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다큐프라임「아버지의 성」제작팀 (지은이) | 베가북스 | 2012-11-28


모성애는 날때부터 갖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물론, 난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런 것과 무관한 여자들을 보았던 탓도 있겠지만, 어떤 것이든 타고난 것으로 귀결시켜 버리는 결정론 자체가 조금은 거부감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남자들에게는 부성애와 같은 감정이 도대체 언제 생길까가 참 궁금했다. 내가 임신했다고 얘기할 때도 남편은 드라마에서처럼 만세를 부르지 않았다. 그리고 임신 기간 내내 들떠 있지도 않았고, 아기를 낳은 후 키울 때에도 남편은 한발 물러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모든 것이 서투르기만 해서 구박도 많이 받았고, 육아에 관한한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게 남편이라는 농담도 종종 했다. 더불어 사랑의 크기로 비교해보자면, 모성애 다음에 조모성애가 있고 그 다음에 이모성애, 고모성애가 있고, 그 다음에 조부성애가 있고, 제일 뒤에 부성애가 있다고까지 자신 있게 얘기했으니까.

물론 그렇게 말한 것은, 나의 개인적 경험과 내 지인들의 경험을 대충 버무려서, 보편적인 모습을 뽑아내어 일반화 시킨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주변을 돌아보면, 엄마보다 아이와 훨씬 더 친밀한 아빠들도 있고, 엄마보다 아이의 필요 - 기저귀 교체, 젖병 물리기, 음식 만들기 등 - 에 훨씬 더 능숙하게 대처하는 아빠들도 있다. 그렇다면, 결국 개인의 성향 및 취향, 성격 탓으로 돌려야 하나? 이것 또한 선척적으로 그래~라고 일갈해버리는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결론이 되어 버리니 맘에 드는 결론은 아니다.

이 땅의 남자들은 지금의 아빠상과는 전혀 다른 아빠들 밑에서 자라왔다. 그 아빠들을 보면서 아빠 수업을 했고, 일부의 남자들은 그것으로 모자라 자기 스스로 아빠 되는 법을 배우면서 아빠의 모습을 만들어 왔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현재의 아빠들은 과거의 아빠들과는 많은 면에서 다르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모든 경제적 책임을 떠안은 채 아내에게 안 살림을 일임하고, 자식이 행여 잘못되기라도 하면 집구석에서 애들을 어떻게 키운 거냐고 큰소리 치는 남자가 과거 대부분의 아빠들이었다면, 지금의 아빠들은 그와는 좀 다르다. 많은 젊은 남자들이 친구같은 아빠인 '프레디'를 지향하고, 간혹 섬세한 남자들은 아가용품을 직접 만들며 2세를 기다리기도 한다. 남자들의 육아휴직이 법으로 보장되었고, 출산 휴가 정도는 눈치 보지 않으며 자유롭게 쓴다. 공무원 조직을 중심으로 과감하게 육아휴직을 실행에 옮기는 남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자기를 키워주신 아빠의 모습에서 조금 더 이상적인 아빠의 상을 결합해서 자신만의 아버지상을 만들어 나가는 젊은 아빠들이 지금은 당연한 게 되었다. 보면서 배우고, 부족함을 느끼며 또 배우는 과정에서 시대의 아버지상은 점차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여자로 태어났다고 해서 모든 여자들에게 모성애가 철철 흘러 넘치는 게 아니듯이, 남자들이 아빠가 되는 것도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연습이 필요하다. 그리고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해주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명확히 이해하고, 자녀들의 양육을 어머니들과 함께 나눌 필요가 있다. 그리고 혹여 싱글맘일 경우, 아빠의 존재가 왜 필요한 지를 이해하고 아빠의 역할을 대신해줄 누군가를 만들어주거나, 스스로 그런 역할까지 감당하기 위한 공부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좀 무게감이 떨어진다. 제목과 광고 문구에 비해서 너무 이런이런 아빠들이 있다는 나열식이다. 남자와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이해하게 되기를 바라고 읽었는데, 그냥 내가 남편에게 늘 하던 잔소리를 책을 통해 보는 느낌이랄까. 부유수유 같은 조금은 쇼킹한 얘기들을 언급하고 있지만,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결론까지 굉장히 많이 돌아오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너무나 아빠와 엄마를 남여의 성역할에 고정시켜서 설명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살짝 거부감도 드는 게 사실. 하지만, 이 책은 나를 위한 책이 아니라 보편적인 아빠들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하며 애써 너그럽게 이해하기로 했다. 어쨌든, 세상에 어떤 아빠들이 있는 지, 이 땅의 아빠들은 한번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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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 김미월 (지은이) | 유유 | 2012-07-20



