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지은이) | 박세연 (옮긴이) | 엘도라도 | 2013-04-15 | 원제 End This Depression Now! (2012년)


이런 사례가 있다고 한다. 조안 스위니와 리처느 스위니 부부가 소개한 것인데, 그레이트캐피털힐 육아협동조합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150쌍의 부부가 육아의 부담을 해결하기 위해 만든 이 조합은 쿠폰 시스템을 실시했다. 조합에 가입하면 20장의 쿠폰이 지급되고, 쿠폰 한 장은 30분의 시간을 의미한다. 아이를 맡기는 경우 자신의 아이를 돌봐준 회원에게 시간을 계산하여 이 쿠폰을 낸다. 이런 방식으로 서로 남의 아이를 봐주면 쿠폰을 얻고, 내 아이를 맡기면 쿠폰을 지급하는 형태로 쿠폰은 유통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냐면, 사람들이 너도나도 쿠폰을 절약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중에 멀리 가거나, 오랜 기간 일을 봐야 할 때를 대비해서 쿠폰을 사용하지 않고 비축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그렇게 하자,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쿠폰은 유통되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쿠폰의 침체기라고 해야 하나? 결국 협동조합 회의를 통해 훨씬 더 많은 쿠폰을 각 가정에 지급하고나서야 문제는 해결이 되었다. 충분한 쿠폰을 가지게 된 사람들은 미래의 벌어지지 않은 일을 위해 비축하는 일을 중단했고, 쿠폰은 활발하게 유통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사례가 이 책 한권 전체를 통해서 폴 크루그먼이 말하고 싶은 것의 요약판이다. 함께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돈은 흘러야만 한다. 이 흐름이 멈추게 되는 것이 바로 경제의 침체이고, 이것을 흐르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정치가와 관료들의 임무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흐르게 해야 하는가. 

한 가정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내리게 되는 처방은 뻔하다. 지출을 줄이고 빚을 갚아야 하며, 빚을 갚으면 다시 돈을 모아야 한다. 아주 간단하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 그렇다면, 이것을 하나의 국가로 확장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마찬가지로 아주 간단하게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지금 미국을 비롯한 대다수의 국가들의 관료들은 이런 처방을 내린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국가는 가정과 다르다는 것이다. 국가가 허리띠를 졸라매면 벌어지는 일이 바로 육아협동조합의 상황이라고 폴 크루그먼은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쉬이 잊어버리는 것이 바로, 나의 부채는 누군가의 자산이고, 누군가의 부채는 나의 자산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명제이다. 나는 부채로 인해 허리띠를 졸라매는데, 자산이 많은 사람들은 내가 허리띠를 졸라매서 벌어지는 잠깐의 경기침체를 보고는 덩달아 소비를 늘리지 않는다. 이런식으로 경기침체는 더욱 심화되고, 결론적으로 나의 부채는 갚아도 더 늘어나는 모순적인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식의 해결책으로는 지금의 불황을 끝낼 수가 없다는 것.

폴 크루그먼이 주장하는 건 매우 간단하다. 어떻게 해서든 정부가 지출을 늘리라는 것. 정부가 지출을 늘려서 고용을 확대하도록 돕고, 미래의 인플레를 기대하도록 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돈을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쓰도록 만들어주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돈이 순환이 될 때 국가의 경제는 침체에서 벗어날 수가 있고, 이렇게 해서 호황이 되면 그 때에는 정부의 지출을 줄이면 된다는 것이다. 

대부분, 저자의 주장에 동의가 되면서도 '이것이야말로 지금 이 시기, 당연하게 따라야 할 진리'라고 강하게 주장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면, 자본주의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기 때문에 폴 크루그먼이 제시하는 근거들이 미국의 대공황과 2차대전, 한국전쟁 등의 시기라는 것이다.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면 정부가 돈을 쓰는 것보다 전쟁을 하면 해결이 되나? 라는 아주 우스운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게 만드는 근거들이라는 것이다. 물론, 당연히 전쟁은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전쟁에 준하는 상황이 되도록 정부가 돈을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겠지만 어쨌든 정부의 지출이 경제의 호황을 이끌었던 사례가 오로지 전쟁과 정부의 군비지출이라는 것은 개운치 못한 뒷맛을 남기는 것은 사실이다.

