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현 (지은이) | 카르페디엠 | 2011-05-30


책에서 주장하는 바는 간단하다. 전체 목차에 나와 있는 8가지의 명제 중에 하나라도 동의한다면, 이미 당신은 승자의 음모에 넘어 갔다는 것. 

제도권 교육만 착실히 받고, 별다른 사회적 미디어에 노출되어 있지 않은 채, 그저 열심히 주어진 일만 하며 살아온 사람이라면 적어도 반 이상은 동의할 수 있는 것들이겠지만, 스스로 '진보'에 가깝다고 생각하며 진보논객들의 글을 한두번이라도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쉽게 동의할 수 없는 명제들이기도 하다. 

1. 한국경제는 수출로 먹고 살아야 한다. 
2. 박정희 시대 개발 방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3. 대기업 재벌이 없으면 성장은 불가능하다. 
4. 노동시간 단축은 생산성을 떨어뜨린다. 
5. 토건 사업이 국가를 부강하게 만든다. 
6. 부동산이 아니면 부자가 될 수 없다. 
7. 개인의 행복과 불행은 성적순이다. 
8. 북한 체제의 붕괴에 대비해야 한다. 

1번과 2번의 명제에서 저자는 수출주도형 정책 덕에 우리 나라가 발전해왔고, 박정희 시대의 계획/국가개입 경제 정책 하에서 우리가 고도의 성장을 달성한 건 맞으나, 이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얘기한다. 이젠 내수가 강해져야 하고, 국가가 시시콜콜 나서서 주도하는 시장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저자는 약간의 흥분을 하며 장하준과 신장섭을 지나치게 많이 언급하며 그들을 비판한다. 물론, 요즘과 같은 복잡하고 불확실한 시대에서 아무리 저명한 경제학자라 할 지라도 그 사람의 이론이 100% 맞아 떨어진다고 볼 수는 없는 거 아닐까? 이론이란 것이 우리의 현실을 100% 설명해준다면, 리스크란 것은 없을 것이고 경제의 침체 또한 있을 필요도 없고, 우리는 부동산이나 주식 때문에 울 일도 없을 테니… 어떤 경제학자의 이론이란 것은 경제의 어떤 부분을 설명할 때 타당하거나, 혹은 그 이론의 이런 부분은 의미가 있다거나 이렇게 취사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또 그래야만 하는 거 아닐까? 나는 신장섭의 책은 읽어보지도 못했고, 장하준의 책도 두어 권밖에 읽지 못했으나, 저자가 이렇게 반복적으로 언급하면서 비판할 정도로 잘못된 이론을 얘기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자는 그들을 비판함으로써 자신의 견해가 옳음을 입증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자기의 견해가 옳은 근거를 여러 수치들이나 현상들을 더 많이 설명함으로써 주장해야 할 것 같다. 지당하게 옳은 견해를 주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저명한 학자에 반대함으로써 자신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서 조금은 아쉬웠다.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해서도, 난 저자의 견해에 대체로 동의하지만 충분한 근거를 보여주지 못한 점은 여전히 아쉽다. 노동시간 단축이 생산성을 떨어뜨리지 않는다는 근거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단순하게 미국이나 네덜란드의 예를 들며, 거기는 우리보다 훨씬 적게 일하나 생산성이 훨씬 높다는 결과적인 사실만 언급할 게 아니라 뭔가 과학적이고 통계적인, 수치를 가지고 얘기해야 하는 것 아닐까? 나는 그냥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내가 누군가와 논쟁을 할 때 무기가 되어줄 수 있는, 자본가를 설득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가 부족하다. 그냥, 적게 일하고 많이 쉬니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얘기만 반복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부동산 문제의 경우도 지극히 옳은 얘기들이다. 그런데 중간에 저자는 근래의 전세값 폭등의 원인에 대해서 여러 이유를 얘기하다가 자신은 집을 소유한 사람들이, 더 이상 집값이 오르지 않아 추가적인 소득을 노릴 수가 없기 때문에 전세값을 올려서라도 소득을 보전하려고 하기 때문도 주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고 서술한다. 일면 타당성이 있는 얘기고 충분히 그럴 듯 하다. 그런데 그걸로 끝이고, 더 이상 제시하는 근거가 없다. 그냥 저자의 느낌이라고 툭 던지고 끝낼 거라면 말은 왜 꺼냈을까 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가 없다. 경제학자의 생각이니 그냥 믿어야 하나? 

지극히 옳은 얘기를 속 시원한 어투로 우리 대신 내뱉어 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고, 그런 와중에서도 간간히 미처 생각지 못했던 우리의 고정관념 아닌 고정관념을 짚어주니 다행이지만, 여전히 등을 긁다 만 느낌이다. 2% 부족한 느낌이랄까. 경제학자가 어렵지 않게 우리들의 평범한 용어로 설명해주는 건 고맙지만, 그렇다고 그 설명의 깊이까지 얕게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비판을 조목조목 맥락의 처음부터 끝까지 제시하며 반증하고 논쟁할 것이 아니라면, 굳이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저 나의 길을 주장하면 되는 것일 뿐, 누군가를 반대함으로써 나를 드러내는 게 조금은 유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만일까.


'문화 > 그냥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빌뱅이 언덕  (0) 2013.02.01
불안  (0) 2013.01.30
몰락선진국, 쿠바가 옳았다- 반反성장 복지국가는 어떻게 가능한가?  (1) 2013.01.22
일생에 꼭 한 번은 들어야 할 명강  (0) 2013.01.11
좌파하라  (0) 2012.12.27



요시다 타로 (지은이) | 송제훈 (옮긴이) | 서해문집 | 2011-11-20 | 원제 沒落先進國: キュ-バを日本が手本にしたいわけ (2009년)



작년에 의료천국 쿠바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다른 분야의 상황도 궁금해서 집어든 책이다. 쿠바만 수없이 방문해서, 일본 사회에 끊임 없이 쿠바가 보여주는 여러 긍정적인 면들을 전파하고자 애쓰는 요시다 타로가 썼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쿠바의 도시농업, 주거, 환경, 에너지, 식량, 재해방지, 의료, 교육, 문화예술 등 선진적인 실험 모델을 르포 형식으로 취재한 글이다.


쿠바에 대한 환상으로 무조건 아름다운 면만 보고 다 잘 되어간다고 말하지 않기 위해, 부정적인 면도 충분히 기술하기 위해 애쓴 점이 눈에 보인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항목마다 마지막 마무리는 쿠바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에 대해 역설하고 있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의료천국, 쿠바를 가다'에 비해서는 좀 재미 없게 읽었다. 일부는 그 책과 내용이 겹치는 탓에 더 그랬던 듯... 하지만, 쿠바의 유기농업에 대한 이야기와 주거 정책에 대한 부분은 매우 흥미로웠다. 저공비행, 여전히 모두들 고성장을 외치는 가운데 저공비행은 몰락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과연 그것이 진정한 몰락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그와 달리, 앞으로 고도의 성장을 지속할 수 있을까? 이런 저공비행 속에서도 모두 함께 행복하기 위한 길을 걷고 있는 쿠바에게 우리는 정말 배울 것이 없을까? 진지하게 자문해봐야 한다.


