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화하기 삼매경에 빠진 이정혁군.

하루에 몇번씩 전화를 하는지 모르겠다. 나에게만 하는 게 아니라, 집전화기의 최근통화목록을 눌러서 모조리 다 섭렵을 한다. 그 덕에 '수혁엄마','수혁아빠','대구','능곡집','할머니','할아버지','수혁큰이모','수혁작은이모' 등등의 글씨를 익히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전화해서는 딱히 하는 말도 없다. 주로 "누구야?"(자기가 해놓고 그걸 왜 물어...ㅋㅋ), "어디야?", "오늘 늦어?" 이 정도가 엄마, 아빠에게 전화했을 때의 주요 용건. 

그런데 바로 좀 전에 또 전화가 왔다. 현재 시간 9:15 a.m. 어린이집에 갔어야 할 시간인데 아마 무슨 이유에서인지 늑장을 부리고 있는 것 같은데, 전화를 해서는...

"엄마!"

"너, 어린이집 안 갔어?"

"엄마! 엄마 몇살이야?"

"???!!!"

"엄마 몇살이야?"

"엄마는 43살..."

"(누군가에게) 엄마 43살이래!"

그리고 딸깍.

아무래도 정혁이에게 전화 예의를 먼저 가르쳐야 하나보다. ㅋㅋㅋ

'아이들과 알콩달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혁이의 가출  (0) 2014.04.24
요즘 아이들은...  (0) 2014.03.25
해마루예술제_태권도  (0) 2014.02.10
해마루예술제_젠틀맨  (0) 2014.02.10
멋진 아빠  (0) 2014.01.07



노라조의 '카레'에 맞춘 태권도 시범.

아직은 어려서 거의 태권춤에 가깝지만, 졸업반 아이들의 경우는 격파까지 하더라...

수혁이도 내년엔 격파, 도전!^^

'아이들과 알콩달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즘 아이들은...  (0) 2014.03.25
전화놀이  (0) 2014.03.06
해마루예술제_젠틀맨  (0) 2014.02.10
멋진 아빠  (0) 2014.01.07
기른 정  (0) 2013.11.21



수혁이의 젠틀맨!

다른 건 다 해도, 춤은 추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에 수혁이가 무대 위로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무대에 올라온 것 자체가 첫번째 써프라이즈였다면, 생각보다 제법 잘 추어서 또 두번째 써프라이즈!

나중에 물어보니, 안 하겠다고 하면 계속 하라고 시킬 것 같아서 그냥 해버렸다고... ^^;;

'아이들과 알콩달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화놀이  (0) 2014.03.06
해마루예술제_태권도  (0) 2014.02.10
멋진 아빠  (0) 2014.01.07
기른 정  (0) 2013.11.21
수혁이, 넌 감동이야...  (0) 2013.11.21

내 손전화에 저장된 남편의 연락처 이름은 "겸둥이남편"

손발이 오그라든다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는 남편이 귀여울 때가 많다.

어느날, 남편이 나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수혁이가 화면에 찍힌 이름을 보더니 하는 말...

"엄마. 왜 아빠가 겸둥이남편이야?"

"응... 아빠가 귀여우니까 겸둥이 남편이지."

"아니지, 엄마! 아빠는 귀여운 게 아니구 멋진 거지!"

ㅎㅎ 좋겠다, 남편은. 아들이 이렇게 멋지다고 해주니깐.

'아이들과 알콩달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마루예술제_태권도  (0) 2014.02.10
해마루예술제_젠틀맨  (0) 2014.02.10
기른 정  (0) 2013.11.21
수혁이, 넌 감동이야...  (0) 2013.11.21
단군할아버지!  (0) 2013.10.23

타티아나 드 로즈네 (지은이) | 이은선 (옮긴이) | 문학동네 | 2011-08-17 | 원제 Sarah's Key (2007년)


