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날... 완벽한 시차적응을 해낸 우리 부부. 사실, 시차적응을 못하는 게 이해가 잘 안 갑니다. 일단 비행기 안에서 5시간 이상을 잤는데 파리 도착한 이후 졸리다는 게 이해가 안 갑니다. 그리고 도착한 후 또 여섯시간 정도 지나서 바로 잠자리에 들 수 있는 데다가, 그 뒤로는 그냥 8시간을 내리 잘 수가 있는데 왜 시차 적응을 못하는 걸까요? 몸이 일단 피곤한데 내리 자지도 못하고 한국에서 매일 아침 일어나던 시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새벽에 깨어난다는 게 이상합니다. 잠 많은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시차 부적응자들... 쯧쯧. ㅋㅋ

오늘은 일요일. 9월의 첫번째 일요일. 매달 첫번째 일요일엔 대부분의 박물관, 미술관들이 무료 관람이 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루브르는 분명 도떼기시장일 것이고, 그래서 오르세를 선택. 그래도 공짜는 양잿물도 마신다고, 사람이 많을 수 있으니 오픈 시간에 맞추어 나가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시차적응을 너무 잘하려는 노력 때문이었는지, 눈이 좀 부었군욤. 

오르세 미술관의 대형 시계 전망대... 9년 전과 다르게 완전 리모델링 되었더군요. 훨씬 더 깔끔하고, 고급스러워진 느낌이었습니다. 벽면을 어둡게 하는 게 의외로 분위기를 가라 앉혀서 그림 감상에 더 도움이 되더라구요. 그림의 색깔도 더 도드라져 보이게 해주고요... 


오르세는 내부에서 사진 찍는 게 금지 되어 있어요. 물론, 몰래 몰래 찍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저는 교양있는 대한민국 국민인 관계로... 그림과 상관 없는 2층 난간과 오르세 전망 테라스에서만 찍었습니다. 


오르세 미술관은 9시 30분부터 입장이었는데, 우리는 10분 정도 줄 선 후 거의 제 시간에 들어가서 2시 30분 넘어 나온 듯 합니다. 결정적으로 밥도 못먹고... 그 안에서 먹었어야 했는데, 미처 그 생각을 못했네요. 여튼, 저는 고흐의 그림과 꾸르베의 그림에 폭 빠져서 정신을 못차렸습니다. 그림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더 찾아보고 공부해보고 싶을 정도였어요. 고흐의 붓터치는 정말 실제 그림을 보아야만 느낄 수 있는 것이라 추후에 사진으로 본다 한들 감동이 다시 느껴질런지 모르겠지만, 오르세에서 고흐의 그림을 마주하는 순간의 전율은 잊지 못할 것 같네요.


6개 대륙 -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북미, 남미, 호주 - 을 상징하는 여신상입니다. 낭뜨 지방의 공원에 버려져 있던 것을 발견해서 가져다 이렇게 오르세 앞뜰에 전시해 놓았다고 하네요. 바로 위에 있는 건, 아시아를 상징하는 여신입니다. 가만히 보면, 얼굴 모양이 정말 대륙을 대표하도록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제 오르세 미술관을 봤으니, 다음엔 강을 건너 바로 건너편에 있는 오랑주리 미술관으로 갑니다. 가면서 점심을 때우기로 한 거죠... 그런데, 가는 곳까지 먹을 거 파는 곳이 없더군요. 그런 채로 오랑주리 미술관까지 도착. 허헐.

줄이 10미터 가량... 보니까 검색대 통과를 위한 줄.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밀어붙이기로 합니다. 밥 대신 그림을!!!