로자 룩셈부르크는 알았어도 박진홍은 몰랐다. 맞다. 근대 사회 어디쯤엔가, 우리 나라에도 사회주의가 흥했던 적이 있었고, 그렇게 서로 사상을 논하던 때가 있었으니 그것이 남자들만의 전유물이었을 리는 없었을 게다. 하지만, 그 삭막하고 꽉 막힌 조선, 남자들만이 사람 취급을 받았던 그 사회에 대한 인식이 너무나 강하게 박혀서인지, 여성 대통령이 저렇게 떡하니 푸른 기와집에 앉아 있는 지금도 우리 나라 역사에서 '여자' 사람이 무슨 역할을 하기나 한 적이 있는 지 관심조차 없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일제 시대의 여성 사회주의 운동가라니. 너무나 낯설었지만, 그만큼 반가웠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많은 여인들이 있었구나. 김수영의 여자 김현경, 백석의 나타샤 김영한, 시대가 감당할 수 없었던 허난설헌과 황진이, 사춘기 소녀들의 마음을 한번씩은 휘저어 놓았을 전혜린, 문학의 어머니 박경리... 

우리 나라를 벗어나보면 또 다른 이름들이 아름다운 삶을 살다가 갔다. 강인한 어머니 케테 콜비츠, 아름다운 권력을 행사할 줄 알았던 다니엘 미테랑,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사랑하고 스스로를 극복해 내었던 프리다 칼로, 인간의 울타리를 넘어선 침팬지의 친구 제인 구달, 그리고 혁명의 독수리 로자 룩셈부르크...


그리하여 소설가 공선옥과 김미월이 동서양과 시간을 초월하여,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여자들과 그들의 삶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본 이 책은, 다시 내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책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앙증맞게도 앞 뒤 어디서 펼쳐보아도 책의 앞면이 되게끔 만들었으니 더더욱 그러할 수밖에... 


다만 아쉬운 게 있다면, 각 여성들에게 할애된 지면이 너무 적다는 것. 나중에 여력이 된다면, 이 사랑스러운 여인들의 삶을 다시 하나 하나씩 되짚어보고 싶다. 그래서,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 한스러울 수 있는 삶들을 극복한 강인한 의지와, 여성으로서의 넉넉함을 한껏 펼쳐낸 커다란 이상들을 새겨보며 조금이라도 닮아보기를 소망하련다. 

이덕일 (지은이)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2-06-04


한참 전에 같은 저자의 조선왕 독살사건을 나름 재미나게 읽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읽었던 '명강'이라는 책에서 역사학자 이덕일의 강의를 재미나게 본 영향도 있었다. 그 두 책을 읽으며 새롭게 알게 된 건 바로 '노론'에 대한 것이다.

나에게 노론이란, 예송논쟁에서 상복을 몇년 입을 것이냐로 싸우던 소론의 반대편, 우암 송시열이란 거두를 중심으로 하나의 세를 이루었던 당파였다는 것 정도밖에는 지식이 전혀 없었다. 어찌 보면, 그 예송 논쟁도 논쟁의 숨은 본질보다는 그냥 1년이냐 3년이냐 싸웠다는 기억만 남아 있었다. 물론, 역사 선생님은 제대로 잘 가르쳐줬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이들 책에서 본 노론은 과거 한 시대를 지배했던 거대 정치 세력으로만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일제 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생생히 살아서 우리의 현재를 지배하고 있는 유령과 같은 것이었다. 중국을 떠받들고, 조선의 왕 쯤은 얼마든지 자기들 마음대로 갈아치울 수 있다고 믿었던 그들의 사상을 이완용은 이어 받았고,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친일의 잔재는 현재 우리 사회의 모든 부조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아무래도 제대로 된 역사 공부를 다시 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근대에 대한 저자의 역사 평설이다. 저자가 보는 근대의 핵심은 일제 강점이다. 그래서 이 책의 경우, 고종이 러시아와 일본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시기부터 일본의 침략, 독립운동에 대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그 시기, 우리 나라의 역사를 53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풀어낸다. 읽다 보면 분개할 일들 투성이다. 어쩌면 이렇게 하는 일마다 악수를 두는 임금이 다 있을까, 어쩌면 이렇게 자기 앞가림에만 투철한 간신배들만 임금 옆에 득시글 댔을까, 어쩌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가고 모진 고문을 당해야 했을까, 어쩌면 이렇게 사람들의 삶은 점점 피폐해지기만 했을까... 쓰고 보니,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새로운 사실도 많이 알았다. 60세가 넘은 나이에 새로 부임하는 총독에게 폭탄을 던진 강우규 열사에 대해서도 처음 알았고, 레닌이 사회주의 완성을 위해 일본에게 후원금을 받았다는 사실도 그랬다. 친일에도 서로 경쟁하는 두 파가 있었다는 것도 몰랐었고, 힘을 합쳐도 모자랄 마당에 서로 분열해서, 결국 주변 나라들에게 이용당해 아군에게 총부리는 겨눈 격인 자유시 참변도 정말 가슴 아프기만 하다. 이 작은 땅덩이의 나라가 100여년 동안 겪은 일들이 너무나 파란만장해서 따라잡기가 벅찰 정도이니...