책을 읽은 지 한달이 지나가는 지금도, 여전히 이 책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릿하다. 우연치 않게 '누구나 홀로 죽는다' 이후 집어든 책이 또 홀로코스트에 관한 책이라니... 아마, 그동안 잊고 살았던, 그저 역사적인 사건으로만 알고 있던 그 사건을 좀 더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있었던 것일까. 어쨌든, 나치에 외롭게 저항하다 처형된 부부의 이야기를 읽고 우울하던 차에, 왠지 제목이 말랑말랑한 듯 느껴져서 골랐던 이 책이 오히려 나를 더 바닥으로 바닥으로 침잠하게 만들 줄 누가 알았을까. 
배경은 1942년 7월 16일 벨디브 사건. 프랑스의 유대인들이 일제 검거를 당해 벨디브 스테디움으로 끌려갔던 사건이 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이 사건이 더 비극적일 수밖에 없는 건, 독일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 프랑스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 프랑스계 유대인을 프랑스 경찰이 나치에 협조하기 위해 만명이 넘는 유대인들을 자발적으로 색출해서 아우슈비츠로 보냈다는 점에서, 또한 나치가 직접적으로 지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학살이 '인종청소'라는 것을 인지한 프랑스 경찰이 많은 수의 아이들을 포함시켰다는 점에서, 이것은 독일에서 자행된 홀로코스트보다도 더 비극적일 수밖에 없고, 프랑스로서는 절대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느 더운 여름날, 어린 네살짜리 동생만 남겨두고 사라는 부모님과 수용소로 끌려가게 된다. 끌려가는 순간에도 그것이 결코 돌아올 수 없는 길임을 알지 못한 사라는,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따라오지 않으려는 동생을 몰래 벽장에 가둬둔다. 누나가 곧 와서 열어주겠다고, 잠깐만 기다리면 된다고 하면서. 늘 거기서 숨바꼭질을 했던 동생은 장난감 몇개와 함께 기꺼이 안에 들어갔고, 그렇게 사라는 부모님과 수용소로 향했다.
그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은 누구나 다 상상할 수 있는 일. 수용소에 가두어진 그들은 음식도 물도 제대로 제공받지 못한 채, 제대로 된 인간대접도 받지 못한 채, 차에 실려, 열차에 실려 수용소를 전전하게 된다. 그리고 처음에는 아빠가 어디론가 끌려가고, 그 다음엔 아이와 엄마를 억지로 떼어놓은 채 엄마들만 다시 열차에 태워진 채 끌려가게 된다. 그 열차의 종착지는 바로 아우슈비츠. 천신만고 끝에 그 수용소를 탈출하게 된 사라와 동생을 구출하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 그 힘든 수용소 생활 속에서도 동생이 숨어 있는 벽장의 청동 열쇠를 손에서 놓치 못한 사라의 애타는 사랑은 보는 내내 마음을 너무 아프게 한다. 더군다가, 그 동생의 나이가 바로 우리 아이들이 또래이다보니 여러가지를 상상하게 되고, 그 이쁜 모습을 떠올리다보면 사라가 느꼈을 그 안타까움이 바로 나에게 전해져와 숨을 제대로 쉬기가 힘이 들었다.
그 당시에 흔히 있었을 한 유대인 가족의 비극적인 사건이 다시 되살아나게 된 건 바로 미국계 프랑스인인 기자에 의해서였다. 우연치 않게 벨디브 사건을 취재하면서, 남편의 가족이 그 사건과 얽혀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그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그녀의 노력 또한 눈물 겹다. 한편으로는 그 기자는 그 사건과 전혀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녀의 남편 또한 전혀 상관이 없고, 다만 그녀의 시부모님과 시조부모님이 무언가 관계가 있다는 심증에서 시작된 일이기에, 그리고 그것을 더이상 캐묻지 않기를 바라는 무언의 압력이 있었기에, 그 기자는 굳이 그것을 캐낼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진실을 파헤치게 만든 것은 바로 역사에 대한 기억이었다. 어떤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고, 그 사건에 내가 간접적으로라도 얽히게 되는 한, 나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고 그래서 '사과'해야만 한다는 어떤 무거운 책임감을 그 사람이 느꼈기 때문이다.
수많은 역사의 비극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프랑스조차도 그 벨디브 사건에 대해서는 꺼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 유대인들이 끌려가는 것을 지켜보며, 어떤 이들은 외면했고, 어떤 이들은 조롱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통적인 것은 아무도 항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관심, 방관... 그것이 바로 그런 비극적인 사건을 만들어냈고, 그 비극적인 사건은 아직도 프랑스의 민주주의 역사에 커다란 오점을 남기게 되었다. 90년대가 되어서야 좌파 대통령이었던 시라크 대통령이 그 사건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사과하게 되었지만, 그 당시에도 그 사과에 대해서 대내외적으로 논란이 많았다는 사실은 자유/민주/평등이라는 자신들의 국가 이념을 자랑스러워하는 프랑스인들조차도 여전히 그 사건의 본질과 책임에 대해서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지 못하다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닐까. 
주인공이 끝까지 원했던 것은 오로지 '내가, 그리고 우리가 잊지 않고 있다는 것. 우리가 너무 미안해 하고 있다는 것'을 들려주는 것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억울한 죽음을 당해야 했던 그 수 많은 목숨이 원하는 것이 바로 그것 아니었을까. 우리가 잊지 않는 것. 그리고 그 때의 무관심과 방조를 미안해 하는 것.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고 났을 때, 마르틴 뉘밀러 목사의 '그들이 내게 왔을 때'라는 시가 떠올랐나보다.

