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사이유 궁을 나와서 지베르니(Giverny)로 갔습니다. 모네의 집이 있는 작은 마을이죠. 모네(Claude Monet)는 1883년부터 1926년에 죽을 때까지 43년 동안 이 곳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모네 그림 중 수련 연작은 다 여기서 만들어졌고, 그 그림의 모티브가 된 연못을 볼 수가 있는 곳입니다.


모네의 집 앞입니다. 이곳은 지금 박물관처럼 조성돼 있구요, 이 앞의 정원을 지나서 도로 밑으로 연결된 지하 보도를 지나가면 도로 반대편으로 모네의 연못이 나옵니다. 집은 아담한데, 인상적이라고 한다면 방 구석구석에 걸려 있는 일본 목판화 우키요에입니다. 모네가 수집을 했다고 합니다만, 지나치게 많이 걸려 있어서 마치 모네의 그림이 일본 판화에 기원을 두었다고 애써 주장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나중에 오빠가 얘기해주길, 이 박물관을 관리하는 것이 모네 재단인데, 이 재단에 돈을 대는 것이 일본이라고 하네요. 그렇다면 뭐 어쩔 수 없죠. 여튼, 일본 사람들이 오면 무지 좋아할 것 같습니다.
또 하나 특이한 건, 온통 노랑으로 칠해진 응접실과 온통 파랑으로 칠해진 주방입니다. 수혁이가 보면 파랑색이라고 무지 좋아할 것 같았는데, 사진을 못찍게 해서 좀 아쉽네요...

여기서부터는 연못 퍼레이드...


촛점이 잘 맞은 사진은 양 옆에 워낙 엑스트라들이 많아서요. 인물 촛점은 약간 흔들렸지만,
이게 그래도 그림이 제일 이쁘게 나왔습니다.

 

지베르니를 떠나서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입니다. 이곳은 고흐(Vincent Van Gogh)가 생애 마지막 70일을 보낸 곳입니다. 처음엔 겨우 70일을 가지고 이 마을을 기념하냐며 비웃었는데, 비록 70일이지만 그 기간에 그린 그림이 굉장히 많다고 하네요. 한가지 아쉬운 건, 책자에는 분명 월요일이 휴관이라고 해놓고 막상 갔더니만 월/화 이틀 내내 휴관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토요일부터 시작해서 화요일까지 쉰다는 것이고, 결국 일주일에 3일 일한다는 거네요. 헐~
결국 고흐의 집도 못보고, 고흐의 정신과 상담을 맡았었던 가셰 박사의 집도 못갔습니다. 하지만 뭐, 고흐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풍경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것만으로도 진귀한 경험이었어요.


고흐 그림의 배경이 된 오베르 성당


고흐가 동생 테오와 나란히 묻혀 있습니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의 배경이 된 곳입니다. 누가 표지판에 불을 질러 놓은 건지, 원...

 

이렇게 넷째 날의 일정을 마무리 했습니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다시 파리 시내로 들어오는 길이 꽤 막혀서, 많이 늦었습니다.
이날은 지베르니와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가이드 역할을 담당해준 오빠에게 우리가 한턱 쏘는 날. ㅋㅋ
마레 지구의 맛난 식당 중 하나인 les philosophies에 가서 맛난 저녁을 먹었습니다. 양고기, 생선, 비프 요리입니다. 애피타이저는 모짜렐라 토마토였고요, 후식은 크렙이었는데 사진을 못찍었군요. 아주... 달달하고 맛난 디저트였습니다.

오늘의 일정은 베르사이유에서 출발입니다.

베르사이유는 파리 시내에서 비교적 가깝습니다. 가는 방법이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일종의 교외선 같은 RER을 타고 가는 방법이 있고, 아니면 지하철 한번에 버스 한번으로 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뭉치표(까르네)를 사면 전철표 달랑 두 장으로 베르사이유까지 갈 수 있어서 RER로 가는 것보다 싸다고 유럽여행 전문 까페에는 나와 있더라구요. 그렇게 가려고 했었는데, 일단 돈이 적게 드는 만큼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오빠도 그렇고 가이드도 그렇고 그냥 RER을 타라고 조언을 하길래 RER 탔습니다. 오빠는, 예전에 조카가 쓰다 남은 베르사이유행 RER 차표가 한 장 있다며 친절하게 아침에 챙겨 주었지요.