한동안 고등학교 교과과정 근현대사가 분리되었다가, 지금은 다시 국사 과목에 통합이 되었고 교과 내에서는 근현대사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나 아이들이 잘 배울 수 있을 지 모르겠다. 가르치는 사람이 어떤 역사 의식을 갖고 있느냐가 더욱 중요한 문제일 테니까. 한국의 주류 역사학자들이 식민사관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는 한, 아이들이 배울 역사 또한 노론의 역사, 친일의 역사가 되지 않을까. 


한가지 아쉬운 건,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침략과 지배에 촛점을 맞춘 근대사 책이라는 점이다. 그 사이에 벌어졌었던 우리 내부의 움직임, 예를 들어 개화파 라든가 을미사변, 갑신정변, 갑오개혁 같은 역사적 사실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언급만 있을 뿐이다. 정조 부터, 순조, 철종으로 이어지는 시기에 대해서 궁금하다면, 이 책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 어쨌든, 역사 공부, 열심히 합시다...


안소영 (지은이) | 보림 | 2005-11-04



조선시대의 선비 이덕무는 '간서치'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책만 보는 바보'란 뜻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책만 읽는다는 모습에서 책을 정말 좋아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책만 보는 선비라는 측면에서 생계적으로 무능하고, 세상과 담을 쌓는 주변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기도 한다.

사실, 이덕무도 끼니를 잇기 어려울 정도로 가난했었고, 그래서 어렵게 구한 귀한 책들을 팔아 끼니를 이어야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무능해서라기보다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던 후기 조선 사회에서 서자의 핏줄로 태어나야 했던 사회적 제약 때문이었다. 책을 읽었으면 당연히 뜻을 펼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뜻을 펼칠 수 없었던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얼마나 많은 것들이 응어리져서 맺혀 있었을까.

이 책은, 그런 이덕무가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 그들과의 소소한 이야기들, 그들과 함께 나눈 인연과 함께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의지들을 이야기 해주고 있다. 우리가 국사책에서 실학파로 배웠던 사람들인, 연암 박지원, 담헌 홍대용, 박제가, 유득공, 백동수, 이서구 등과 남산 자락 백탑골에 모여 살며 나누었던 우정이 참으로 정겹게 묘사되어 있다. 

이 사람들은 정조 때에 그나마 뜻을 펼치게 되었다. 물론, 그 이후에는 다시 또 좌절의 나날을 겪었겠지만 말이다. 전체적으로 이 사람들은 주류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기록 또한 많지 않다. 저자 또한, 아주 짧게 기록된 이덕무의 자서전인 '간서치전'을 읽고 각각의 사람들에 대한 자료들을 수집하여서 상상을 덧입혀 이야기를 풀어냈다. 많지도 않은 자료들을 가지고 얽어 낸 이야기들이, 마치 가슴 훈훈한 휴먼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 인물들에 대한 저자의 사랑과 지극한 관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일 터. 너무 세상이 승자와 주류 중심으로만 흘러가는 것이 왠지 마음 편치 않다고 느껴질 때, 이런 기록과 이야기가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덕무가 맹자의 책을 팔아 가족들의 끼니를 간신히 해결한 후, 상한 마음을 위로받고자 유득공의 집을 찾아간다. 그 때 유득공은, "맹자를 팔아 밥을 먹었다"는 말 한 마디만으로 그의 마음을 훤히 읽고, 바로 자신의 책을 팔아 술을 대접한다. 선비가 어찌 책을 팔아서 밥을 구할까라는 자괴감을 너만 그런 것이 아니라고 위로할 뿐 아니라, 슬퍼하는 벗을 위해 없는 살림에 기꺼이 술로 위로해주는 마음,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고 조용히 옆자리에 앉아주는 친구의 마음... 빠르고 얕은 디지털 시대라서 그런 지, 이런 묵묵하고도 깊은 우정이 더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 책은 빌려 주기도 아깝다. 그냥 책장에 두고, 시간이 흘러도 가끔씩 만져보며 그들의 우정과 그들의 다정다감한 삶을 기억하며 계속 새기고 싶다. 