그들이 처음 왔을 때
First they came

나찌가 공산주의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하고 있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Als die Nazis die Kommunisten holten, ,
habe ich geschwiegen.
ich war ja kein Kommunist.

그들이 사회주의자들을 가둘 때,
나는 잠자코 있었다.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Als sie die Sozialdemokraten einsperrten,
habe ich geschwiegen.
ich war ja kein Sozialdemokrat.


그들이 노조에게 왔을 때,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나는 노조가 아니었으니까.
Als sie die Gewerkschafter holten,
habe ich nicht protestiert.
ich war ja kein Gewerkschafter.


그들이 유태인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으니까.
Als sie die Juden holten,
habe ich geschwiegen.
ich war ja kein Jude.


그들이 내게 왔을 때,
아무도 항의해 줄 이가 남아있지 않았다.
Als sie mich holten,
gab es keinen mehr, der protestieren konnte


[본문 중에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어. 아무도 기억하지 않아. 뭐하러 기억하겠어? 이 나라의 가장 어두운 과거인걸. (p.119)

일제 검거 때 붙잡혀간 유대인인 줄 이미 알고 계셨다고. 그런데 모르는 척했다고. 그 끔찍했던 1942년에 수많은 파리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냥 모르는 척했다고. 일제검거 때 그 많은 사람들이 버스에 실려 어딘지 모를 곳으로 끌려가는데 모르는 척했다고. 아버지는 심지어 집이 왜 비어 있느냐고, 그 집 식구들이 쓰던 세간은 어떻게 됐느냐고 묻지도 않았다고 하셨지. 다른 사람들처럼 더 넓고 좋은 집으로 옮기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던 거다. 모르는 척하면서. (p.255)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다. "모르고 지내서 미안하다고요. 마흔다섯이나 먹을 때까지 모르고 지내서 미안하다고요." (p.296)

"언니는 한심한 짓을 저지른 거에요. 과거를, 특히 전쟁 중에 벌어졌던 일을 끄집어 내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에요. 그 때 일을 다시 떠올리고 싶이하는 사람은, 그 때 일을 생각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요." (p.404)

기억할지어다. 절대 잊지 말지어다.

Zakhor. Al Tichkah.

2013.11.19


잠깐 볼일이 있어 퇴근길에 들른 예전 이모님을 보고, 정혁이가 너무 반가와하며 안 떨어지려고 해서 결국엔 이모님 집까지 가서 자고 왔다. 

그만큼 정혁이에게 너무 잘해주셨구나를 생각하면 감사하기 그지 없고, 이렇게 기른 정이 무서운 것이구나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다시 집에 와서는, 다소 울먹거렸다고는 하는데, 퇴근 후에 내가 물어보니 너무 재미 있었다며 또 가고 싶다고 한다. 그런데 이젠 가서 잠은 안 자고 오겠단다. 그래서 왜 안 자고 올꺼냐고 물으니 하는 말,
"잠이 안 와...." 

누나도 있었고, 인형도 있었고, 피자도 먹었고, 아침엔 밥도 먹었다며 열심히 얘기해주는 정혁이. 정혁이도 참 많이 컸구나...