오빠 출근 길에 앵발리드 역까지 나와서 RER표를 끊을 때에서야, 오빠가 준 그 기차표를 옷장 위에 고이 모셔두고 왔다는 걸 알았습니다. 헐... 이눔의 정신 머리. 어쩔 수 없지요. 그냥 두 장 끊는 수밖에...

 


전철역에 내려서 베르사이유 가는 길입니다. 저 멀리 베르사이유 궁이 보이네요. 세계 어느 곳이든, 커다란 가로수가 양쪽에 심어져 그늘을 만들어주는 길들은 다 멋진 것 같습니다.

 


베르사이유 궁이 좀 더 가까와졌네요. 아침 일찍 서둘러 나온 편인데, 벌써 주차장은 가득 차 있는 상황입니다.

 


베르사이유 입장 완료. 뮤지엄 패스를 끊어서 바로 들어갔습니다. 아... 눈부셔라. 선그라스는 어디다 삶아 먹을려고 저러고 찍었는 지 모르겠네요.

 

베르사이유 궁은 원래 루이 13세가 지은 사냥용 작은 궁전이었으나, 태양왕 루이14세가 정원을 만들고 건물도 증축해서 지금처럼 화려한 궁전으로 거듭났습니다. 궁전 내부는 정말 화려하다~~~는 감탄사가 나올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구요, 중요한 방들은 거울의 방, 전쟁의 방, 평화의 방, 아폴론의 방... 같은 일부 방들이죠. 천정과 온 사방이 그림으로 이루어지고, 수많은 조각과 부조들로 치장된 화려하기 그지 없는 궁전입니다. 루이 14세가 이리로 이사하면서, 파리의 모든 귀족들도 따라서 이사를 왔고 그래서 혁명 이전까지 거의 모든 왕족/귀족들이 모두 베르사이유 궁전과 그 주변에 모여 살았다고 합니다.
베르사이유 궁전엔 화장실이 없습니다. 따라서 관광객을 위한 화장실도 매우 부족한 편. 보일 때마다 수시로 들어가줘야 낭패를 면합니다. 예전엔 대충 근처 정원 나무 사이로 가서 알아서 해결하거나, 아니면 얼른 자기집까지 뛰어가서 볼일을 보고 다시 왔다고 합니다. 이 때부터 프랑스는 화장실 인심에 야박했었나봅니다. ㅋㅋ


왕실 예배당

 

열심히 오디오 가이드를 듣고 있습니다.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됩니다.
안내원에게 "Korea"라고 말을 하자, "안녕하세요~! 자, 1번, 녹색, 시작!" 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처음에 '시작'이란 말을 '치자'로 알아듣고 치긴 뭘 치나 고민했습니다. 어쨌든, 1번을 누르고 녹색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시작한다는 얘기를 활짝 웃는 얼굴로 잘 설명해주니 고맙더군요.

 


루이 14세 동상

 


사방 팔방 다 루이 14세

 


그 유명한 거울의 방입니다. 길이 73m, 너비 10.5m, 높이 13m인 회랑으로 거의 천정 높이까지의 거울이 벽면을 가득 매우고 있습니다. 천장은 다른 여느 방과 마찬가지로 프레스코화로 되어 있구요. 궁정의식을 치르거나 외국특사를 맞을 때 사용된 방이라고 합니다. (1783년 미국독립혁명 후의 조약, 1871년 독일제국의 선언, 1919년 제1차 세계대전 후의 평화조약체결 등)

 


왕의 침실

 


내려다본 정원의 모습입니다... 사실, 저는 이 나무들이 매우 불쌍합니다. 각을 잡아서 깎아 놓은 게 좀 답답하게 느껴져요. 저것도 예술이라고 봐야 할런지는 모르겠으나, 저렇게까지 각잡아 깎아 놓는 건 제 스타일은 아닌 듯 합니다. 여튼, 정원에 광활하다는 표현을 쓰는 게 어울리는 걸까요. 하지만, 광활하다는 말 밖에는... 그런데, 이게 빙산의 일각이었다니... ㅋㅋㅋ