[본문 중에서...]


"매화나무에 꽃이 피었을 때, 꽃은 자신이 꿀과 밀랍이 되리라 알았겠습니까. 더욱이 그 꿀과 밀랍이 다시 매화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걸 알기나 했겠습니까."... 58p.


"긴 한숨을 내쉬고 그만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뒤통수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돌아보니, 저만치 마당 끝에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믐으로 가는 어두운 달빛이라 흰 옷자락만 설핏 보였으나, 그가 박제가라는 것을 두근거리는 심장이 먼저 알아보았다..." 65p.


"달빛 흐르는 밤의 운종가도 운치가 있지만, 대낮의 운종가도 볼 만 하였다.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저마다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찾아 흘러다니는 모습은, 운종가(雲從街)라는 거리 이름처럼 과연 구름이 뭉게뭉게 흘러다니는 듯했다..." 78p.


"목검을 휘두르는 것이 후련하기만 하다가 문득 두려운 마음이 들 무렵, 스승은 그에게 다시 검을 주었다. 날이 아름답고 서늘한 조선 예도였다. 스승이 말했다. '진정한 무예의 길은 창과 검을 그치게 하는 데 있다.' "... 112p.


"구서(九書)란 책을 읽는 독서(讀書), 책을 보는 간서(看書), 책을 간직하는 장서(藏書), 책의 내용을 뽑아 옮겨 쓰는 초서(抄書), 책을 바로잡는 교서(校書), 책을 비평하는 평서(評書), 책을 쓰는 저서(著書), 책을 빌리는 차서(借書), 책을 햇볕에 쬐고 바람을 쏘이는 폭서(曝書)를 말한다..." 126p.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시간이지만, 그 시간의 흔적은 사람의 기억과 마음속에 남을 것이다. 사람들은 서로의 삶 속에 깊숙이 들어가면서, 시간이 흘러가는 길을 내기도 하고, 각자의 시간을 서로에게 나누어 주기도 한다.... 시간을 나눈다는 것은, 반드시 얼굴을 마주 대하고 있는 사람들끼리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저 아이들과 우리 또한, 서로의 시간을 나누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노력이 저 아이들의 시대를 조금이나마 빛나게 하고, 그런 우리의 시대를 저 아이들이 기억한다면... 오랜 세월이 흐른다 하더라도 누군가 나의 마음속에 스며들어와 나의 진심을 이해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서로 시간을 나눌 수 있다. 옛사람과 우리가, 우리와 먼 훗날 사람들이, 그렇게 서로 나누며 이어지는 시간들 속에서 함께하는 벗이 되리라..." 250p.


사이토 미치오 (지은이) | 송태욱 (옮긴이) | 삼인 | 2006-01-05 | 원제 なやむ ちから (2003년)


일본에서 정신장애인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인 '베델의 집'에 대한 책이다. 우연치 않게 사회복지사에 의해서 시작된 이 공동체는, 구성원들에게 '치유'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서로 기다려주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가운데에서 그냥 남들과 똑같이 살아가고자 한다.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을 적용하지 않고 그냥 하나의 '인간'으로 바라보는 가운데에서 그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은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다.


장애를 가진 사람은 보호해야 하고, 병을 가진 사람들은 치료해서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편견일 수 있다고 이 책을 이야기해준다. 장애, 혹은 정신질환에 대해서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이 결코 진리일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전혀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전혀 예상치 못한 과정들을 통해 함께 어울리고 자립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과연 그들이 기업체를 운영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것이 기우일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우리 나라에서도 한참 이야기되고 있는 장애인들의 자립과 재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립되거나 격리되어서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어쩌면 그것은 이른바 정산인의 사회에서는 결코 실현할 수 없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일할 수 없는 사람은 자고 있어도 괜찮다는 그런 불평등한 시스템을 일반 사회는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델의 집' 사람들은 알고 있다. 정신장애인 가운데는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병의 증상이 나타나면 일할 수 없게 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것을 인정해 안심하고 일에서 빠져도 된다고 보증해주었을 때, 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로웠다. 그 자유와 안심이 마지막에는 장사로 이어졌다. 그 누구도 잘라버리지 않는다는 것과 이익을 낸다는 것은 결코 상반된 주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p.95