오랑주리 미술관에는 모네의 수련 그림 아주 큰 게 네 점이나 걸려 있더군요. 원형의 방을 빙 둘러서 말이죠. 그런데 신혼여행 때 취리히에서 본 그림과 뭐가 다른 건지... 오랑주리 미술관의 수련은, 이제 거의 추상화 경지에 올라선 수련 연작이었어요. 모네가 백내장이 심해지면서 수련 그림 또한 추상화의 특성을 더욱 강하게 띠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오랑주리 미술관도 실내 촬영 금지라 사진은 하나도 없는데, 우리 둘다 너무 배가 고팠었는 지 세상에 외관 사진조차 찍지를 않았네요. ㅋㅋ 사실, 미술관 건물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그림이 중요한 거지. ㅋㅋ


오랑주리 미술관은 콩코드 광장이랑 바로 면해 있습니다. 뒤에 보이는 게 콩코드 광장이구요. 콩코드 광장에는 그 유명한 오벨리스크가 써 있죠. 프랑스의 이집트 학자가 로제타석의 상형문자를 해석해준 고마움의 표시로, 이집트에서 선물로 보낸 오벨리스크입니다. 그러니까 아주 오래된 일은 아닌 거지요. 하지만, 콩코드 광장의 역사는 매우 깁니다.


부르봉 궁전입니다. 오랑주리 미술관 관람을 끝내고 콩코드 다리를 지나 로댕 미술관 가는 길에 바로 만나게 되는 건물이죠. 지금은 국회 건물이라고 하네요. 루이14세가 자신의 딸에게 지어준 궁전이래요. 콩코드 광장을 사이에 두고, 마들렌 교회와 서로 마주보는 형태로 서 있습니다. 마지막 날에 나오겠지만, 마들렌 교회의 건물 역시 28개의 코린트식 기둥으로 빙 둘러져 있어서 전면의 모습은 부르봉 궁전과 매우 유사합니다. 콩코드 광장에 서서 좌우를 바라보면, 마치 똑같은 건물이 서로 마주보고 서 있는 형국이 되는 것이지요. 마치 신개선문과 카루젤 개선문처럼요...


부르봉 궁전 근방까지 전혀 식당을 찾을 수 없다가, 궁전 뒷편에서야 하나의 레스토랑을 발견했습니다. 시간은 이미 3시가 넘었고, 대안이 없으니 무작정 들어가서 앉았으나... 사진은 하나도 없고, 온통 불어로만 써져 있고... 간신히 Beef와 Chicken이라는 것만 짧은 영어로 알아내고 시켰는데, 저렇게 나왔습니다. 소고기는 육회로, 그리고 닭다리는 두개가 덜렁 구워져서... 그리고 샐러드는 베이컨과 치즈가 잔뜩 올라간... 비싸기는 또 어찌나 비싸던지. 뭐,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워낙 고기가 좋기 때문에 사람들이 육회를 많이 먹는다고 하네요. 우리 나라 육회와 거의 유사한 모양으로 나오는 곳도 있고, 저렇게 얇게 사시미 뜨듯 나오는 경우도 있다 하네요. 저 뻘건 소고기 위에 있는 것들은 올리브유에 버무린 허브 가루와 치즈입니다. 저는 처음에 감자인 줄 알았어요. 

이제... 로댕 미술관으로 갑니다...

칼레의 시민들과 이철재...

백년전쟁 중에 위기에 처했던 도시를 구했던 여섯명의 용감한 시민들을 기념하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칼레는 프랑스 연안의 도시구요, 백년 전쟁 시 계속되는 영국의 공격에 칼레 시가 항복을 선언하자 영국의 왕은 시민 대표로 교수형에 처해질 6명을 뽑으라고 명합니다. 이에 용감한 여섯명의 시민이 자원을 하게 되는데, 이 사람들은 이 도시에서 가장 큰 부자, 법률가, 사업가 들이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노블리스 오블리제 아니겠습니까. 여튼, 영국왕의 임신한 왕비의 청으로 결국 사형은 면했는데, 백 여 년이 지난 후 칼레 시가 이 여섯명의 용감함을 기리기 위해 로댕에게 작품을 부탁했다고 하네요. 목에 밧줄을 두르고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건 그 유명한 지옥의 문. 이건 취리히에서도 봤었고, 오르세에서도 봤었는데, 생각해보니 이태리에서도 봤던 기억이...