'아이들과 알콩달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마루예술제_젠틀맨  (0) 2014.02.10
멋진 아빠  (0) 2014.01.07
수혁이, 넌 감동이야...  (0) 2013.11.21
단군할아버지!  (0) 2013.10.23
비싼거야?  (0) 2013.10.01

2013.11.19


수혁이가 매주 하는 씽크빅 수학의 교재를 한번도 펴본 적이 없다. 애초에 시킬 때도 내 의지에 의해서 시킨 것이 아니었고, 그러다 보니 매주 15분씩 무언가를 한다는 것에 의의를 둘 뿐, 그리고 그것을 통해 숫자와 다소 친밀해질 수만 있다면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날 친구 지윤이가, 어차피 돈 주고 시키는 거 뭘 하고 있는 지는 좀 알아야 하지 않겠냐고 한 데다가, 지난주 휴가일 때 씽크빅 선생님과 마주친 날 수혁이가 공부하는 걸 좋아해서 다행인데, 숙제는 좀 더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는 소리를 듣고 교재는 다 할 수 있도록 봐줘야겠다고 맘을 먹었다.

그래서 지난 주일날, 수혁이에게 물었다. 
"수혁아... 씽크빅 선생님이랑 다 하지 못한 거 엄마랑 같이 마저 할래?"
"응. 엄마랑 하고 싶어."
그래서 그날 저녁, 쌓아두었던 교재 중에 최근 것 두 권을 꺼내어서 수혁이와 둘이 했다.

그래봤자 문제수준은 거의 1+2, 2+3, 3+1 ... 이렇게 합이 6을 넘지 않는 문제들이고, 수혁이는 계속 "이건 너무 쉽지!"를 연발하며 10분만에 두 권을 해치웠다. 생각보다 시간도 안 걸리길래 앞으로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또 다시 화요일, 퇴근하고 와보니 선생님이 다녀가신 흔적이 있고 마침 퇴근도 늦지 않아서 수혁이와 10분만에 또 해치워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물었다. 
"수혁아. 선생님하고 다 못 끝낸 거, 그냥 오늘 엄마랑 할까?"
"아... 엄마. 내가 아까 혼자 다 했는데?"
".....!!!"

아, 정말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그래서 수혁이에게 칭찬을 퍼부어주고, 꼭 안아주고, 칭찬 스티커 세장을 붙여주었다.

그리고 책을 훑어보니 한 페이지가 안 되어 있길래 왜 안 했냐고 물어보았다.
"응... 그건 문제가 무슨 말인 지 모르겠어."

아이고... 문제까지 다 읽어가며, 이해하며 풀은 우리 수혁이. 장하다, 장해!^^

'아이들과 알콩달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멋진 아빠  (0) 2014.01.07
기른 정  (0) 2013.11.21
단군할아버지!  (0) 2013.10.23
비싼거야?  (0) 2013.10.01
왜왜왜!  (0) 2013.10.01

한스 팔라다 (지은이) | 이수연 (옮긴이) | 씨네21북스 | 2013-01-18 | 원제 Jeder Stirbt Fur Sich Allein (1947년)


나치 치하의 독일. 그저 우리는 교과서에서만 몇줄로 배웠을 뿐이고, 간혹 그 시기를 안네의 일기나 홀로코스트 같은 책이나 영화로 그냥 막연히 추측할 뿐이다. 하지만, 안네의 일기나 홀로코스트 역시 유대인에 대한 그들의 잔혹한 범죄를 대변해줄 뿐, 그 당시를 살아갔던 수많은 독일인들의 삶에 대해서는 따로 생각해본 적은 없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은 그들을 '독일인'이라는 커다란 집합체로 인식하여 히틀러 정권과 다르지 않은 가해자로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여전히 민족감정이란 것이 남아 있어서 독일의 침공을 받았던 주변국들이 스포츠 경기 때 독일에게 보이는 모습이, 우리가 일본에게 보이는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아닐까. 

이 책은 소설이지만, 실화에 기반을 둔 소설이다. 물론 그 '사실'이라는 것이 공소장에 나온 몇줄의 사건 기록이라 결국에는 작가의 상상력으로부터 만들어진 이야기이지만, 어쨌든 주인공은 실존 인물이고, 공소장이 나치에 의해 기록된 것이라면 그 뒤에 숨어 있을 수많은 이야기들은 작가의 상상력보다 더 드라마틱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쟁에 의해 자식을 잃게 된 두 부부가, 나치를 향한 자기들만의 외롭고도 위험한 투쟁을 시작한다. 그것을 투쟁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라며 비웃을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방에 감시의 눈길이 존재하는 공간에서 그 정도조차도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일이었다는 건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멀지 않은 우리의 역사를 돌이켜 보아도, 엄혹한 군사정권 시절 술 먹고 술 집에서 정권을 욕했다는 이유로, 택시 기사에게 시국의 암담함을 토로했다는 이유로 삼청교육대에 끌려가야만 했던 사람들도 있지 않았는가. 