누구나 최저 9년간의 의무교육, 169개의 기초 행정구역에 모두 존재하는 대학, 교육비는 대학원까지 무료, 1천 명당 유아 사망률은 4.7명(미국보다도 낮다), 아이들에게 접종되는 13종류의 예방백신 가운데 12종류가 국산, 세계 유일의 수막염 B형 백신을 포함해 수준 높은 바이오테크와 의료 기술 보유, 평균수명 78세, 100개국 이상의 가난한 개발도상국 지원, 출산휴가 18주(급여 100% 지급), 추가로 엄마든 아빠든 육아휴가 40주(급여 60% 지급), 직장 복귀 후에도 매일 한 시간씩 모유 수유할 권리 보장, 임신한 시점에서 태교를 위해 6일의 유급휴가, 아이가 아프면 아이를 소아과 의사에게 데려가기 위해 월 1일의 쉴 권리 부여, 이미 1970년대 초반에 가족법으로 부부가 가사와 육아를 평등하게 부담할 것을 규정... 낮아진 식량 자급률을 해결하기 위해 국토의 도처를 경작지로 개간하고, 도시농업을 지원하며, 종자에 대한 주권을 지키기 위해 꾸준이 연구개발을 하고 있다. 낡고 노후한 주거문제가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지만, 결코 서두르지 않고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과의 충분한 교감을 통해 개선하는 프로젝트가 정부에 의해서, 건축가들의 자발적 운동을 통해서 산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든, 미봉책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근원을 찾아서 해결하려는 노력이 눈물겹다. 그렇기에 3년 전에 발생했던 태풍의 피해가 여전히 100% 복구가 안 되었으나, 3년전이나 지금이나 그 어떤 태풍이 불어와도 사망자가 발생하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이젠 누구나 GDP, 1인당 GDP라는 숫자가 커지는 것만으로 우리가 행복지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렇다면 우리가 원하는 행복은 어떤 행복일까. 그리고 어떻게 얻어질 수 있을까. 쿠바를 보면 조금은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문화 > 그냥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안  (0) 2013.01.30
승자의 음모  (0) 2013.01.24
일생에 꼭 한 번은 들어야 할 명강  (0) 2013.01.11
좌파하라  (0) 2012.12.27
고수  (0) 2012.12.04


김지하 | 도정일 | 문정인 | 송호근 | 유홍준 | 이덕일 | 최재천 | 정재승 (지은이) | 블루엘리펀트 | 2012-03-14


월간 신동아 창간 80주년 기념으로 '한국 지성에게 미래를 묻는다'라는 주제 하에 우리 나라의 대표 지성이라 할 수 있는 8인을 초대해 매달 한번씩 강의를 했고, 이 강의를 책으로 묶었다. 사실, 책을 골라집을 때는 눈에 띄는 몇몇 사람을 보고 골랐고,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골랐다. 책을 펼치고 나서야 이게 '신동아'에서 펴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8명에 김지하가 끼어 있다는 걸 알았다. 미리 알았으면 안 샀을 수도. ㅋㅋㅋ 산 지 6개월이 넘은 것 같은데, 이제서야 읽으면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에 민망함을 느꼈다. 


송호근 교수의 강의는 딱히 인상적인 것이 없었고, 유홍준 선생이나 정재승 교수의 경우는 직접 강의를 들어본 터라 내용이 대부분 겹쳤다. 최재천 교수의 통섭론이야 다른 책에서도 많이 접했기에 또 딱히 임팩트가 없었고, 김지하는... 두페이지 읽다 넘겨버렸다. 도대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지 알 수도 없었고, 완전히 중언부언대는 듯한 느낌이랄까. 앞뒤가 안 맞는 얘기에, 무슨 사이비 교주 같은 얘기만 잔뜩 늘어 놓고 있는 듯 했다. 거참... 뭔가 그래도 성의를 표해 보려 했는데 능력 밖이었다.


문정인 교수의 '중국의 부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딱히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뭐, 중국의 부상을 주의 깊에 보면서, 한미 동맹, 북중 동맹을 어떻게 하느냐, 중국과의 외교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이냐에 우리의 미래가 달렸다는 얘기이면서, 정확한 대안을 내놓는 건 없었다. 그냥 잘 하자... 정도? 마지막 이덕일 선생과 도정일 교수의 강의가 나름 재미 있었다. 특히 조선 후기 정치사의 현재적 의의를 이야기하는데, 현재 우리 나라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왜곡된 관점의 시작이 인조반정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이 놀라웠다. 노론의 집권과, 그들이 주무르는 정치가 국가의 운명을 결정 지었고, 그들이 갈아 치웠던(?) 왕과 조선의 패망, 그리고 여전히 그들의 정신세계가 지배하는 작금의 현실까지. 이분이 썼던 책 중에 조선왕독살사건을 예전에 읽었었는데 조만간 다른 책들도 쭉 사서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도정일 교수의 경우는 인문학과 문명에 대한 성찰, 관용이라는 화두가 무척 신선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세계가 과연 문명의 세계인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강의라고나 할까.


어쨌든 이 책을 읽고 나니, 대한민국 역사에 대해서 다시 한번 제대로 보고 싶다는 욕구가 불끈불끈 솟는다!


"현재의 권력이 아무리 강해도 흘러간 과거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현재의 권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현실 정치를 잘함으로써 더욱 나은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지요. 역사학은 과거학이 아니라 미래학입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미래가 달라지는 겁니다. 현재의 권력을 가지고 과거 역사를 뒤바꾸려고 한 모든 정권, 모든 국왕은 실패했습니다. 영조가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선왕 독살설을 없애기 위해 과거의 정치에 매진했기 때문입니다. 그 와중에 사도 세자도 죽인 것입니다..." 212p.