1880년 미술협회로부터 '파리 장식미술 박물관'의 문 제작을 의뢰 받고는, 단테의 신곡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들었으나, 결국 사용되지 못했다고 하네요. 문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생각하는 사람,입맞춤, 우골리노와 자녀들 같은 작품들이 이미 그 안에 다 들어 있어요. 나중에 그 부분들이 독립적으로 다시 크게 제작된 거죠.

이건 정원 남쪽 끝이에요. 아, 지금 정확히 기억 안 나는데 우골리노와 자녀들 같네요. 단테(Alighieri Dante)의 『신곡』 「지옥편」 33번의 이야기를 토대로 자기 자식들과 함께 지옥에 갇힌 우골리노(Ugolino)와 그의 아들들을 재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제 지식이 짧아 잘 모르겠는데, 오르세에도 똑같은 제목의 조각품이 있거든요. 그런데 좀 형태가 달라요. 로댕이 같은 제목으로 작품을 여러 개 만들었나봐요. 음... 무식해서, 요까지만.

"13세기 이탈리아는 여러 개의 도시 국가로 나뉘어 전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당시 우골리노 백작은 피사(Pisa)의 귀족으로서 권세를 좋아하며 영웅이 되고 싶은 마음에 자기의 당을 배반하고 루지에르와 함께 음모를 꾸몄다. 그러나 루지에르의 배반으로 우골리노 백작은 두 아들과 세 명의 손자와 함께 피사의 탑 속에 감금되었다. 탑의 열쇠는 강으로 던져졌고 그들은 아사상태가 되었다. 아이들의 죽음을 목격한 우골리노는 기아의 고통 끝에 그들의 시신을 먹은 후 마지막 생존자가 되었다. 교회가 금기시한 이러한 행동 때문에 그는 지옥으로 보내졌다." - naver 지식백과

이건 뭐... 말 안 해도...

난 이상하게 발자크상이 멋지더라구요... ^^

로댕은 문인협회로부터 발자크의 기념상을 의뢰 받았는데, 사실보다 아름답게 표현되었던 그 당시의 보편적인 기념상과는 다른 파격적인 모습에 지옥의 문마냥 거부 당했다고 하네요. 로댕이 많이 속상했겠죠. 난 좋은데 왜 그랬을까나...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혁신을 좋아하진 않나봅니다. ㅋㅋ


이것은 바로 Autoolib! 전기차를 충전하는 곳입니다! 물론, 공용 전기 자동차를 말하는 것이지요. 공용 자전거인 벨리브를 타고 다니는 사람도 정말 많이 봤습니다. 이런 건 참 부럽더라구요. 우리 나라는 정말 안 될 사업 아이템 같아 슬프지만서두...

이제 나폴레옹의 무덤을 보러 앵발리드로 Go, Go!!!

아, 근데... 오늘 오르세, 오랑주리, 로댕 미술관 모두 공짜로 봤는데, 군사박물관과 나폴레옹 무덤은 안 된다는 겁니다. 내참... 사람 맘이 간사해서, 계속 공짜로 관람을 하다가 공짜가 안 된다고 하니 뭐 꼭 봐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무덤이 무덤이겠지. 그리고 나폴레옹을 심히 존경해서 꼭 봐야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그래서 그냥 Skip!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건물이 멋진 관계로 그 앞에서 사진을 찍었지요. 저는 앵발리드의 정문을 배경으로 찍었고, 남편은 건물 저 안쪽의 나폴레옹 상이 보이게 찍어달라고 해서 그렇게 찍어줬습니다. 하지만, 너무 멀어서 저게 나폴레옹인지, 사람인지, 고양인지 알 수도 없군요. 사실, 이 건물의 핵심은 저 멀리서도 보이는 황금색 돔 지붕인데 말이죠, 정작 그걸 찍은 게 없습니다. 아쉽지만, 인터넷에서 퍼온 그림으로 대체!


