다면 헤르베르트 아나야(독립 단체인 엘살바도르 인권위원회의 수많은 지도자가 살해당했는데 아나야도 그 중 하나다)와 같은 운명을 맞았을 것이다. 오타 시크나 바츨라프 하멜이 엘살바도르에서 자신의 책무를 다했다면 어느 운 나쁜 아침에 엘리트 살인 부대의 총탄을 머리에 맞은 채 대학 캠퍼스 뜨락에 누워 있었을 것이다. (p.365, Guardian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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