"이인직은 이완용의 비서입니다. 이인직을 보내 "나라를 넘기면 우리에게 어떻게 해줄 것이냐라고 묻자, 고마쓰가 '귀족령을 만들어서 계속 귀족으로 대우하고 막대한 은사금으로 나라 팔아먹은 대가를 지불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에 이인직을 좋아서 돌아갑니다. 이완용이 데라우치 통감하고 협상하면서 '고종의 지위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라고 물어요. 데라우치가 '왕으로 봉할 거다'라고 하니까, 이완용이 '대공으로 하면 어떻겠느냐'라고 제안합니다." 217p


"공존은 문명의 정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문명이 정의로운 문명인지 아닌지, 문명의 거죽을 쓴 야만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은 공존의 가능성 유무이며, 공존의 정의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큰 자산이 바로 관용입니다..." 236p


"인간 존중의 사상은 지성사적 의미에서는 동서양에 걸친 오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존중의 토대가 되고 근거가 될 인권 개념을 사상 차원을 넘어 제도와 법률로 옮겨 내고 정착시킨 것은 근대 문명의 업적입니다. 자유 민주주의와 근대 헌법은 인권 개념을 '양도할 수 없는 기본 권리'로 제도와 법률에 정착시킨 근대 문명의 대표적인 업적입니다." 242p.

'문화 > 그냥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승자의 음모  (0) 2013.01.24
몰락선진국, 쿠바가 옳았다- 반反성장 복지국가는 어떻게 가능한가?  (1) 2013.01.22
좌파하라  (0) 2012.12.27
고수  (0) 2012.12.04
사랑하지 말자  (1) 2012.10.25



박노자 | 지승호 (지은이) | 꾸리에 | 2012-04-12



인터뷰 작가 지승호와 박노자 교수의 대담. 

박노자는 우리 나라에서 몇 안 되는 대놓고 좌파하는 지식인 중 한 명이라고 감히 말해본다. 지승호도 에필로그에서 말하듯이, 그렇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을, 특히 자신을 진보적이라 이야기 하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기도 한다. 박노자의 입장에서는 그 사람들이 전혀 좌파도 아니고 진보적이지도 않다고 얘기하기 때문이다. 불편해 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 사람들도 자기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 내가 스스로 깨닫고 있는 나의 약점을 후벼팔 때의 아픔이랄까.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이 귀화를 해서 우리 나라의 국민인 것이 다행스럽게 여겨지기도 한다. 누군가는 한곳에 꿋꿋이 서서 싫은 소리를 해줘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니까.


대선 내내 고민을 했었다. 누굴 찍어야 할까. 친구 말대로, 내가 어차피 문재인을 좋아한 것도 아니었고, 민주당을 신뢰한 것도 아니었는데 왜 고민해야 할까부터 시작해서, 정말 별 것도 아닌 수천만표 중에 한표지만 그래도 누가 과연 '내 후보' 인가를 생각하느라 머리도 아팠고, 그러다 다시 주적이 누구인지를 고르다가, 다시 내 편을 찾다가, 다시 차악을 고르다가, 그러다 혼자 짜증내다가... 그리고 남들과 마찬가지로 대선이 끝나고 멘붕을 겪었다. 그리고 생각한 것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집어든 '좌파하라'. 사실 내가 이 책을 산 것도 잊고 있다가, 사무실 이사를하느라고 짐을 싸면서 발견했다. 그것도 멘붕에 빠진 바로 그날. 무슨 계시인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집어 들었고, 나름 힐링이 되었다.


물론, 최악보다는 차악이 나은 거겠지만, 얼마나 나을 것이라 기대를 했던 것일까. 거기서부터 다시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었다. 박근혜가 노무현 프레임을 걸고 들어온 것도, 문재인이 결국 그 프레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도 단순한 정치공학의 문제가 아니라, 참여정부의 분명한 실정 때문이었던 것이고, 참여정부에 대한 안 좋은 기억들이 여전히 많은 사람들 머리를 헤집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여러 수치를 가져와서 경제 지표가 나쁘지만은 않았다라고 얘기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식자층이나 있는 사람들이 느끼고 알 수 있는 지표일 뿐, 특히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참여정부는 또다른 MB에 다름 아니었으니까.


일본에도 극우 정부가 들어섰고, 우리가 늘 부러워하고, 본받아야 한다고 그렇게 얘기하는 북유럽에도 극우 정당의 지지율이 올라가고 있다고 한다. 박노자는 그것을, 좌파 진영의 무능 때문이라고 힘주어 얘기한다. 좌파가 우향우를 하면 할수록, 거대담론만 뇌까릴 수록, 현실과 타협할 수록, 현실의 절망을 극복하고자 하는 민중들에게 아무런 대안을 주지도 못하고, 무엇이 문제의 근원인지를 알려주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결국 서로를 탓하거나, 내 울타리 밖을 탓하게 되고 그것이 극우주의에 대한 열광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이다.


박노자가 생각하는 좌파, 박노자가 생각하는 진보, 박노자가 생각하는 민주주의를 교육, 남북관계, 정치, 스타 지식인, 도덕성, 투표...등을 매개로 조근조근 잘도 풀어냈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 박노자는 어쩌면 대선의 결과까지도 짐작하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물론, 내가 박노자의 의견에 100% 동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여전히 나도 불편한 구석이 있고, 생각을 달리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자기가 우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이 한번쯤 읽어볼 필요가 있다. 정말 좌파가 뭔지, 진정한 민주주의란 무엇인지, 그리고 진정 내가 원하는 사회는 어떤 것인지, 그리고 나는 무엇을 할 것인지 차분히 정리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진짜 민주주의는, 우선 착취자들의 선거 왜곡(정치자금 증여 등)의 완전한 차단을 의미하며, 그 다음에는 무엇보다 숙련공 정도의 보수를 받고 일절 특권이 없는, 언제나 유권자에 의해서 소환이 가능한 민중의 대표자들이 매 순간 유권자들의 감시와 견제, 지도를 받고 유권자들의 이해관계를 충실히 실행하는, 조금 더 '소비에트'(노동자 평의회)와 같은 유형의 제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지금으로서는 그러한 진짜 민주주의는 꿈만 꿀 수 있는 것이고, 우리가 통상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현 제도는 '짝퉁' 물건에 불과합니다."


"숙제는 추가 학습노동으로서의 성격도 있지만, 무엇보다 계급적인 차이를 만들어내는 기제로서의 성격이 강하죠... 저야 정신노동을 하니까 집에 와서 이런 추가 노동을 할 여력이 있지만, 8시간 동안 공사장에서 벽돌 나르고 나서 아이 숙제를 도와준다고 생각해보세요... 제 아내만 해도 아들의 노르웨이어 작문 및 문법, 맞춤법 숙제를 도울 능력이 거의 없는데, 비서구 1세 이민자 학부모들이 다 그럴 것입니다... 숙제를 철폐하면 이와 같은 상류층, 중류 상부층의 아이들만의 '프리미엄'이 사라지고 그나마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기회가 약간 더 주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차라리 학교에 있는 시간에 아이들이 필요한 일을 다 하고, 집에서는 운동하고 놀고 보고 싶은 것만 보라는 겁니다... 학생도 학습노동자인데, 노동자는 노동하는 장소에서 노동을 해야지, 집에서까지 노동을 한다는 것은 학교에 의한 개인 시간의 식민화예요. 노동시간과 개인 시간이 구별되어야 합니다."