 


왕비의 침실

 


전쟁의 방. 전쟁과 관련한 벽화가 양쪽 벽면 가득합니다

 


음... 주요한 방마다 이런 식의 현대 미술 작품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냄비로 만든 하이힐이라든가, 하늘에서부터 내려온 엄청나게 큰 모빌 같은... 도대체 이게 어울리지 않게 무슨 짓인가 싶었는데, 베르사이유에서 이런 식으로 새로운 작품들의 전시도 겸해서 한다는 게 꼭 나쁜 아이디어 같진 않더라구요. 전통과 현재의 만남 같은? 한 해 관광객만 수백만명인데, 그 사람들에게 자기 작품을 알릴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될 수도 있겠구요. 여러모로 참신한 아이디어 같기는 해요.

 


이제 궁전 구경을 다 마치고, 꼬마기차를 타러 갑니다. 꼬마 기차를 타고 별궁과 왕비의 촌락을 보러 갈껍니다. 저 너머가 아까 창에서 내려다본 정원인 거죠. 그 광활한 정원...^^

 


여기는 그랑 트리아농(Grand Trianon) 앞입니다. 루이 14세가 애인이었던 맹트농 부인과 밀애를 나누기 위해 조성한 곳입니다. 장밋빛이라고 해야 할 지, 하여튼 핑크빛 혹은, 연한 붉은빛이 도는 대리석이 정말 은은하고 우아합니다. 너무 이쁜 곳이에요. 그 대리석이 너무 특이하다보니 '대리석의 트리아농'이라 불리기도 한다네요.

 


여기는 쁘띠 트리아농(Petit Trianon) 앞입니다. 이곳은 루이 15세가 애첩이었던 퐁파두르 부인과 지내기 위해 만든 곳이라고 하네요. 아비나 아들이나... ㅋㅋ 뭐랄까, 아주 소박한 느낌입니다. 베르사이유궁과 대비하면 더욱 그렇게 느껴지지만, 그렇다고 볼품없어 보이진 않아요. 마리 앙투와네트가 특별히 좋아했던 곳이라고 합니다.

 


쁘띠 트리아농의 내부입니다. 침대 진짜 작습니다. 인류는 점점 더 큰 사이즈로 진화하는 게 맞나 봅니다.

 


당구대가 있는데, 포켓볼용 당구대입니다. 그런데 정확히 사이즈는 재보지 않았으나 당구장의 당구대보다 사이즈가 좀 크게 느껴지더라구요. 검증할 방법은 없네요...

 

자, 이제 왕비의 촌락으로 갑니다~
쁘띠 트리아농 옆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걸어가다보면 이번엔 마리 앙투아네트가 애인이었던 페르센과 밀회를 즐겼다는 정자가 하나 나오고, 거기서 더 가면 바로 왕비의 촌락이 나옵니다. 궁정 생활을 답답해 하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위해 12채의 시골집을 지어서 마을을 하나 만든 것이지요. 재미 삼아 시골 생활을 해보라는 배려였습니다. 진짜 시골에서 사는 사람들로서는 정말 황당할 노릇이었겠지만, 어쨌든 마을은 정말 이쁩니다. 그리고 진짜 시골 마을 처럼 텃밭이며, 농장까지 다 갖추었습니다. 이 농장에서 자라는 동물들이야말로 가장 팔자 편한 애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촌락 가는 길...

 


멀리 마을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연못이 굉장히 큽니다.

 


마을 정말 이쁩니다...

 


세상에서 가장 팔자 편한 소 앞에서...^^

 

이제 다시 왕비의 촌락에서, 그랑 트리아농을 거쳐 수로가 있는 곳까지 걸어갑니다. 꽤 한참을 걸어야 했는데, 가다 보면 이렇게 자연스럽게 자라도록 내버려둔 큰 나무들도 있습니다. 물론 각 잡아 깎은 나무들이 더 많긴 하지만요.