그리고, 이제 에펠탑을 만나러 훠이훠이 걸어갑니다...

이건, Parc du Champ-de-Mars 공원에서 바라본 에펠탑입니다.

사실, 에펠탑 배경으로 사진 찍기 가장 좋은 장소는 공원 반대편으로 언덕에 위치한 사이요궁입니다. 공원에서 오빠를 만나서 차를 타고 사이요 궁 picture-point에 와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날따라 파리의 무서운 10대들이 뭔가 대규모로 모여 있는 바람에 경찰이 출동해 있어서, 오빠는 차를 가지고 근방에서 기다리는 바람에 둘이 함께 찍은 사진은 없습니다. 옆의 관광객에게 찍어달라고 했는데, 그 아저씨가 어이 없게도 우리와 에펠탑을 일직선에 놓고 찍어서, 우리 둘의 머리 위로 에펠탑의 위 1/3 만큼만 보이도록 해놨더군요. 완전 어이 상실... 또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기도 짜증나서 그냥 와버렸습니다. ㅋㅋ

파리에서 가장 맛있다는 베트남 쌀국수 집에 가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한국의 쌀국수보다는 좀 더 국물맛이 진하고, 고기도 엄청 많이 들어 있습니다. 다음날 가이드 말에 의하면, 유학생들에게는 파리를 떠나고 나면 가장 생각나는 곳 중 하나라고 하네요. 주인장 베트남 아저씨가 가난한 유학생들에게 육수를 삶아내고 남은 고기 몇점 묻은 뼈도 선물로 주곤 한답니다. ㅋㅋ 오빠도 종종 가는 단골집이라 하구요, 밖에 줄 서 있는 거 보이나요? 우리도 조금 기다렸는데, 우리가 먹고 나오는데도 줄이 저렇게 서 있더군요. 여튼, 맛있었어요. 쌀국수도 맛나고 무슨 춘권 비슷한 걸 쌈에 싸먹는 것도 맛났어요. 우리 나라에선 그런 메뉴 없었던 듯. 여튼 추릅~ 참고로, 차이나타운 근방에 있습니다.

3시 넘어 점심을 먹고, 쌀국수 한대접까지 다 먹고 배 빵빵해진 채로 집에 들어와 쉬었습니다... 이렇게 파리의 둘째날이 저물었습니다.

'여행 > 2012_Pari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넷째 날(2) - 지베르니, 오베르 쉬르 우아즈  (0) 2012.09.18
넷째 날(1) - 베르사이유  (2) 2012.09.18
셋째 날(2) - 몽생미셸  (0) 2012.09.17
셋째 날(1) - 에트르타, 옹플레흐  (0) 2012.09.17
첫째 날 - 도착  (1) 2012.09.12

우리 사랑스런 아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출발했습니다...

엄마와 아빠가 프랑스로 함께 출장을 간다는 말도 안 되는 말을 믿어주는 나이라는 게 그저 감사할 뿐이죠...^^;;


9월 1일 토요일 11시 25분 출발 비행기를 타고 장시간의 비행 끝에 파리 샤를 드 골 공항에 도착하니 9월 1일 토요일 오후 4시가 다 되어갑니다. 우리 트렁크에 붙여 놓았던 태그가 떨어져 나가는 바람에, 우리 가방을 못알아보고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가장 마지막으로 가방을 집어 들고 오빠를 만나 집으로 왔습니다. 화창한 파리의 날씨~~ 아, 행복하여라...