"극우파의 대중화는 급진적 좌파의 고학력자로서의 오만과 무능, 그리고 온건 좌파의 신자유주의적 배신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 상황의 해결 방법은? 무엇보다 혁명적, 계급적 좌파의 부활과 대중성 확보입니다. 적색당과 같은 급진 좌파 정당 사람들은 공장 노동자들을 상대하는 방법을 다시 배워야 하고, 그들의 요구 예컨대 제조업 보호 정책이나 해고 방지 등을 우선시할 줄 알아야 하고, 그들에게 오늘날의 상황에서 급진적 변혁이 무엇인지 이야기할 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브 나로드', 즉 인민 속으로 가야 하는 것이죠."


"기자들은 북조선 길거리에서의 집단 오열 장면을 매우 '이국적으로' 여겼습니다. 동시에, '독재자를 위해 꼭 울어야 하는' 북조선인들을 불쌍히 여기려는 분위기도 강했습니다. 그렇다면 6년 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돌아가셨을 때 그를 위해서 울었던 남한을 위시한 전 세계 가톨릭 신도들은 과연 어떻게 봐야 합니까?..... 가족들과 '혈족' 사이의 중간단위가 바로 사회적 이익집단이나 보스에 의해서 주도되는 정파 같은 집단인데, 이와 같은 관계 역시 우리는 의사 가족의 개념으로 파악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즉, 선배나 보스를 '가족의 어른', '형'으로 파악한 나머지, 그만큼 비판적 사고는 그 자리에서 마비되고 맙니다...... 몇 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비명에 돌아가셨을 적에 전국의 분향소들을 메운 인파들을 생각해보시지요. 그때... 노무현이란 정치인이 이라크 침략과 아프간 침략과 같은 초대형 국제범죄를 적극 방조해 종범으로 나섬으로써 한국 역사를 영원히 더럽혔다는 점이나, 노무현이야말로 한미 FTA 발안, 추진 과정을 소신껏 주도했다는 점을 설득시킬 수 있겠습니까?"




김수경 (지은이) | 자음과모음 | 2012-10-15


아버지의 폭력과 가정 불화에 못이겨 가출한 아이가 대학로 거리의 아이가 되고, 거기서 히로라는 친구를 만나 그 아이의 부탁으로 지리산 기슭 마을로 갔다가, 원인도 모른 채 양아치들에게 쫓겨 산으로 도망가게 되면서 전개되는 이야기. 아이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리듬감을 주변의 온갖 사물로 표현하면서 북치는 사람이라는 뜻의 '고수'라고 불리게 되는데, 그 아이가 대학로에서 보낸 이야기와, 산 속에서 만난 할머니와 겪게 되는 이야기가 큰 두 개의 줄기를 형성하며 전개된다.


거리의 아이들을 떠올렸을 때 연상되는 것은 어쩌면 뻔한 것들이다. 불량, 노숙, 더러움, 범죄, 가출, 문제아, 폭력... 하지만, 그건 일찌감치 사회의 규범과 일반적인 표준에 틀 지워진 어른들의 관점일 뿐, 그들의 세상에는 분명한 이유도 있고 그들의 방식이 있고 그들의 질서가 있을 것이다. 그 무리 속에서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와, 그들의 목소리... 세상에 대한 사랑,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아니면 이런 글이 나올 수는

 없을 터... 사람들이 외면하고 손가락질하는 대상들을 속 깊은 애정으로, 그들의 눈 높이에서 대변해주는 이야기가 너무도 흥미로와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 지 궁금해서 쉽게 중간에 접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단순한 가출 청소년들의 이야기라고만 단정 짓는 것은 금물. 저 멀리 캄차카 반도와, 만주 벌판, 그리고 백두대간을 따라 지리산까지의 긴 여행, 여행에 버무려지는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들까지... 개인적으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인 할머니. 결국 이 땅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모든 아이들을 감싸 안아야 하는 건 기성 세대인 거다. 결국 누구나 다 그 시기를 통과하면서 크든 작든 아픔을 겪어보지 않았던가. 꼭 그렇게 파란 만장한 삶을 살아온 할머니만이 감싸안을 수 있는 건 아닐게다. 조금 더 길게 살아오면서, 조금 더 많은 경험을 한 우리가 그들의 피난처가 되고, 그들을 강하게 만들어줘야 하는 거 아니겠는가. 


"쯧쯧쯧. 하긴 사람이 그렇더라. 살다 보면 훌쩍 큰 걸음을 내딛어야 할 때가 있지. 그걸 못 내딛으면 그냥 그렇게 굳어버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끔 딱 굳어버리지." - 237 p.



도올 김용옥 (지은이) | 통나무 | 2012-08-20


이 모든 건 트렌드다, 적어도 나에겐. 대선과 맞물리면서 그냥 지금의 시류에 어울리는 책을 집어드는 습관적 행동이랄까. 지난번에 이어 붉은색 표지라니, 좀 식상하지만 그래도 책 내용은 볼 게 조금 있긴 했다.

하지만, 도올은 내 스타일은 아니다. 스승과 제자의 문답 형식을 빌려서 서술을 해놔서 그런지, 읽다 보면 "이 할아버지, 참... 스스로를 엄청 높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조국, 주체성, 자주 등과 같은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우리 민족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반면, 언어 사용에 있어서는 지나치게 외국어 의존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충분히 한글로 써도 크게 문제될 것 같지 않은 단어까지 자기만의 발음을 그대로 살려서 써 놓는 건 좀 웃긴 것 같다.(backlash:백크래쉬, discipline:디시플린, theorem:테오렘 등이 대표적인 예) 뉘앙스를 그대로 전달하기 어려운 외국어라면, 원어를 병기해주고 발음 표시에 있어서는 적어도 외래어표기법에 맞추어주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싶은데, 우리 말로 써도 상관 없는 단어를 굳이 자기만의(!) 독창적인 발음을 고집해서 써 놓는 것은 자기의 독선과 아집을 보여주는 또다른 단면이 아닐까 싶다. 