그 투쟁을 시작하게 된 애초의 동기는 아들의 죽음이었다. 아들의 죽음을 알게된 부인이 남편에게 외쳤다. '당신의 총통이 내 아들을 죽였다' 라고. 이 말 한 마디가 그의 인생을 180도로 바꾸어 놓았다. 분명히 그들은 총통을 직접 뽑았다. 그들의 손을 뽑은 총통이 전쟁을 일으키고, 수많은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몰았다. 그리고 자기를 뽑아준 국민들을 감시했고, 그들을 당원이냐 아니냐에 따라 차별하기 시작했으며, 이웃 간에도 서로를 의심하도록, 그리고 서로 무관심하도록 강요했다. 그들은 총통이 그런 방식으로 국가를 지배할 줄 모르고 뽑았지만, 결국 총통은 독재를 통해 수많은 죽음을 불러오고 있었다. 그들은 부자가 될 줄 알았고, 유럽의 강자가 될 수 있을 것이란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수많은 사람들은 그런 희망을 가지고 총통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다수는 공포에 질려서 충성을 다하는 척 하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히 총통을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과, 지지하였으나 그들의 잘못된 선택을 뒤늦게라도 깨달은 사람들 중에 총통의 지배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것은 후일에 발견된 공소장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직화되지 않은 투쟁으로 나타나기도 했던 것이다. 그들의 투쟁은 과연 헛된 것이었을까? 그 부부가 뿌린 200통이 넘는 엽서는 대다수가 게슈타포에 신고가 되었고, 오직 스무통 정도만 회수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스무통이 나치 독일을 멸망시키는 씨앗이 되었을까? 절대 그럴리는 없었을 것이다. 그 스무통도 안 되는 엽서마저 겁먹은 누군가에 의해 불에 태워지거나 화장실 변기에 쓸려갔거나 그랬을 테니까. 결국 수년에 걸친 그 사람의 투쟁은 아무런 결실 없이 끝나버리게 된 것이다. 그의 투쟁은 과연 무의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감옥에서 만난 박사의 입을 빌어서 이렇게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자신에게요. 죽을 때까지 우리는 의로운 인간이었다고 느끼게 될 거니까요. 크방엘 씨는 최소한 악에 저항했습니다. 같이 약해지지 않았단 말입니다. 야만적인 폭력에 맞서 정의를 위해 싸우고 있기 때문에 결국에는 우리가 승자가 될 겁니다."

"우리는 각자 행동했고, 따로 잡혀왔고, 홀로 죽을 겁니다. 하지만 헛된 죽음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 괜히, 헛되이 일어나는 일은 없어요."


하지만 여전히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그런 상황이 되었을 때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런지.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부모가, 더이상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는 상황에서 불의와 맞닥뜨렸을 때, 자신들의 무지가 불의가 횡행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때라면 이런 판단을 내리게 되는 걸까. 그래도 살아서 그들의 멸망을 지켜보는 것이 더 확실한 저항이 되지 않을까. 그들의 본 낱낱의 사실들을 후세에 알리고 그렇게 해서 그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무도 읽지 않는 엽서를 만들고 그래서 공소장 몇줄로 기록에 남는 것보다 더 가치 있지 않을까. 그들의 투쟁의 결실이 너무 보잘 것 없어서, 저자 또한 가상의 경감을 만들어 그나마 그의 투쟁이 완전히 무가치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더더욱, 정말 겨우 한 인간의 참회가 그 투쟁이 불러온 유일한 결실이란 말인가...