이건 뭐... 핫도그도 아니고... 나무를 어떻게 이런식으로 가지치지를 할 생각을 하는 지...

 


그랑 트리아농의 뒷부분입니다. 대리석 색이 이쁘지요?

 


운하가 어마어마한 규모입니다. 이 운하가 베르사이유 궁까지 이어지는 것이지요.

 


나오면서 다시 그랑 트리아농의 내부를 살짝 구경했습니다. 여기도 당구대가 있군요...

 

여기까지 구경하고, 다시 꼬마 기차를 타고 베르사이유궁으로 돌아와 밖으로 나왔습니다. 자전거를 빌려서 하루 종일 이 안에서만 놀아도 놀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도시락 싸들고 가서, 정원 아무곳이나 돗자리 하나 펴고 뒹굴뒹굴 누워서 책도 읽고 낮잠도 자고 도시락도 까먹고 놀면 딱 좋을 곳입니다. 예쁜 정원, 또 보고 싶네요...

 

자 이제 몽생미셸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 초원은 소금 초원입니다. 바로 저 수도원 부근부터 바다라 염분을 많이 머금은 곳이라고 하네요. 소금 초원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양들, 그런데 가만 보면 발과 얼굴만 까맣게 생긴 아주 특이한 애들입니다.

 

몽생미셸은, 섬 위의 수도원입니다. 이 섬은, 우리 나라의 진도처럼 밀물과 썰물에 따라서 육로로 연결되기도 했다가, 다시 섬이 되기도 했다가 합니다. 조수간만의 차가 15m나 된다고 합니다. 프랑스 정부는 이곳이 유명해지고, 많은 순례자들과 관광객들이 찾아오자 이곳에 둑을 쌓고 철길을 놓아서 사람들이 다닐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러다가 철길만 걷어내고 자동차로 갈 수 있도록 둑에 포장도로를 만들고 양쪽에 주차장을 조성했습니다. 그러다가 바로 얼마 전 그 주차장을 폐쇄하고 다소 먼 곳에 주차장을 만든 후, 셔틀버스를 타고서만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다가 되던 곳에 둑을 쌓아 놓으니 물의 흐름이 바뀌게 되고, 그러면서 둑의 양안으로 심한 퇴적이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지형이 변하고, 그것이 주변의 경관과 사람들의 생활에 영향을 주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프랑스 정부에서는 다시 둑을 걷어내겠다는 큰 결단을 내립니다. 그래서 지금은 사방이 공사 현장입니다. 일단 퇴적물을 걷어내고, 둑을 다시 없앤 후, 섬에 접근하기 위해 다리를 놓을 계획이라고 합니다. 이 공사가 2025년 완공 목표라는군요. 어찌 보면 참 별 거 아닐 것 같은 공사인데, 일단 자연 환경의 급격한 변화는 어떻게든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나라 같았으면 2~3년 안에 끝날 공사 같은데 말이죠. 어쨌든, 한번 자연을 망가뜨린 결과로 다시 십수년에 걸쳐 돈과 시간을 들여 복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우리의 4대강이 떠오릅니다. 아... 복구하려면 도대체 얼마가 들런지... 복구는 될 수 있을런지...

 

수도원으로 올라가는 일 입구입니다. 오로지 길은 하나. 양 옆으로 기념품 가게가 즐비합니다. 옛날에도 이곳은 수도원을 찾아오는 순례자들을 상대하는 가게들이 있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중간에 놓여 있던 광고판...? 여튼, 여기 사진 보시면 예전에 둑이 없던 시절의 사진입니다. 물 들어오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옛날 순례자들 중에는 물에 휩쓸려 죽은 사람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마지막 입장이 5시라서, 일단 허겁지겁 올라갔습니다. 수도원 입구입니다.

 

원래는 돌섬이었던 거죠. 그 돌 섬 위에 수도원을 지은 거라, 여기저기 곳곳에 원래 자연 그대로의 바윗덩이들이 드러나 있습니다. 정말 고생 많았을 것 같아요.

올려다본 수도원의 꼭대기... 전형적인 고딕 양식이네요.