10.26 사태를 심수봉의 증언을 빌어 자세하게 알게 되었고, 박정희의 사상적 변화에 대해서도 비교적 자세히 알게 되었다. 그 동안은 그저 만주군 출신의 다카키 마사오란 정도만 알고 있었고, 김재규의 총격에 사망했다는 정도였는데 그 독립운동가였던 그 형의 얘기로부터, 남로당 활동과 그 뒤의 전향 등은 내가 너무 대충 알고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사망 당시의 모습은, 심수봉의 증언이 맞다면, 머리 속에서 그리던 박정희의 모습 중 가장 긍정적인 평가를 해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적어도, 삶과 죽음에 연연해 하는 소인배는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 그런 측면에서 천박한 이명박 류와는 질적으로 다를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도올 이 사람이 스스로 자기를 평가하듯 우리 나라 최고의 사상가인지는 글쎄... 안철수에 대한 속좁은 삐침, 기독교에 대한 지나친 단순화과 적대감으로 이 사람이 결코 대인의 풍모는 갖추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도 좀 든다. 그러다보니, 전체적인 주장에 대해서도 동의가 잘 안 되는 측면도 많고 말이다. 박식한 분이긴 하지만, 훌륭한 분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게 만드는 책. 중간 주역 부분은 어렵고 지겨워서 패쓰했음. ㅋㅋ



"보수파들은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을 썼지만, 좌우를 떠나 가장 정직한 역사적 사실은 김대중/노무현의 10년의 치세야말로 "국민의 진보에 대한 열망을 처절하게 좌절시킨 10년"이라는 것이다. 이승만에서 전두환에 이르는 기나긴 독재의 세월 동안 형성된 국민정서의 정화(purification)가 김대중/노무현의 진보적 치세를 허락하였지만, 그들은 그 갈망에 전혀 부응하질 못했다. 따라서 그 좌절감의 백크래쉬backlash로 태어난 정권이 이명박 정권이며, 따라서 MB정권은 그 이전의 모든 죄악을 마음놓고 재현해도 될 만큼 자유로운 것이다. 그만큼 국민의 절망감이 깊고, 그 절망감이 파생시킨 가치의 혼란이 MB 죄악의 여백을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p.29 


"맹자는 이런 말을 한다. 아무리 위대한 신하가 그 나라와 군주를 위해 훌륭한 복무를 한다 할지라도, 그 군주가 걸桀과 같은 놈이라면 결국 민적 노릇을 하는 짓밖에는 되지 못한다.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것이 결국 걸을 부강하게 하는 것이요, 전쟁에 승리를 해도 걸의 폭정을 연장시키는 것일 뿐이다. 오늘의 양신은 결국 내일의 민적일 뿐이다." p.30 


"우리가 반드시 깨달아야 할 것은 북한의 문제는 남한의 문제로부터 객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객관적인 실체로서 대상화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북한의 역사가 곧 남한의 역사이며, 남한의 역사가 곧 북한의 역사이다." p.36


"통일을 말하는 자들은 대체적으로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통일'이 레토릭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나 남한이나 꾸준히 통일방안을 제시해 왔다. 그러나 그러한 도식적 방안의 대결은 정책의 방편으로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안의 레토릭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통일을 근원적으로 거부하는 완고한 세력들에게 덜미를 붙잡히는 시비의 말꼬다리가 된다는 것이다." p.41


박래군 | 김미화 | 은수미 | 홍기빈 | 홍세화 | 이창곤 | 박김영희 | 김현미 | 조국 | 장여경 | 이종석 | 이제훈 | 정대화 | 서화숙 (지은이) |  | 2012-09-03



늘 느끼는 것이지만, 굳이 난 이런 거 안 읽어도 고민 잘 해서 잘 찍을 텐데, 읽어야 할 놈들은 안 읽고 왜 내가 읽고 있는 걸까.

여튼... 경제/복지/소수자/자유권/통일외교 등의 분야로 나누어 대통령이라면 어떤 내용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대담 형식으로 정리를 한 책이다.

딱히 모르는 내용 없고, 내 생각과 다른 내용 없고... 그냥 평이하게 쭈루룩 읽히는 이야기들. 조금 더 쌈박한 정리를 원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다. 조금 산만한 느낌도 없지 않아 있고, 무엇보다 민주당 후보가 정해지지 않은 시점의 이야기라 김두관과 손학규 얘기도 다 나오는데, 오히려 손학규가 여러 면에서 후한 점수를 받는 것 같다. 그렇다고, 박근혜와 나머지 대선 주자들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도 아니라, 무언가 확실한 tip을 기대하고 읽는 사람이라면 더 헛갈릴(?) 상황이랄까. 결국엔 확실한 내 편은 아무도 없다는 확신만 갖게 됐다. 


"하지만 노동권은 헌법상의 자유권이고 사회권이에요. 절대로 침해해선 안 되는 게 자유권이구요, 정부가 존중하고 보호해줘야 하는 것이 사회권이에요. 노동권은 기본적으로 그 두 영역에 걸쳐 있는 권리죠. 따라서 내가 저임금 노동자이든 고액 연봉자이든 기본적으로 노동자라면 노동3권을, 근로의 권리를,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어요. 이런 권리를 지키겠다는 것은 민주주의 투쟁이고 권리 투쟁이에요. 먹고 살기 위해서 다른 것들은 포기할 수 있는 생존권 정도로 바라봐서는 안 되죠." 29 p.


"장애인등급제가 사실 우리나라와 일본밖에 없다면서요? ... 현재로서는 정부의 혜택을 받으려면 (장애인)등급을 받아야 해요. 1급이나 2급이 돼야 그나마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기초 생활수급자에 한해서 주어지는 장애인연금을 받을 수 있어요. 결국 수급자가 장애등급을 다시 받으려면 병원에 가서, 나는 이것도 못해요, 저것도 못해요, 나는 내 손으로 밥도 못먹어요, 약도 못 먹어요, 다 설명해야 돼요... 실제로 장애등급 판정을 받을 때마다 기분이 참 이상하죠. 나는 완전히 무능한 사람이라고 증명해야 하는 거니까요." 146 p.


"그러다 미국에 갔어요. 어느 학교에 입학을 시켰더니, 선생님이 애 아버지를 불러서는 너무 감사하다고 하는 거에요. 이 아이를 통해서 다른 아이들이 장애라는 게 뭔지, 친구를 어떻게 배려해야 하는 지 배울 수 있게 되었다면서. 이런 천사를 우리 학교에 보내주셔서 고맙다고 칭찬을 받았다니까요." 156 p.


"한 사회가 인권사회인지 아닌지를 평가할 때는 소수자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되죠. 소수자를 격리시키려 하거나 배제시키는 사회는 인권사회와는 거리가 멀다고 봐야 할 겁니다." 165 p.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88491X

'문화 > 그냥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좌파하라  (0) 2012.12.27
고수  (0) 2012.12.04
사랑하지 말자  (1) 2012.10.25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2) 2012.10.23
의료천국, 쿠바를 가다 - 세계적 의료모범국 쿠바 현지 리포트  (0) 2012.10.09

알랭 드 보통 (지은이) | 정영목 (옮긴이) | 청미래 | 2007-08-01 | 원제 Essays in Love (1993년)


한동안 애니팡에게 정신을 뺏겨서 다시 맘을 다잡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집어든 책.

