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지은이) | 을유문화사 | 2013-07-15


처음에 경향신문의 컬럼에서 기생충에 은유한 이명박정권에 대한 풍자를 읽었을 때, 이 사람의 재기발랄함에 감탄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 이후로 세상을 바꾸는 15분에 이 사람의 강의가 있길래 찾아서 들어보았다. 첫인상이 주는 느낌과는 다르게, 이름처럼 매우 서민적인 분위기로 편안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설명하는 이 사람의 모습은 관심을 갖기에 충분했따. 조금은 어눌한 듯 하면서도 자기 할 말은 따박따박 다 하는 모습에서 풍자가 이 정도는 되어야지 하는 생각과 함께, 의대를 나와서 기생충을 연구할 수도 있구나 하면서 평소에는 뭘 하는 사람일까 하는 호기심도 갖게 되었다.

그러다가 예능 프로그램에 고정 채널로 등장하는 걸 보면서, 이 사람의 숨겨진 욕망은 연예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참으로 끼가 많은 사람이라고 할 수밖에... 여튼, 사람은 겉모습만으로 판단해서도 안 되고, 글만으로도 판단해서도 안 되며, 공개된 모습만으로 판단해서도 안 된다는 여러 가지를 알려준 사람 같다.

기생충 열전은, 저자의 말에 따르면 기생충과 관련한 책이 없어도 너~무 없어서 쓰게 된 책이다. 물론, 학문을 위한 기생충 관련 책이야 없지 않겠지만, 대중적으로 읽을 수 있는 기생충 관련 서적이 달랑 세 권밖에 없다는 것에서, 학자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쓴 책이다. 그러다보니,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기생충을 백과사전 식으로 나열해서 설명해주고 있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에 상자에 요약 정리를 넣어주는 친절함까지 갖췄다. 요약 정리에는, 간략한 생김새와 생활사, 감염 경로, 위험도, 증상 등이 간략하게 나와 있어서 혹시 모를 상황에서 쉽게 참조할 수 있다. 

생활 속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민물회는 함부로 먹으면 안 된다", "돼지 고기는 익혀 먹어야만 한다" 등과 같은 말들이 단순한 속설이 아니라 어떤 근거에서 나온 것인지도 이 책에서 알려주고 있다. 나의 중학교 시절 정도부터 없어진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매년 철마다 채변봉투를 내야 했던 곤욕을 떠올려 보면, 기생충이라는 것이 얼마나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것인가. 물론, 이제는 학교에서 채변봉투를 일괄적으로 걷고, 궁여지책으로 집에서 키우는 개의 변을 떠가는 바람에 기생충 약을 주먹채 털어 넣어야 하는 황당한 일은 발생하지 않지만, 여전히 약국에서는 구충제를 판다. 봄/가을로 먹어야 한다고 열심히 선전하면서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 나오는 기생충들에 대해서는 좀 알아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저자의 기생충을 의인화 시켜서 설명하는 방법을 종종 쓰는데, 그게 그렇게 재미 있다. 가끔은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오래 전 사람들의 대화를 상상해 내기도 하고, 기생충들을 사람에 비유해서 그들의 사랑과 전쟁을 설명하기도 한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으며 혼자 키득키득 웃다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수도 있으니 주의할 것. 

기생충이란 우리 몸에 해를 끼치는, 죽어 없애야 할 나쁜 것이고, 구충제를 먹으면 세상의 모든 기생충은 내 몸에 생존할 수 없을 것이라 믿는 사람, 그리고 정력을 위해서라면 사슴피든 생멧돼지 고기든 먹을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우선 필독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생각을 좀 달리 할 수 있게 될 테니 말이다. 

기생충에 대한 대중서로서, 많은 사람들이 기생충에 대해서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는 저자의 바램은 어느 정도 성공한 것이 아닐까. 나도 이 책을 읽고 나니 다른 기생충 책들은 어떨까 궁금해지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본문 중에서...]


이렇듯 몇만년 동안 서로 친하게 지냈으니, 기생충이 갑자기 몸에서 박멸되고 난 뒤 우리 면역계가 느꼈을 박탈감이 어느 정도였을 지 짐작이 간다. 기생충 박멸 이후 알레르기나 자가면역질환이 늘어난 건 갑자기 상대가 없어진 면역계가 우리 몸을 공격한 결과이다.


외국에 나가면, 그게 설령 스웨덴이나 미국이라 할지라도, 물을 끓여 먹거나 메이커 있는 생수를 사 먹길 권한다. 좋은 물을 먹는 데 돈을 쓰는 것이 체류기간, 혹은 우리나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물설사를 쭉쭉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일 것이다.


다른 문화들이 대부분 그런 것처럼 생선회도 중국에서 전래된 것이겠지만, 최소한 일본보다 먼저 회를 먹은 건 확실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선회의 주도권을 일본에게 빼앗긴 건 마음 아픈 일. 담도암 발생을 증가시키는 나쁜 기생충이지만 간디스토마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앞으로 잘하라고.(P.110)


의대는 인체 기생충을 다루는 곳이니만큼 최소한 한 명이라도 감염자가 있어야 중요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실제로 서울주걱흡충은 이 논문이 나간 1964년부터 물 17년이나 무관심 속에서 울분을 삭여야 했다...... 그가 뱀을 먹은 것은 정력을 증강시키기 위해서였다. 20대라는 한창 나이에 왜 그런게 필요했는 지 의아했지만, "결혼을 앞두고 있어서"라는 말에 모든 게 이해가 됐다. 그때였다. 환자로부터 나온 충체를 보던 서교수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나 이 기생충 본 적 있어. 이건 20년 전에 봤던 서울주걱흡충이야."


의사: 당신은 서울주걱흡충에 걸렸습니다.

환자: 서울이요? 2002년 월드컵이 열렸던 대한민국의 수도 말입니까?

의사: 네, 그렇습니다.

환자: 이거 참, 배는 아팠지만 굉장히 반갑네요. 그때 우리 나라가 우승해서 한국에 대해 좋은 기억이 있는데.


수컷은 암컷에게 영양분을 공급해 주고 사람 몸 여기저기를 구경시켜 주며, 결정적으로 알을 낳을 만한 적당한 곳을 찾아 주기도 한다. 이런 헌신성이 사람들로 하여금 주혈흡충을 존경하게 만든 이유인데, "기생충 제국"을 쓴 칼 짐머는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구 상에서 남녀 간의 금실이 가장 좋은 동물은 원앙새가 아니고 주혈흡충"이라고. 아내 몰래 다른 암컷에게 추파를 더지고, 새끼를 낳으면 양육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 원앙 수컷의 행태를 주혈흡충이 알았다면, 자신이 원앙과 비교되는 자체를 기분 나빠 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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