 

제일 위의 황금빛 미카엘 천사 보이시나요? 미카엘 천사는, 이 수도원을 짓도록 주교의 꿈에 나타났던 천사입니다. 그래서 이 수도원을 짓고, 화룡정점으로 제일 위에 미카엘 천사를 올린 거지요. 이건 직접 올리지 못하고, 비행기를 동원해 마지막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수도원의 건축 과정을 모형으로 전시해놓은 것이 밑의 사진들입니다.

자 이제 꼭대기에 미카엘 천사를 올리는 작업입니다.

 

수도원 제일 위의 전망대까지 올라가서 바라본 전경입니다.

이게 다 갯벌이에요. 이 갯벌은 굉장히 단단해서 밟아도 빠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걸어다니기가 편하대요. 그리고 갯벌도 색이 하얀 편이에요. 우리 나라의 갯벌은 어두운 색이었던 것 같은데 말이죠.

전망대에서 한 장. 저 뒤에 보이는 것도 무인도입니다. 이 섬이 한 때는 요새로 쓰였었는데, 그 때 저 무인도와 함께 철옹성이 되어주었다고 합니다. 저 섬에 지어졌던 요새는 다 파괴되고, 지금은 다시 무인도가 되었구요, 이 섬은 수도원이 된 것이죠.

 

수도원의 주 예배당입니다. 내부 양식도 전형적인 다른 고딕 양식의 성당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높은 아치와 둘러선 회랑...

여기 저기 놓여 있는 성모상, 아치형 창문들... 이 수도원은 고딕양식과 로마네스크양식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웅장한 느낌이죠...?

 

여기도 계단틈에 바위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네요.

 

뒤에 보이는 곳은, 수도사들이 밥을 먹고 묵상을 하며 거닐었던 회랑입니다.

회랑이 참으로 화려하죠? 회랑 안쪽의 정원도 매우 깔끔하게 꾸며져 있습니다.

회랑에서 내다본 갯벌입니다...

회랑의 조각 장식이 참 섬세합니다. 나무 아치도 특이하구요.

회랑에서 올려다본 수도원 상부...

 

수도원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을 나타내주는 부조입니다.
수도원을 만든 것은 오베르 주교입니다. 어느날 오베르 주교가 꿈을 꾸는데 미카엘 천사가 나타나서 이 섬에 수도원을 지으라고 얘기를 합니다. 오베르 주교는 그냥 꿈이라 생각하고 무시해 버렸습니다. 그러자, 다시 미카엘 천사가 꿈에 나타나 오베르 주교의 이마를 엄지 손가락으로 꾹 누릅니다. 꿈에서 깬 오베르 주교가, 자신의 이마에 난 손가락 자국을 보고 그제서야 실행에 옮겨 이 수도원이 지어졌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미카엘 천사가 말하기를, 이 섬에 수도원을 지으면 절대로 외적이 이 땅을 차지하지 못하게 막아줄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실제로 이 섬은 단 한번도 외적에 의해 점령 당한 적이 없었고, 백년 전쟁 때도 영국은 결국 프랑스를 함락하지 못하고 물러서게 됩니다.  따라서 프랑스 사람들에게 이 몽생미셸은 더욱 특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구요. 수도원 제일 꼭대기에 황금빛 미카엘 상을 올리게 된 것도 다 이런 이유인 것이지요.

 

이곳은 순례자들이 묵었던 곳입니다.

 

수도원에 오게 되는 순례자들의 짐과 기타 여러 가지 필요 물품들을 끌어 올리던 도르레입니다.

 

알파와 오메가라고 써 있네요. 이곳은 장례 집전이 이루어지던 공간입니다.

피에타 상.

장례식을 치루던 곳에 어울리는 그림이라고 해야 할 지...

 

원래 수도원은 오로지 수도사들이나 순례자들만 묵을 수 있었습니다만, 이 곳은 요새로도 쓰였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기사들을 위한 공간이 존재합니다. 이 곳이 기사들이 묵었던 숙소입니다.

숙소에 있다가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기사들이 뛰어 내려가던 계단입니다.

