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일정은 베르사이유에서 출발입니다.

베르사이유는 파리 시내에서 비교적 가깝습니다. 가는 방법이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일종의 교외선 같은 RER을 타고 가는 방법이 있고, 아니면 지하철 한번에 버스 한번으로 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뭉치표(까르네)를 사면 전철표 달랑 두 장으로 베르사이유까지 갈 수 있어서 RER로 가는 것보다 싸다고 유럽여행 전문 까페에는 나와 있더라구요. 그렇게 가려고 했었는데, 일단 돈이 적게 드는 만큼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오빠도 그렇고 가이드도 그렇고 그냥 RER을 타라고 조언을 하길래 RER 탔습니다. 오빠는, 예전에 조카가 쓰다 남은 베르사이유행 RER 차표가 한 장 있다며 친절하게 아침에 챙겨 주었지요.

오빠 출근 길에 앵발리드 역까지 나와서 RER표를 끊을 때에서야, 오빠가 준 그 기차표를 옷장 위에 고이 모셔두고 왔다는 걸 알았습니다. 헐... 이눔의 정신 머리. 어쩔 수 없지요. 그냥 두 장 끊는 수밖에...

 


전철역에 내려서 베르사이유 가는 길입니다. 저 멀리 베르사이유 궁이 보이네요. 세계 어느 곳이든, 커다란 가로수가 양쪽에 심어져 그늘을 만들어주는 길들은 다 멋진 것 같습니다.

 


베르사이유 궁이 좀 더 가까와졌네요. 아침 일찍 서둘러 나온 편인데, 벌써 주차장은 가득 차 있는 상황입니다.

 


베르사이유 입장 완료. 뮤지엄 패스를 끊어서 바로 들어갔습니다. 아... 눈부셔라. 선그라스는 어디다 삶아 먹을려고 저러고 찍었는 지 모르겠네요.

 

베르사이유 궁은 원래 루이 13세가 지은 사냥용 작은 궁전이었으나, 태양왕 루이14세가 정원을 만들고 건물도 증축해서 지금처럼 화려한 궁전으로 거듭났습니다. 궁전 내부는 정말 화려하다~~~는 감탄사가 나올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구요, 중요한 방들은 거울의 방, 전쟁의 방, 평화의 방, 아폴론의 방... 같은 일부 방들이죠. 천정과 온 사방이 그림으로 이루어지고, 수많은 조각과 부조들로 치장된 화려하기 그지 없는 궁전입니다. 루이 14세가 이리로 이사하면서, 파리의 모든 귀족들도 따라서 이사를 왔고 그래서 혁명 이전까지 거의 모든 왕족/귀족들이 모두 베르사이유 궁전과 그 주변에 모여 살았다고 합니다.
베르사이유 궁전엔 화장실이 없습니다. 따라서 관광객을 위한 화장실도 매우 부족한 편. 보일 때마다 수시로 들어가줘야 낭패를 면합니다. 예전엔 대충 근처 정원 나무 사이로 가서 알아서 해결하거나, 아니면 얼른 자기집까지 뛰어가서 볼일을 보고 다시 왔다고 합니다. 이 때부터 프랑스는 화장실 인심에 야박했었나봅니다. ㅋㅋ


왕실 예배당

 

열심히 오디오 가이드를 듣고 있습니다.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됩니다.
안내원에게 "Korea"라고 말을 하자, "안녕하세요~! 자, 1번, 녹색, 시작!" 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처음에 '시작'이란 말을 '치자'로 알아듣고 치긴 뭘 치나 고민했습니다. 어쨌든, 1번을 누르고 녹색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시작한다는 얘기를 활짝 웃는 얼굴로 잘 설명해주니 고맙더군요.

 


루이 14세 동상

 


사방 팔방 다 루이 14세

 


그 유명한 거울의 방입니다. 길이 73m, 너비 10.5m, 높이 13m인 회랑으로 거의 천정 높이까지의 거울이 벽면을 가득 매우고 있습니다. 천장은 다른 여느 방과 마찬가지로 프레스코화로 되어 있구요. 궁정의식을 치르거나 외국특사를 맞을 때 사용된 방이라고 합니다. (1783년 미국독립혁명 후의 조약, 1871년 독일제국의 선언, 1919년 제1차 세계대전 후의 평화조약체결 등)

 


왕의 침실

 


내려다본 정원의 모습입니다... 사실, 저는 이 나무들이 매우 불쌍합니다. 각을 잡아서 깎아 놓은 게 좀 답답하게 느껴져요. 저것도 예술이라고 봐야 할런지는 모르겠으나, 저렇게까지 각잡아 깎아 놓는 건 제 스타일은 아닌 듯 합니다. 여튼, 정원에 광활하다는 표현을 쓰는 게 어울리는 걸까요. 하지만, 광활하다는 말 밖에는... 그런데, 이게 빙산의 일각이었다니... ㅋㅋㅋ