원래 소설류를 많이 읽는 편은 아니지만, 왠지 오랫만에 시작하는 독서는 말랑말랑한 사랑 소설이어야 할 것 같았다.


플롯은 간단하다. 남자와 여자가 비행기에서 우연히(필연적으로) 마주친다. 그들은 사랑에 빠지고, 다른 연인들과 마찬가지로 알콩달콩 사랑을 나누다가, 서로 죽일 듯이 싸우기도 하다가,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고, 어느 한쪽의 사랑이 다른 한쪽보다 조금 빨리 식게 되면서 그들은 헤어지게 되는 이야기이다. 


작가가 20대 초반에 처녀작으로 쓴 작품이라는데, 작품 속에서 느껴지는 필력은 대단하다.

무엇보다 섬세한 묘사가 정말로 사실적이다. 사랑에 빠지는 경험과, 화학적 반응의 최대 유효기간이라는 3년을 지나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누구나 자신의 사랑은 특별하다고 얘기하고, 상대의 작은 반응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고, 자기들의 만남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수천 수만가지의 이유를 갖다 댄다. 그리고 그 이후에 찾아오는 밀당의 시기, 내가 너무나 매력적이라 생각했던 그 점이 어느 순간 내 뒷통수를 때릴 때의 멍함 같은 것...


다소 현학적인 면까지도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 소설은, 사랑에 빠지고 다시 그 사랑에서 헤어나오는 어찌 보면 세상에 널려 있는 경험을 매우 사실적으로, 분석적으로, 철학적으로 치밀하게 묘사해낸 가장 멋진 작품 중에 하나라고 생각이 든다. 이 사람, 정말 대단하다. 이 사람의 필력이 그저 부러울 뿐.


"침묵은 저주스러웠다.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둘 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것은 상대가 따분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매력적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둘 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따분한 사람은 나 자신이 되고 만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본질적인 평범함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그 광기를 드러낸다."


"오아시스 콤플렉스에서는 목마른 사람이 물, 야자나무, 그늘을 본다고 상상한다. 그런 믿음의 증거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자신에게 그런 믿음에 대한 요구가 있기 때문이다. 간절한 요구는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환각을 낳는다. 갈증은 물의 환각을 낳고, 사랑에 대한 요구는 왕자나 공주라는 환각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오아시스 콤플렉스가 완전한 망상인 것만은 아니다. 사막에 있는 사람은 실제로 지평선에서 무엇인가를 본다. 다만 야자나무는 시들었고, 우물은 말랐고, 오아시스는 메뚜기로 뒤덮였을 뿐이다."


"미망은 그 자체가 해로운 것이 아니다. 혼자서만 그것을 믿을 때,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못할 때만 해가 된다. 클로이와 내가 사랑의 노른자위를 말짱하게 보존할 수만 있다면, 진실이 무엇이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심지어 사랑을 받는 것에도 엄청난 편견이 개입되어 있다 - 기분좋은 왜곡이지만, 어쨌든 왜곡은 왜곡이다. 나르시스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촉촉한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실망을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어떤 눈도 우리의 '나'를 완전히 담을 수는 없다. 우리 가운데 어느 부분은 절단당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치명상이든 아니든."


"우리가 우리 짝과 얼마나 행복하든, 그 사랑 때문에 다른 사람을 쫓는 일은 방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 짝을 진정으로 사랑하는데도 왜 그것이 구속으로 느껴지는 것일까? 짝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기울고 있는 것이 아닌데도, 왜 그것을 아쉬워할까? 사랑의 요구가 해결되었다고 해서 늘 갈망의 요구까지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내내 나는 겨울방학을 고대했다. 가족이 두 주 동안 알프스로 스키를 타러 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산꼭대기에 올라가 밑의 소나무로 덮인 골짜기와 위의 부서질 듯한 파란 하늘을 보면 실존적인 불안에 완전히 사로잡히곤 했다. 그러나 그 일에 대한 기억에는 그런 불안이 증발해버리고 없었다. 기억은 객관적인 조건들[산꼭대기, 부서질 듯한 파란 날]로만 이루어져서, 실제 그 순간을 힘겹게 만들었던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불안은 내가 코를 줄줄 흘렸거나, 목이 말랐거나, 목도리를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니었다. 한 해 내내 나를 위로해주었던 미래의 가능성 하나가 마침내 현실이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주저했기 때문이었다..... 스키를 타던 방학은 [일반적으로 내 삶의 많은 부분도] 그렇게 흘러갔다. 아침의 기대, 현실에서의 불안, 저녁의 유쾌한 기억."


"클로이와 보낸 시간은 주름이 잡히며 폭이 좁아졌다. 수축하는 아코디언 같았다. 내 사랑 이야기는 얼음 덩어리와 같아서, 현재로 들고 오는 동안 차차 녹아버렸다. 그것은 마치 역사의 일부가 되어버린 현대의 사건, 역사가 되는 과정에서 몇 가지 중심적 세목으로 축소되어버린 사건 같았다."


"영혼은 낙타의 속도로 움직인다는 아랍속담이 있다. 우리는 시간표가 꽉 짜인 현재의 무자비한 역학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나아가지만, 마음의 자리인 영혼은 기억의 무게에 힘겨워하며 노스탤지어에 젖어서 느릿느릿 뒤따라 온다...... 낙타는 시간을 따라 걸어가면서 짐이 점점 더 가벼워졌다. 계속 등에 실린 기억과 사진들을 흔들어 사막에 떨어뜨렸고, 바람이 그것들을 모래 속에 묻어버렸다. 낙타는 점점 더 가벼워져서 나중에는 그 독특한 모습으로 뛰어가기까지 했다. 그러다 마침내 현재라고 부르는 조그만 오아시스에서 이 지친 짐승은 나의 나머지를 따라잡게 되었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6836246


요시다 타로 (지은이) | 위정훈 (옮긴이) | 파피에(딱정벌레) | 2011-05-27


쿠바는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 체게바라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을 때 그랬고, 한국인 할아버지가 택시 기사를 하며 행복하게 늙어가고 있는 글을 봤을 때, 얼마 전 쿠바 여행기를 읽었을 때 그 생각은 더더욱 굳어졌다. 그러나 내 마음속의 이상적인 사회는 이미 존재하지 않았고, 쿠바는 우리 사회와 정반대의 갈등을 겪으며 조금씩 힘들어지고 있었다. 노인들은 혁명을 그리워하고, 젊은이들은 자본주의를 갈망하는 나라. 