오빠의 집은, 파리 중심가 생루이 섬 바로 옆의 강변입니다. 9년 전에 살던 아파트에 비하면 궁궐이더군요. 방도 두개나 되고, 욕조까지 있는 목욕실도 있고 말이죠.^^ 오빠 집 측면 유리창으로 내다본 전경입니다. 정말 호젓하죠. 날씨가 화창하면, 센강변에 빛이 반사되어 반짝반짝 아주 이쁩니다...

우리가 가져간 라면으로 저녁을 가볍게 때우고, 일단 걸어다닐 수 있는 근방으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관광책자에 보면 마레 지구가 꼭 들러야 할 명소로 나와 있는데, 우리는 그 마레지구를 거의 매일 간 듯 합니다. 오빠 집 뒤가 바로 마레지구이다보니 수시로 가로지르게 되더라구요. 첫날도, 마레지구를 가로 질러 가서 바스티유 광장으로 갔습니다.


바스티유 광장의 혁명기념탑입니다. 이 자리에 바스티유 감옥이 있었고,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면서 파리 대혁명은 시작이 된 거지요. 그러나 그 당시 바스티유 감옥에는 죄인이라고는 달랑 7명이 있었고, 7명은 정신이상자와 잡범들이었다고 합니다. 이미 루이 16세는, 힘으로는 더이상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큰 물줄기를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고, 따라서 정치적인 탄압이나 힘을 바탕으로 한 억압책은 펴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바스티유 습격으로 풀려난 그 7명의 죄수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프랑스 다른 지역의 감옥에 서로 다른 이유로 다시 수감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 혁명 기념탑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기념하기 위한 탑은 아닙니다. 저 혁명기념탑은 '7월혁명 기념탑'으로 1830년 7월 혁명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고 합니다. 루이 16세의 동생이었던 샤를 10세가 입헌군주제를 인정하지 않고,  기본권을 제한하자, 이에 반대한 혁명으로 그 결과 루이 필립이 왕에 오르는 부르주아 혁명이었습니다. 7월 27일부터 29일까지 3일 간 시가전이 벌어졌으며, 그 때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는 기념탑이 바로 이 바스티유 혁명기념탑입니다. 탑 꼭대기, 황금빛의 천사가 하늘로 막 올라갈 것 같은 모양입니다. 

그 뒤에 보이는 게 바스티유 오페라 건물입니다. 미테랑 대통령 시절 만들어진 것이지요. 한 때 정명훈이 바스티유 오페라단의 지휘를 맡기도 했었지요. 들어가보진 않았습니다... 


다시 마레지구 쪽으로 걸어오다가, 보주 광장 입구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보주 광장은 수도 없이 지나다녔으면서, 막상 제대로 된 배경 사진은 마지막날이 되어서야 찍었습니다. ㅋㅋ


다시 걸어오다 만난 곳은, 바로 파리 시청사!


파리의 햇빛이 너무 눈이 부셔서, 선글라스를 낀 나도 눈이 부실 정도... 그러니 남편의 저런 어중간한 눈은 널리 이해해 주시기를... 지난번에 왔을 땐 겨울이어서, 이 앞의 스케이트장을 보며 재밌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그냥 광장으로. 거리의 악사들이 공연을 하기도 하고, 여행객들이 앉아서 쉬기도 하는 곳.


생 주느비에브 상입니다. 뒷모습이 보이네요... 생 주느비에브는 파이의 수호 성녀입니다. 예전에는 저 상이 세워진 곳이 파리의 시 경계였다고 합니다. 그 경계에 서서 동쪽을 바라보며 파리를 지켜달라는 얘기겠지요. 팡테옹, 생 데티엔 뒤 몽 교회 등 주느비에브 얘기가 여기저기 나오길래 사진 한번 찍어봤습니다.