 

이제 수도원을 내려오면서 찍어 보았습니다. 수도원의 뒷모습쯤 되겠네요.

 

수도원 밑의 마을에서 한장. 집들의 모양이 상당히 특이하죠?

나무조각 하나하나를 이어붙인 지붕입니다.

전형적인 노르망디 양식의 집이네요. 어떤 집은 납작돌들로 지붕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수도원으로 올라가는 좁은 길들과 옹기종기 들어앉은 집들...

 

다시 수도원 입구.
여기에는 유명한 과자가 하나 있습니다. 뿔라 Poulard 아줌마라고, 아주 오래 전 순례자들을 위해 오믈렛을 정말 맛나게 만들어 팔던 아줌마였는데, 이 아줌마가 음식 솜씨가 좋아서 과자도 맛나게 만들었다고 하네요. 식당에서는 여전히 오믈렛을 팔고, 이 아줌마 이름을 딴 과자를 여기저기서 팔고 있습니다. 식당은 지금 그 아줌마의 후손이 경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여기서 과자를 많이 사더군요. 저도 회사에 가져갈 과자를 좀 샀습니다.

 

우리가 먹은 저녁. 해물 모듬을 시켰습니다. 옹플레흐에서 홍합 한 냄비를 먹는 모습을 보고, 해산물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해물모듬이 괜찮다길래 일행 모두 이걸 시키고, 가이드 아저씨는 홍합을 시켰습니다. 결론은... 별루.
일단 게는 정말 맛 없었습니다. 우리 나라 꽃게나 대게만큼 달지도 않고, 그렇다고 킹크랩마냥 실하지도 않은 상황. 퍽퍽하고 별 맛 없더라구요. 고동 류는 나름 괜찮았는데, 메인이라 할 수 있는 게의 맛이 별루라서 실망이었습니다. 고동/소라는 정말 많이 주어서 결국 고동은 많이 넘겼습니다. 먹기 위한 노동력이 너무 많이 들었어요.
가이드가 이곳의 특산물 중 하나인 뽐므 시드르를 사주었습니다. 사과 탄산주? 사과 샴페인? 이라고 해야 할 것 같네요. 정말 술 같지도 않고, 달달하니 정말 맛났습니다. 하지만, 주당인 남편은 너무 술 같지 않다고 그닥 좋아하지 않더라구요. 하지만 내 입맛에는 딱!

 

저녁을 먹은 후, 몽생미셸의 야경을 찍기 위해 다시 수도원 밑으로 버스를 타고 왔습니다. 아직 해가 완전히 지지 않았습니다.

 

해가 지면서 제일 가운데부터 불이 켜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희한한 것이, 불이 한번에 켜지지 않습니다. 가운데를 시작으로 해서 한군데씩 한군데씩 켜지는 것이, 아무래도 사람이 올라가면서 수동으로 켜는 것 같은 느낌. 관리실이라든가 이런 곳에서 한번에 켜면, 쫙 불이 들어오는 걸 예상했는데 너무나도 황당하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나씩 하나씩 불이 켜지더라구요. 정말 재미났습니다.

시간차를 두고 가이드가 계속 사진을 찍어주었습니다. 우리는 삼각대를 안 가져가서 가이드가 찍어준 사진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바로 위 야경 사진은 삼각대도 없이 남편이 인간승리의 정신으로 얻어낸 야경! 오른쪽의 공사용 크레인이 흠이지만, 정말 잘 찍었네요. 사진 밑의 형광색 조끼를 입은 사람들은 일본인 관광객입니다. 너무나 재미있게도, 일본 관광객들은 다 저걸 입었더라구요. 야경 투어를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여행사에서 일괄적으로 나눠준 듯 합니다. 아무래도 밤이고, 차가 다니는 곳이니 안전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는지 미리 준비는 잘 했지만, 마침 옆이 공사장이다보니 다 공사장 인부 같아 보였다는...^^

이렇게 해서 몽생미셸 투어가 끝났습니다. 너무나도 아쉬운 하루, 정말 길었던 하루.
하지만, 정말 멋진 풍경들을 눈에 가득 담아 올 수 있어서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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