얼마전 시사IN과 인터뷰한 장하준 교수도 포드의 이야기를 했다. 물론 포드가 나쁜 자본가의 모습을 많이 가지긴 했지만, 어쨌든 '노동자들이 가난하면 이 비싼 차를 누가 사겠나'라는 생각으로 임금을 올려줬고 결국 그 노동자들이 다시 차를 사는 경제의 선순환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장하준 교수는 경영자의 안목과 책임감이라는 측면에서 이 이야기를 했지만, 이것 또한 지금의 불황을 타개하는 데 하나의 길을 보여줄 수 있는 예화라는 생각이 든다. 

작년과 재작년 우리 회사에서도 신입사원을 무척 많이 뽑았다. 이유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어쨌든 신입사원을 많이 뽑는 것은 회사로서는 투자일 수밖에 없다. 신입사원이 당장 생산성을 올려주지 못하기에, 그로 인해 작년과 재작년 회사는 예상만큼의 실적을 거두지 못했다. 그렇다고 회사가 적자를 낸 것도 아니었기에, 나는 몇백명의 신입사원들이 우리 사회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을 더 크게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 사람들이 그대로 청년실업자였다면 그로 인한 경제적 파급효과도 만만치 않았으리라는 생각이다. 그들이 실업자였을 때와 신입사원이 되었을 때의 정확한 경제적 효과 비교야 내가 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니고, 정말 가능할 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런 식으로 기업도 일정 부분 손해를 감수하고 투자를 하고, 국가 또한 재정적자를 감수하고라도 지출을 늘려야 경제 시스템이 좀 더 안정화되고 선순환의 구조로 자리잡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지금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라든가 여성 노동력, 청년실업의 문제가 해결되어 가는 방식이 우리 나라의 경제성장을 미리 가늠해볼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정부의 지출은 곧 복지가 아닐까. 그렇게 복지가 강화되고 사회안전망이 촘촘해질 때,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이 안정되고 신뢰가 회복될 때 사람들의 주머니도 열리고 혈액도 원활하게 순환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런 측면에서 지금의 정치권을 보면 마냥 낙관할 수가 없다. 그래서 불안하다. 과연 이 사람들에게는 지금 이 불황을 타개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심을 거둘 수가 없는 이 현실이 가슴 아프다.


[본문 중에서]


어떤 집에서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남편이 자동차 전기 시스템을 수리하지 않고 버티고 있다. 이제는 시동도 안 걸린다. 그런데도 배터리를 갈아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가만히 있다가 이제야 배터리를 간다면, 그동안 자신의 판단이 잘못됐음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대신 남편은 가족들에게 걸어다니거나 버스를 타라고 말한다. 그 때문에 가족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문제를 자세히 들여다보기만 하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문제의 핵심은 자동차가 아니라 '남편'이다. (p.43)

그래도 이 사례는 오늘날 세계 경제가 떠안고 있는 한 가지 중요한 문제, 그러나 아직까지도 많은 정치인과 관료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문제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면 그 문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나의 지출이 당신의 수입이고, 당신의 지출이 나의 수입"이라는 개념의 실종이다. (p.48)

그들은 미국경제를 통제가 불가능한 외부 요인 때문에 소득이 줄고, 소득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부채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 가정처럼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절약을 하고 신중하게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이렇게 외친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소비를 줄이고, 빚을 갚고, 비용을 절감해라." 하지만 지금의 위기는 그렇게 해서 해결될 것이 아니다. 수입이 줄어들고 있는 이유는 지출을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p.78)

케인스 경제학이 촉구하는 정부 개입이 비교적 온건하고, 특정한 목표에 한정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보수주의자들은 정부의 개입 자체를 문제의 발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정부 개입이 경기침체에 일시적으로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이로 인해 사회주의가 다시 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케인스 경제학을 중앙 집중적 계획과 혁명적인 부의 재분배와 동일시하는 사고방식은, 실제로 그 진실을 알고 있는 경제학자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보수 인사들에게 지극히 보편적인 인식이다. 그러나 케인스 자신은 이렇게 부인했다. "인간의 가치 있는 활동을 위해서는 부를 축적하려는 동기와 완전한 결실을 위한 사유재산제가 뒷받침돼야 한다."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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