오호호... 시테섬의 노르트담이 보이는군요. Notre-Dame 은 성모마리아 혹은 성모의 집을 뜻한다고 하네요. 따라서 프랑스 곳곳엔 노트르담 성당이 엄청 많습니다. 그니까 저 뒤에 보이는 건 당근 Notre-Dame de Paris. ^^


Pont Sully 에서 만난 거리의 악사. 노래 잘하고, 잘 생기고, 쇼맨십까지 뛰어났던 아저씨. 이 아저씨를 여행 막바지, 퐁피두에서 다시 만나니 무척이나 반갑더군요.^^ 


이건 Pont Sully에서 찍은 파노라마 컷. 옵티머스 LTE2 짱!!! ^^


이렇게 날은 어두워지고, 우리는 집에 들어와서 첫날을 마무리했습니다... 

4월 7일, 무사히 결혼식을 마치고 8일 1시 50분 비행기로 인천공항을 출발했습니다. 프랑크푸르트에 내려서 3시간여를 대기, 다시 프라하를 향해 날아가야 하는 긴 여정... 하지만, 여행이란 늘 그렇듯 설레임과 기대로 부풀어 들뜬 가슴을 주체할 수가 없습니다. 종철씨가 태워다줘서 편하게 공항에 도착... 이제, 드디어 '신혼여행' 이라는 걸 한번 떠나가 볼까요...

 

비행기 안이다... 난 거의 사망 수준이었는데 남편께서는 영화도 두 편 다 보고 음악도 듣고 잘 버티며 갔다... 확실히 결혼식이라는 것은 피곤한 거다. 이렇게 비몽사몽 상태로 11시간을 갔으니... ㅋㅋ 이게 누렇게 뜬 내 모습이다... 이 와중에 나름 찍어보겠다고 애썼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프라하로 가기 위해 4시간 동안 대기 중이다... 간단하게 쇼핑센터 구경도 하고, 카메라 메모리도 하나 샀다. 그래도 명색이 독일이니 맥주도 한잔 마셔주고... 그래도 시간이 남아, 남편께서는 공항에서 산 "꿈꾸는 책들의 도시"를 열심히 읽고 계신다. 두 권짜리 책인데, 아직 1권의 반도 못 읽었다. ㅋㅋ

 

호텔이 위치해 있던 홀레쇼비츠 지하철역... 이제 드디어 첫날 투어를 하러 나가는 길이다. 남편, 아주 신나셨다... ㅋㅋ

 

바츨라프 광장이다... 바츨라프는 체코의 왕으로서, 체코라는 국가의 형성에 아주 혁혁한 공을 세운 위대한 왕으로 추앙 받고 있다. 저 기마상이 바츨라프 기마상... 아침 9시 가보니 수많은 가이드와 관광객들이 투어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의 뒤로 보이는 건물은 프라하 국립박물관... 박물관에 관심 많은 남편은 매우 들어가보고 싶어했으나, 정말 별 거 없고 돈 아깝다는 가이드의 충고에 포기했다. 바다가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주로 바다와 관련한 생물들의 자료가 관리되고 있다고 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가이드의 말을 꼭 들어야만 했을까 싶기도 하다. 가이드도 엄연히 자기 취향이 있는 건데 너무 곧이 곧대로 믿었던 건 아니었을까...?

어쨌든 여기에서 우리 부부 이외에 함께 투어할 가족을 만났다. 벨기에에서 건너온 부부와 아들로 이루어진 가족이었는데 원래 생활 터전은 미국이고, 지금 잠시 벨기에에 근무하러 와 있다고 한다. 유럽에 온 김에 유럽 일주를 하고 있는 중이라고 하는데, 쩜매 부러웠다. 쩝... 이제 하루짜리 프라하 시내 투어가 시작됐다...

 

국립박물관 건물 앞 인도 바닥에서 이상한 구조물을 발견했다. 나무 십자가가 완만한 곡선으로 휘어진 채, 돌바닥 사이에 묻혀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남편께서 열심히 책을 뒤지며 혹시나 설명이 있는지 열심히 찾고 있다. 끝내 못 찾아서, 나중에 가이드에게 물어보자며 다시 바츨라프 기마상으로 내려왔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내려오며 내가 남편에게 "분신 자살"에 대해 얘기를 했던 것 같다...