 


왕비의 침실

 


전쟁의 방. 전쟁과 관련한 벽화가 양쪽 벽면 가득합니다

 


음... 주요한 방마다 이런 식의 현대 미술 작품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냄비로 만든 하이힐이라든가, 하늘에서부터 내려온 엄청나게 큰 모빌 같은... 도대체 이게 어울리지 않게 무슨 짓인가 싶었는데, 베르사이유에서 이런 식으로 새로운 작품들의 전시도 겸해서 한다는 게 꼭 나쁜 아이디어 같진 않더라구요. 전통과 현재의 만남 같은? 한 해 관광객만 수백만명인데, 그 사람들에게 자기 작품을 알릴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될 수도 있겠구요. 여러모로 참신한 아이디어 같기는 해요.

 


이제 궁전 구경을 다 마치고, 꼬마기차를 타러 갑니다. 꼬마 기차를 타고 별궁과 왕비의 촌락을 보러 갈껍니다. 저 너머가 아까 창에서 내려다본 정원인 거죠. 그 광활한 정원...^^

 


여기는 그랑 트리아농(Grand Trianon) 앞입니다. 루이 14세가 애인이었던 맹트농 부인과 밀애를 나누기 위해 조성한 곳입니다. 장밋빛이라고 해야 할 지, 하여튼 핑크빛 혹은, 연한 붉은빛이 도는 대리석이 정말 은은하고 우아합니다. 너무 이쁜 곳이에요. 그 대리석이 너무 특이하다보니 '대리석의 트리아농'이라 불리기도 한다네요.

 


여기는 쁘띠 트리아농(Petit Trianon) 앞입니다. 이곳은 루이 15세가 애첩이었던 퐁파두르 부인과 지내기 위해 만든 곳이라고 하네요. 아비나 아들이나... ㅋㅋ 뭐랄까, 아주 소박한 느낌입니다. 베르사이유궁과 대비하면 더욱 그렇게 느껴지지만, 그렇다고 볼품없어 보이진 않아요. 마리 앙투와네트가 특별히 좋아했던 곳이라고 합니다.

 


쁘띠 트리아농의 내부입니다. 침대 진짜 작습니다. 인류는 점점 더 큰 사이즈로 진화하는 게 맞나 봅니다.

 


당구대가 있는데, 포켓볼용 당구대입니다. 그런데 정확히 사이즈는 재보지 않았으나 당구장의 당구대보다 사이즈가 좀 크게 느껴지더라구요. 검증할 방법은 없네요...

 

자, 이제 왕비의 촌락으로 갑니다~
쁘띠 트리아농 옆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걸어가다보면 이번엔 마리 앙투아네트가 애인이었던 페르센과 밀회를 즐겼다는 정자가 하나 나오고, 거기서 더 가면 바로 왕비의 촌락이 나옵니다. 궁정 생활을 답답해 하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위해 12채의 시골집을 지어서 마을을 하나 만든 것이지요. 재미 삼아 시골 생활을 해보라는 배려였습니다. 진짜 시골에서 사는 사람들로서는 정말 황당할 노릇이었겠지만, 어쨌든 마을은 정말 이쁩니다. 그리고 진짜 시골 마을 처럼 텃밭이며, 농장까지 다 갖추었습니다. 이 농장에서 자라는 동물들이야말로 가장 팔자 편한 애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촌락 가는 길...

 


멀리 마을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연못이 굉장히 큽니다.

 


마을 정말 이쁩니다...

 


세상에서 가장 팔자 편한 소 앞에서...^^

 

이제 다시 왕비의 촌락에서, 그랑 트리아농을 거쳐 수로가 있는 곳까지 걸어갑니다. 꽤 한참을 걸어야 했는데, 가다 보면 이렇게 자연스럽게 자라도록 내버려둔 큰 나무들도 있습니다. 물론 각 잡아 깎은 나무들이 더 많긴 하지만요.


이건 뭐... 핫도그도 아니고... 나무를 어떻게 이런식으로 가지치지를 할 생각을 하는 지...

 


그랑 트리아농의 뒷부분입니다. 대리석 색이 이쁘지요?

 


운하가 어마어마한 규모입니다. 이 운하가 베르사이유 궁까지 이어지는 것이지요.

 


나오면서 다시 그랑 트리아농의 내부를 살짝 구경했습니다. 여기도 당구대가 있군요...

 

여기까지 구경하고, 다시 꼬마 기차를 타고 베르사이유궁으로 돌아와 밖으로 나왔습니다. 자전거를 빌려서 하루 종일 이 안에서만 놀아도 놀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도시락 싸들고 가서, 정원 아무곳이나 돗자리 하나 펴고 뒹굴뒹굴 누워서 책도 읽고 낮잠도 자고 도시락도 까먹고 놀면 딱 좋을 곳입니다. 예쁜 정원, 또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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