쿠바라는 나라가 어디를 향해 갈 지 그건 아무도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그래도 쉽게 무너질 나라는 아니구나'라는 것. 이 나라의 저력은 '연대'의 원칙에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어느 사회든 갈등이 존재하지 않을 수 없고, 획일된 사고방식으로 사회를 통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절대 다수가 동의하는 어떤 원칙이 있고, 그 원칙이 합리적인 진보를 가능하게만 한다면 속도는 어떠하더라도 결국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그리고 결국엔 그런 꾸준한 진보가 승리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 물론, 그건 꼭 가보고 싶은 나라에 대한 나의 편애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 나라의 위태로운 건강보험제도를 두고 세계 최고 레벨이니 뭐니 떠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쿠바에 비하면 너무 보잘것 없으니까. 너무나 파격적이고, 너무나 급진적이기 때문에 당장 이렇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의료에 대한 철학,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사명감, 의학에 대한 투자, 국경과 이데올로기를 넘나드는 인류에와 연대 정신은 어떻게든 배워 왔으면 좋겠다.


"40년이나 되는 경제봉쇄에도 불구하고, 쿠바가 교육, 의료, 문화, 과학, 스포츠, 그밖의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사실에는 아무도 의심을 품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IMF 멤버가 아니라는 특권 때문이다."(2000년 열린그룹77 정상회의, 카스트로)


"타국은 많은 설비나 헬리콥터와 자금을 보내고 있지만 불과 몇백만 달러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필요한 것은 생명을 구하고 아픈 이들을 치료할 의사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의사를 보낼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을 갖고 있지도 않고 편성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혁명이란 어떤 것인가,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낸 인적 자본의 거대한 부란 어떤 것인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2005년 파키스탄 대지진 당시 최대 규모의 의사단을 파견하며)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5901621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


파리의 미술관은 크게 세 곳으로 대표됩니다. 곳곳에 위치한 소규모 미술관/박물관에도 물론 엄청나게 많은 작품들이 있지만요.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퐁피두 센터죠. 이 중 오르세 미술관은 19세기의 작품들을 망라해 놓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해 2월혁명이 일어난 1848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인 1914년까지의 작품들인 거죠. 이 이전의 작품은 루브르에, 이 이후의 작품은 퐁피두에 전시되어 있다고 보면 됩니다.

"1804년 최고재판소로 지어진 건물로 오르세궁이라 불렸으나 불타 버리고, 1900년 개최된 ‘파리만국박람회’를 계기로 파리국립미술학교 건축학 교수였던 빅토르 랄로에 의하여 오르세역으로 다시 지어졌다. 현대적으로 지은 역사(驛舍)였으나 1939년 문을 닫게 된 이후 방치되었다가 1979년에 현재의 미술관 형태로 실내 건축과 박물관 내부가 변경되어 1986년 12월 ‘오르세미술관’으로 개관되었다. [출처] 오르세미술관 | 두산백과"

오르세궁이 불타 버린 후에는 도심의 공원으로 사람들이 이용했다고 합니다. 제대로 갖춰진 공원은 아니었으나, 폐허가 되어버린 궁터와 그 틈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들이 나름 분위기 있는 광경을 제공했다고 해요. 그러다가, 오를레앙 철도공사의 제안으로 철도역으로 만들어졌는데, 이 때 만국박람회에 맞추느라 엄청난 공기단축을 감행했다고 하네요. 이후 다시 방치되었다가 미술관으로 바뀝니다. 

19세기의 회화 작품이 주가 되다 보니, 우리가 교과서에서 보았던 낯익은 그림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 사람들은 많은 경우 루브르보다는 오르세에 대한 기억을 더 좋게 가진 사람들이 많더군요. 이번에도 그런 낯익은 그림들을 만나서 반가웠던 반면, 지난번에 갔을 땐 그닥 눈에 보이지 않던 그림들이 눈에 들어오는 경우도 있더라구요. 그 감동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좀 정리해 봅니다. 너무나도 유명한 마네, 모네, 고흐, 고갱, 밀레, 세잔, 르느와르, 드가... 등은 skip 입니다. 


#1.

페르낭 코르몽(Fernand Cormon, 1845-1924), 카인(Cain) 

기독교인들은 너무나 잘 아는 카인과 아벨의 바로 그 카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낳은 두 형제인데, 가인이 질투로 인해 아벨을 죽이고, 쫓겨나게 되죠. 이 그림의 가장 앞에 선 사람이 카인입니다. 카인의 죄악으로 인한 기나긴 고생의 나날을 우화적으로 표현한 그림이라고 해야 할 것 같네요. 인물 하나하나에 고단한 삶의 흔적들이 보이는 그림인데, 사이즈가 굉장히 커서 보는 순간 바로 압도 되어 버리더군요. 캔버스에 유채 그림이고 사이즈는 308 x 700cm 입니다. 1880년 작품입니다.


#2.

토니 로베르 플뢰리(Tony Robert-Fleury), 코린트의 마지막 날 (기원전 146년) (Le dernier jour de Corinthe (146 avant J.C.))

배경은 전쟁이에요. 코린트면 성경의 고린도인데, 성경 상의 어떤 사건은 좀 아닌 것 같아요. 코린트는 그리스 중남부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있는 도시입니다. BC 8세기 경에 도시 국가가 완성되었고, 부를 누리며 번성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성경에도 나오듯 물질적인 번영과 함께 타락도 동반했던 것 같네요. 여튼, 중세 후기에 이르면서 쇠퇴하다가 1458년 터키에 정복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역사로 보면, 아마 터키에 정복될 당시의 모습을 그린 게 아닐까 개인적으로 추측을 해봅니다만, 아무리 검색을 해도 이 그림과 관련한 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네요. 

여튼, 이 그림을 보면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군인들이 진군해오는 상태에 여인과 아이들은 무방비로 노출된 상태입니다. 한쪽 구석에서는 겁탈당하는 장면도 묘사되어 있고, 잔뜩 겁을 집어 먹은 여인들, 숨어 있는 여인, 그저 괴로워하는 여인, 아이를 안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여인, 죽은 것 같은 아이를 올려놓고 망연자실한 여인, 그리고 이미 쓰러진 남자들... 전쟁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걸 너무나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는 그림입니다. 눈물이 찡할 정도로요... 이 그림은 리얼한 현장 포착의 보도 사진보다 더 제 마음을 울렸습니다. 캔버스에 유채 그림이고 사이즈는 400 x 600cm 입니다. 19세기경으로만 알려져 있습니다.


#3.