나는 그 투쟁이 어떤 결실을 맺었고, 어떤 파급효과를 불러왔는 지, 그래서 그들의 투쟁이 얼마만큼의 가치를 지녔는지에 대해서는 어떤 가치 판단도 내릴 수 없다. 다만, 그들은 분명히 저항했으며, 그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선택을 했을 뿐이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 남들이 뭐라든 나는 괴물이 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또 하나, 최근 두번의 커다란 선거를 오버랩 시키지 않을 수가 없다. 분명히 우리는 부자가 되기를 원했고, 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보다는, 조금 더 잘 살게 되기를 바랬다. 그 결과가 어떠했는 지는 분명히 역사가 증명해줄 것이다. 당신의 손으로 뽑은 총통이 당신의 아들을 죽인 사회, 그게 바로 나치 독일이었다. 우리라고 그러지 않을 수 있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게다가 요즘 같이 공권력이 하찮은 게시판 댓글에까지 지극한 관심을 보이고, 교수나 친구가 빨갱이이인 것 같다고 신고하는 레드컴플렉스가 여전히 만연한 이 사회에서,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과연 우리의 사회는 나치의 독일처럼 되지 않을 꺼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어서 나는 가끔 두렵다.


[본문 중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그들과 다르다는 거예요. 설사 그들이 온 세상을 다 무릎 꿇게 만든다 해도 우리는 나치가 되지 말아야죠!"

"총통이 정말 그렇게 위대한 사람이라면 이런 전쟁은 일으키지 말았어야 했다. 수백만 명을 매일 사지로 몰아넣는 사람이라면, 정말로 위대한 사람일 리가 없다. 그녀는 자신만은 자존심을 지킬 거라고 결심했다. 그러면 바른 처신으로 자존심은 지켰다는 한 가지 성과는 인생에 남길 수 있을 것이다."

"저에게는 복종해야 할 주인이 있습니다. 그 주인은 저와 부인과 이 세상, 그리고 이 세상 바깥에 있는 세상까지도 지배하는 분입니다. 그 주인은 바로 정의입니다. 저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정의를 믿습니다. 그리고 정의만을 제 행동의 지침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들은 폭력으로 우리를 그들과 같은 생각으로 전향시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폭력의 지배를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비, 사랑, 정의를 믿습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 행동해야 했고, 모두 따로따로 잡혀 들어왔고, 모두 혼자 죽게 될 겁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모두 혼자인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헛되이 죽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크방엘씨! 그러면 당신은 정의를 위해 죽는 것보다 불의를 위해 살기를 원하십니까? 당신에게나 나에게나 선태의 여지가 없어요. 우리는 바로 우리이기 때문에 이 길을 걸어야 했던 겁니다."

넬레 노이하우스 (지은이) | 김진아 (옮긴이) | 북로드 | 2011-02-11 | 원제 Schneewittchen muss Sterben


원래 소설은 잘 읽지 않는 편인데, 회사가 농번기에 접어 들기도 했고 이래저래 머릿속이 정돈되지 않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빠져들 책이 필요했다. 마침, 회사 동료가 재밌다고 권한 책은 이 책의 저자가 쓴 연작, 이름하여 타우누스 시리즈.

그 동료도 이 책이 너무 좋아 시리즈를 모두 구매할 예정이라며, 1권부터 빌려줄 테니 읽어보라고 했다. 정작 넬레 노이하우스를 유명세에 올려 놓은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은 아직 입수하지 못했다고 하기에, 그럼 1권부터 읽어보기로 생각하고 받은 책은 '사랑 받지 못한 여자' (원제 Eine unbeliebte Frau, 2009년).

그리고 정말 빛의 속도로 - 물론 다른 사회과학 서적이나 인문학 서적에 비해서 - 읽어내린 후, 연달아서 '너무 친한 친구들', '깊은 상처' 까지 읽었다. 그리고 네 번째 작품인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까지, 기대와 흥미 속에서 읽어 내렸다. 누군가 이 책들에 관심이 있다면, 나는 당연히 1권부터 읽기를 권한다. 그 이유는 첫째, 작가의 필력 또한 책을 써가면서 성장했기에 나중에 쓴 책을 읽은 후 1,2 권을 읽으면 좀 밋밋한 느낌도 들고 스토리가 단순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둘째로, 각각의 책에서 다뤄지는 사건 못지 않게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주인공들의 개별 스토리 또한 흥미롭기에 주인공들의 결말을 먼저 아는 것만큼 싱거운 건 또 없을 터. 따라서 이 책에 관심이 있고,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1권부터 찬찬히 읽어보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라 생각한다.