가이드의 설명을 통해 위에서 본 구조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프라하의 봄' 때, 체코의 민주화를 외치며 국립박물관 입구에서 온몸에 불을 붙인 채 한 청년이 계단을 걸어 내려와 쓰러진 자리에 위에 있는 십자가 구조물을 만든 것이다. 온몸에 불을 붙이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고 한다.

그 뒤로, 일년 후 또 다른 청년이 똑같은 방식으로 체코의 민주화를 외치며 분신 자살을 했고, 이에 두 사람을 기리기 위해 바츨라프 기마상 아래쪽에 오른쪽과 같은 추모 비석을 세우게 되었다...

전태일 열사도 생각나고, 철들고 나서 겪었던 많은 분신 자살들이 생각났다. 하지만, 살을 태우고 뼈를 태우는 고통만큼 충분히 역사는 앞으로 나아가 주었을까? 여러 가지로 마음이 복잡했다...

트램을 타고 프라하성으로 올라가고 있다. 이 트램은 체코에서 자체 개발한 트램으로온 나라가 떠들썩하게 선전을 한 신형 트램이라고 한다. 칸과 칸이 나뉘는 부분에 서 있다가 커브돌 때 낑겨 죽는 줄 알았다. ㅋㅋ 저, 흰 모자가 가이드 청년이다.

 

프라하성 입구의 전면/후면이다. 생각보다 화려하진 않지만, 그래도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아름다움이 있는 성문이다. 이 성문을 통과한 후문 뒤쪽을 배경으로 다시 찍어 보았다. 뒤에서 보니, 그제서야 성문이 겪어온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가 있다... 프라하 성문이 어찌 되었건, 우리 남편은 신났다. ㅋㅋ

 

프라하성문을 통과하자마자 보이는 수도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금욕주의 수도원으로 실제 미사가 열리는 수도원이다. 섬세한 조각들과 황금 장식들이 아주 인상적인 건물이다.

 

실제로 수도원에서 생활하시는 신부님이시다... 하얀 옷이 아주 인상적이다. 게다가 얼굴도 팀 로빈스를 닮았다. 뿌히힛.

 

미사를 끝내고 나오는 남자들에게는 나이를 막론하고 저런 막대기가 하나씩 들려 있다. 저 막대기로 여자들의 엉덩이를 때린다. 부활절 풍습 중 하나라는데, 여자들의 엉덩이를 때려주면 사악한 기운이 몸에서 빠져나간대나 뭐래나... 저렇게 남자들이 때려주면, 여자들은 고맙다고 사탕이나 계란을 준다. 나이 어린 꼬마들은 사탕 한번 얻어보겠다고 여자들 엉덩이를 때리고 다니느라 정신 못차리고 있었다. ㅋㅋ

 

수도원 내부다... 사진 찍지 말라는 표시가 있었지만, 모두들 플래쉬를 터뜨리지 않은 채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찍었다. 남편도 동조했다. 근데, 함께 투어를 받은 아줌마가 사진 찍지 말라고 되어 있다며 한소리 했다. 우리 남편 용감하게, "다들 찍는데요?" 라고 대꾸했다. 뿌히힛.

 

프라하 성의 전망대... 빨간 지붕의 낮은 건물들이 옹기 종기 모여 있는 프라하... 다른 유럽의 도시들에 비해 좀더 아기자기하고, 파스텔 톤의 건물 색 또한 너무 이쁘다. 바람이 좀 많이 불어서 머리가 수습이 안 되었다는 걸 빼고는, 하늘이며 기온이며 너무나도 완벽한 날씨였다.

 

로레타 성당을 배경으로... 첫번째 사진 왼쪽의 동상은 체코의 2대 대통령의 동상이다. 굉장히 불행했던 대통령으로, 임기 내내 고생하고, 퇴임과 복직을 반복했던 대통령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동상도 무척 우울한 분위기를 풍긴다...