레옹 프레데릭(Leon Frederic), 노동자의 시기들(Les âges de l'ouvrier, triptyque)

이 사람은 벨기에의 화가구요, 세쪽으로 나누어져 그려진 그림입니다. 인체의 명암표현이 선명하게 대비되도록 표현을 한 게 특이해요. 제일 왼쪽엔 힘든 일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그려져 있고, 제일 오른쪽은 아기를 돌보고 있는 엄마들, 그리고 가운데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제목이 노동자의 시기라는 것은 이 세 폭에 주로 등장하는 연령대의 사람들은 모두 '노동자'라고 보고 있다는 것이 되어버리나요? 예전엔, 아이들을 그저 '작은 사람'으로만 보았다는 걸 이 그림에서도 알 수 있는 것 같네요. 저는 미처 보지 못했는데 가운데 중앙에 장례식의 행렬이 있어요. 결국 우리 모두는 저 길로 간다는 걸 얘기해주는 것 같아요. 어쨌든, 이 그림 또한 표현 방식의 강렬함과 리얼리즘으로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캔버스에 유채 그림이고 사이즈는 163 x 93.5cm, 1895~1897


#4.

루이스 어니스트 바리아스(Louis Ernest Barrias), 과학의 등장으로 베일을 벗는 자연(Nature Unveiling Herself to Science)

이번엔 조각인데요... 밑의 부분별 확대 사진을 다시 한번 보세요... 정말 환상적이지 않습니까? 돌로 저런 곡선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정말 살아 있는 여성 같은 따뜻함과, 색색의 돌들로 이루어진 옷과 장신구. 

와우~~ 정말 환상적입니다... 청록색 보석과 푸른색의 띠까지!

발끝으로 흘러내리는 드레스의 우아한 자연스러움!

금방 나를 쳐다보며 웃어줄 것만 같은 느낌, 스르륵 저 매듭이 풀어지며 사뿐히 걸어 내려올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지 않나요?

제목이 좀 특이하다 했는데, 1889년 보르도의 의학 대학이 생기며, 장식용으로 의뢰된 조각이라고 합니다. 의학과 과학, 자연, 인체... 조각이 은유하는 것이 무엇일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저는 이날 처음 봤는데, 너무나도 유명한 조각이라 장식용으로 굉장히 많은 모조품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어쨌든 멋집니다. 높이 2m.

===== ㅇ ===== ㅇ ===== ㅇ ===== ㅇ ===== ㅇ ===== ㅇ ===== ㅇ ===== ㅇ ===== ㅇ ===== ㅇ ===== ㅇ ===== ㅇ ===== ㅇ =====

자, 이제부터는 귀스타프 쿠르베(Gustave Courbet)의 그림입니다. 이번에 새롭게 빠져든 화가죠. 사실주의 화가로서 "나는 천사를 그릴 수 없다. 한번도 보지 않았기 때문에."라고 말해서 유명한 사람입니다. 오로지 자기 눈에 보이는 것만 그대로 표현을 하죠. 하지만, 화가의 개인적인 감성이 반영되지 않을 순 없겠죠. 쿠르베 그림의 분위기와 소재, 그리고 그림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들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나름 부유하게 태어나 부모님의 도움으로 그림을 그렸지만, 파리 혁명 당시에는 민중들의 편에서 싸우기도 했던 사람이구요. 


#5.

화가의 작업실(The Painter's Studio; A Real Allegory), 361 x 598cm

1855년 국제박람회에 출품했다가 거절당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도 매우 큰 작품인데, 작품의 사이즈도 거절의 이유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쿠르베는 인물을 사실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실제 인물만큼은 커야 한다고 생각했기 대문에 큰 작품을 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림 속의 화가는 자기 자신입니다. 나체 모델이 하나 서 있고, 어린 아이가 있죠. 그림 해설에서는 모델은 '진실', 아이는 '창조'를 은유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게 쿠르베가 한 말인지 사람들이 갖다 붙인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오른쪽에는 지식인들, 상류층 사람들, 화가의 후견인 그룹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매우 밝고 자유스러운 느낌입니다. 그리고 왼쪽에는 현실을 대변하는 민중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배고픔, 가난, 추위 등 곤궁한 현실인 거죠. 사회는 그렇게 양분되어 있었지만, 자신은 중간에서 양쪽을 매개함을 나타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6.

폭풍우가 지나간 에트르타 절벽 (La falaise d'Etretat après l'orage), 133 x 162cm

프랑스의 서쪽 노르망디 해변의 에트르타를 배경으로 그린 그림입니다. 세번째 날 여행기에서 실제 사진을 첨부하겠지만, 정말 이것과 '똑같습니다'. 모네도 이 해안을 좋아해서 에트르타를 그린 그림이 많이 있는데, 모네의 그림과 비교해보면 더더욱 쿠르베가 왜 사실주의 화가인 지, 모네는 왜 인상파인지 알 수가 있습니다. 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 너무 좋아요...^^


클로드 모네, 에트르타 절벽의 일몰


실제 에트르타 해변의 코끼리 바위


#7.

수원지(The Source), 128 x 97cm

쿠르베의 그림 중에 누드화가 꽤 있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이 당시까지만 해도 여인의 몸은 고대로부터 이어진 화법 그대로 절대적 미를 갖춘 모습으로 묘사하는 것이 주류였다고 합니다. 매끈한 피부, 완벽한 균형 등으로 대표되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그런 몸을 가진 여인이 실제로 몇이나 되겠습니까. 이것은 사실주의에 어긋나는 것이죠. 그래서 쿠르베는 반기를 들고 여인의 나체를 그립니다. 이 작품에서 보듯이 말이죠. 한눈에 봐도 77사이즈 이상은 되어 보이는 저 풍만한 중부지방을 보고 누가 완벽한 여인의 모습이라고 하겠습니까. 특히 전통적인 그림만 보아오던 사람들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겠죠. 미술계에서는 이걸 반항적 의미로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전시회장을 방문했던 나폴레옹 3세는 이 그림으로 인한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이 들고 있던 승마용 채찍으로 화면을 내리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네요. ㅋㅋㅋ


#8.

오르낭의 매장(A Burial at Ornans), 314 x 663cm

1849년에 오르낭에 머물며 그리기 시작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위해 실제 마을의 대다수가 모델을 자처했다고 하네요. 사실주의 작가였기 때문에, 당연히 실제 인물을 하나하나를 모델로 하여 그림을 구성했다고 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이 모델이 되었기 때문에 무척 뿌듯해 했으나, 정작 1850-1851 살롱전에서는 무시 당했습니다. 그림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저는 그저 사실적인 묘사 자체가 참 마음에 듭니다. 전체적으로 장례식다운 어둡고 깊은 톤 속에서, 각 인물들의 표정이 다 살아 있는 것 같습니다. 모두다 똑같은 감정으로 슬퍼하지 않는 곳이 장례식이쟎아요. 그래서 마음에 듭니다. 사이즈를 보시면 알겠지만, 정말 큰 그림이지요. 오르세에서도 벽면 전체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