작가는 갈수록 조금은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사회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일이라든가 혹은 시대상을 반영한 내용으로 사건을 구성해 나간다. 그런 측면에서 난 이 작가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그저 단순한 개인적 사리사욕에 얽힌 사건이 아니라, 그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거나 어떤 사건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사건이라는 측면에서 그렇다. 3권의 깊은 슬픔의 경우 독일 사회를 말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나치과 여전히 독일 사회에 생채기로 남아 있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다루고 있고, 풍력 발전사를 둘러싼 의심들, 아동 학대 등을 모티브로 삼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어떤 사건도 개인 간의 원한과 복수로 끝나지 않고, 사회경제적으로 그럴 둘러싼 권력의 힘과 부당한 힘의 남용, 국제적인 커넥션, 부당한 배후세력 등에 대해서 빠짐 없이 다룬다. 그렇기에 이 소설들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고, 읽으면 읽을 수록 빠져들면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들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사건과 그를 둘러 싼 추리의 세계로 빠져들고 싶을 때, 충분히 만족 시켜줄 수 있는 소설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표지 또한 책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나타내고 있는데, 그로테스크한 느낌이 일관성을 가지고 있어서 한 명이 디자인 한 줄 알았으나 그것은 아니었다. 주제와 벗어나긴 하지만, 책 디자인 만큼은 우리 나라도 수준급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됐다.







왕초보의 캠핑 장비 이야기, 세번째! 

이번에는 테이블 이야기를 해볼까요. 

우리 가족이 4명이고, 다른 가족과의 캠핑을 주로 간다는 전제가 있어서 일단 유형은 주저하지 않고 3단 폴더형 BBQ 테이블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나서 다른 조건들을 가지고 검색에 들어갔지요.

테이블을 살 때 가장 주의깊게 보았던 것은 가격, 상판 재질, 높이, 폭 이렇게 세 가지였습니다. 처음 캠핑에 갔을 때 우리가 펼쳐 놓고 먹었던 테이블은 코베아 제품이었어요. 물론 사용하는 데 전혀 문제 없고 품질 또한 좋아보였으나, 가장 아쉬운 점이라면 아이들이 의자에 앉아 밥을 먹기에 테이블이 너무 높다는 거였어요. 어른에게도 약간 높다고 느껴질 정도였으니, 아이들에게는 좀 많이 높았죠. 그래서 4살 꼬마 두명의 경우, 40cm 짜리 미니 테이블을 놓고 아이용 의자에 앉혀서 밥을 먹게 했어요. 6살 아이들부터는 그냥 좀 불편하더라도 얼굴을 테이블에 걸치고 먹게 했지요. 스펙이 아마 70cm 정도 되었던 것 같네요. 그래서 다양한 브랜드의 테이블을 살펴보면서 높였을 때와 낮추었을 때 높이가 얼마나 되는 지를 잘 살폈습니다. 거의 90% 이상이 69 또는 70cm 였습니다. 

상판의 경우 그냥 합판이어도 크게 상관은 없는데, 식사 준비 하다가 부지불식간에 뜨거운 걸 올려 놓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 같고, 아무래도 알루미늄이 그래도 조금은 내구성에서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만, 상황에 따라서 상판의 재질은 옵셔널하게 가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다른 게 다 내 맘에 든다면 얼마든지 합판으로 갈 수도 있다고 마음 먹었지요.

많은 테이블이 60cm 폭입니다. 물론 60cm도 크게 문제는 없습니다. 밥 먹는 데 아무 지장 없구요, 보기에 좁아 보이지도 않아요. 그런데 이왕이면, 같은 값이면 넓어서 나쁠 건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것도 상판 재질과 마찬가지로 옵셔널하게 생각하기로 했네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요소인 가격. 사실, 코베아의 2013년형 3단 테이블은 가격이 많이 비쌌습니다. 티타늄 다리일 경우에는 더 비쌌구요. 테이블 위에 올라갈 것도 아니기에 기본 기능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너무 비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굳이 코베아나 브랜드 제품을 사야 하는 지에 대해서도 정말 의문이었구요. 결국엔 텐트마냥, 공장은 몇 개 안 되는데 상표가 다 다른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어쨌든 가능한 한 살 수 있는 한 최저가로 가고 싶었습니다. 캠핑하며 밥만 그냥 먹을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런 조건들을 가지고 열심히 검색을 했습니다. 그러다 어떤 까페에서, '네오트리' 제품을 추천한다는 댓글을 여러개 읽었습니다. 그래서 검색.... 짜잔. 제가 원하는 제품이 거기에 딱 있었습니다. 이름하여, "네오트리 알루미늄 3폴딩 BBQ테이블"!!!