 

어떤 사람의 대저택이었다고 했는데... 기억이 안 난다. 쩝.

 

프라하 성의 근위병 교대식. 매 정오마다 이루어지는 교대식을 보기 위해 프라하성 대통령궁 앞에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다. 가이드의 잔머리 덕분에 우리는 저기서 걸어오는 근위병들의 뒤꽁무니에 붙어 따라갔다. 사람들이 당연히 근위병들을 위한 길을 열어주고, 우리는 그 꽁무니에서 계속 따라가 결국 정문 바로 앞에 아주 편하게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뿌하핫. 정문 위를 장식한 섬세한 황금 문양 속에도 한때 체코를 지배했던 오스트리아의 상징적인 문양이 들어 있다. 정확히 뭐였는지는 기억 안 난다. ^^;;

 

프라하성의 대통령궁을 지키고 있는 근위병이다. 저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곁으로 가서 사진을 찍는데 전혀 표정 변화도 없고 움직임도 없다. 누군가 지나치게 접근하거나, 직접 건드리거나 하면 들고 있는 총으로 바닥을 '쾅!' 내리찍어서 물러서게 한다고 한다. 하지만 가이드 왈, 한국의 스튜어디스같은 예쁜 여자들이 오면 옆에 가서 팔짱을 껴도 가만히 있고, 심지어는 힐끗힐끗 곁눈질로 보기도 한다고... 남편께서 자꾸 옆으로 더 가보라고 했지만, 행여 총을 콱 내리 꽂을까봐 소심한 A형은 그냥 저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ㅋㅋ

 

근위병이 지키고 있는 대통령궁 정문 양쪽에는 저렇게 황금관을 쓴 사자와 독수리상이 있다. 사자와 독수리는 각각 체코와 오스트리아를 상징하는 것으로 체코가 오랜 기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의 지배를 받았음을 알려주는 조각이다. 또한, 몽둥이와 칼로 사람에게 폭력을 가하는 조각도 오스트리아와 체코의 관계를 나타내주는 조각으로, 둘다 가해자는 오스트리아, 피해자는 체코를 상징하는 조각이다. 가까이서 보면 체코인의 눈동자는 빠진 채 조각되어 약간 공포스러운 느낌을 준다. 체코로서는 정말 치욕적인 조각이지만, 이것 또한 체코의 역사이므로 절대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대통령궁 맞은 편에는 동상 하나가 대통령궁을 노려보며 서 있다. 동상의 주인공은 '토마스 마사릭' 이라는 체코의 초대 대통령으로 체코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인물. 죽어서도 후대 사람들이 정치를 잘하는 지 못하는 지 지켜보기 위해 저 자리에 저런 방향으로 동상을 만들어달라는 유언을 했다고 한다. 나야 체코의 역사에 대해서 잘 모르니 진짜 훌륭한 대통령이었는지 아니었는지 판단할 길 없지만, 그래도 저런 유언을 남길 정도라면 굉장한 애국자는 맞는 듯...

 

 

 

근위병 교대식이 있었던 제1정원을 지나, 제2정원으로 가는 문이다.

저문 역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의 지배의 흔적이남아 있는 조형물로 저 가운데 문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합스부르크가의 권위를 우러르고 복종함을 의미하도록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저 옆에 있는 좁은 문으로 지나갔다. ㅋㅋ

'여행 > 2007_Honeymoon'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행 넷째 날 : 융프라우요흐  (0) 2012.09.23
여행 셋째 날 : 프라하 -> 인터라켄  (0) 2012.09.23
여행 둘째 날 : Prague  (0) 2012.09.22
여행 첫째 날(3) : Prague  (0) 2012.09.22
여행 첫째 날(2) : Prague  (0) 2012.09.17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