일단 스펙은 다음과 같습니다.

[출처 : www.neotree.co.kr]


저기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이 high 모드일 때 65cm 높이라는 것입니다. 이 회사에서 제 마음을 읽었더라구요. 일반 테이블이 성인에게도 다소 높다는 것을 고려해서 일부러 5cm 를 낮춘 것입니다. 그리고 폭도 80cm 라 꽤 넓은 편이고, 랜턴걸이가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가방은 물론 포함이구요. 

같은 스펙에서 브랜드 제품을 사려면 가방까지 추가로 구매할 경우 최소 20만원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가성비는 최고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제품을 구매해서 사용 중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아쉬운 점.

폴딩 테이블의 경우 펴졌을 때의 안전을 위해 고리들이 있는데 이 고리가 좀 뻑뻑합니다.^^ 저는 코베아 테이블밖에 못 봤기 때문에 비교 대상이 유일하게 코베아인데요. 코베아에 비해서 부드러움이 좀 덜합니다. 뭔가 2% 부족한 느낌이랄까. 사용 상 전혀 문제는 없지만 여튼 그렇구요. 저 연장용 다리를 끼울 때 또한 좀 뻑뻑합니다. 그것역시 2% 부족한 느낌.^^ 대세에 지장은 없지만 그냥 뭔가 쪼금 아쉬운 그런 느낌이에요. 하지만 상판은 더 깨끗하고 넓고 좋네요. 가방도 딸려오니 더더욱...

그리고 다리 끼우는 게 좀 뻑뻑합니다. 불편하기도 하구요. 한번 비교해보겠습니다.


나사식으로 되어 있죠. 그냥 돌리면 되니까 매우 편합니다. 


이건 나사식과 좀 다르지만 캠핑 가서 다른 집의 테이블 조립하며 해봤는데 이것도 비교적 부드럽게 잘 끼워지더라구요.


잘 안 보이나요...? 여튼 잘 보면 보입니다만. 이게 네오트리의 다리 모양입니다. 양 옆으로 철사 같은 것이 삼각형 형태로 튀어나와 있어요. 기본 원리는 바로 위에 있는 것과 비슷하지만, 저 원형 단추는 눌렀다가 끼워지며 딸깍 소리가 나면서 결합되는 형태라면, 네오트리는 저 삼각형의 튀어나온 부분을 눌러서 끼우고, 그게 눌러진 채로 다리가 결합되는 형태라 아무래도 끼울 때 느낌이 훨씬 빡빡합니다. 그게 좀 아쉬운 부분인 거죠.

그리고, 고민할 때는 테이블 높이에 그리 신경을 써놓고, 막상 늘 low 모드로 썼습니다. ㅋㅋㅋㅋ 이게 왠 아이러니. 사놓고 보니 low 모드가 어른이고 애들이고 먹기에 편한 거에요. 그래서 결국은 low 모드로 쓰게 됐네요. 그렇게 따지면 굳이 65cm냐 70cm냐는 그닥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게 되네요. ㅋㅋㅋ 하지만 high 모드를 선호하시는 분들은 이 제품을 눈여겨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저 가운데의 바베큐 판은... 사실 캠핑 하면서는 아직 한번도 사용 안 했어요. 내년에 구이바다를 사면 좀 쓸모가 있으려나... 하여튼, 아직까진 전혀 사용 안 했기 때문에 왜 꼭 BBQ 테이블을 사야 하는 지 의문을 가지던 차에... 결국 집에서 삼겹살 구워 먹을 때 저 테이블 펼치고 가운데다 그릴 놓고 해먹었네요. ㅋㅋㅋ 편하고 좋던데요.^^

가오 혹은 뽀대보다 실속을 추구하시는 분들에게는 과감히 추천할 수 있습니다. 반값에 비슷한 성능을 낼 수 있는 최고의 테이블이네요. 이 테이블로 네번의 캠핑을 다녀본 결과, 후회 없네요. 네오트리 짱!^^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