"눈앞에 있는 사람들,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그들 안에 있는 깊이를 알 수 없는 편안함에 비해 자기 자신이 안고 있는 것은 그 얼마나 하찮고 불안한 균형인가. 그 차이는 대체 뭐란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한 순간, 방문자는 그곳에서 거울에 비추어지듯 자기 자신의 모습과 인생을 보고 만다. 자신은 병자와 만나러 온 것이 아니었나. 그런데 병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p.116


"뭐라고 할까요. 차별하지 않는 점이라든가, 모두들 서로 격려해주거나 도와주고 또 조언해주고 하는 점이랄까. 그런 것들요. 그리고 절대 혼자 있게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것도요. 아무리 병이 심하고 폐를 끼친다고 해도 다시 함께 해줄 수 있다는 것이랄까. 그 사람의 입장에서 봐주는 그런 점이요..."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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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재 (지은이) | 어크로스 | 2012-02-20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안 샀는데, 마침 팀장님이 읽고 계셨다. 다 읽고 재밌다고 하시길래 가져다가 읽었는데 굉장히 쉽고 재미나게 읽힌다. 

선대인, 우석훈, 정태인 등의 경제 관련 책을 그 전에도 즐겨 읽어서 그런지 모르는 얘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저 사람들이 얘기한 것들을 엑기스만 뽑아서 정리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가장 쉽게 읽히는 것 같다. 물론, 쉽게 읽힌다고 해서 그 내용이 가볍다거나, 부실한 것은 절대 아니다. 저자의 필력에 좌우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위의 책들은 한 주제를 깊숙이 파는 것이라면, 이 책은 두루두루 쉽게 많은 것을 조금씩 설명해주는데, 이것만으로도 지금 돌아가는 우리사회의 경제 시스템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다. 


어쨌든 내가 읽으며 놀란 것 중 하나는 전세계에서 100만불 이상의 자산을 소유한 사람이 3천만명 정도로, 전체 인구의 0.5 % 정도라는 것. 생각보다 너무나도 적은 수였다. 그만큼 부의 편중은 심각하다. 그리고 우리는 비교적 살 만하다. 그러나 여전히 무언가 배고픈 사람들만 주변에 가득할 뿐... 노트북 하나를 만드는 동안 노트북 무게의 4천배에 이르는 쓰레기가 발생한다. 탐욕이 지배하는 세상, 돈이 돈을 낳는 세상, 그들만의 리그만 배불러지는 불공정한 세상... 진정한 행복은 과연 무엇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것인지, 과연 지금 우리 나라의 경제시스템은 올바른 것인지 고민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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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럴 오프 (지은이) | 배현 (옮긴이) | 알마 | 2011-01-26 | 원제 Bitter Chocolate: The Dark Side of the World's Most Seductive Sweet



초콜릿에 얽힌 추억 1.

초콜렛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발렌타인데이... 사실, 그 이전의 어릴적 내 기억 속에 초콜렛이란 건 없다. 사실 먹어보기야 했을 터이고, 과자에 발라져 있는 초콜렛까지 치자면 내 기억이 허락하는 정도를 넘어서 정말 꼬꼬마 시절부터 경험이야 했겠지만... 내 기억속의 초콜렛은 어쩌면 코코아에서부터 시작할 지도 모르겠다. 코코아와 초콜렛이 한집안 두 가족이라는 건 아주 나중에 알았지만 말이다. 초콜렛이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판형 초콜렛이나, 키세스 같은 개별 포장의 초콜렛은 '교회 오빠'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현대판 레알 사전 버전으로 하자면, 80년대 이은정에게 초콜렛이란? - 좋아하는 교회 오빠에게 어떻게 하면 더 이쁘고 더 특색있는 초콜렛 무더기를 안겨줄 지 고민하게 만드는 발렌타인데이의 소모품... 1년에 딱 한번, 그 날 이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초콜렛...


초콜릿에 얽힌 추억 2. 

회사에 갓 입사했을 때 우리팀엔 아담 사이즈의 이쁘장한 대리가 하나 있었다. 무척이나 스타일리쉬 하면서 순대국이라든가 부대찌개 따위와는 도통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었고, 실제로도 뜻이 맞는 극소수의 사람들과 주로 밥을 먹으러 다녔고, 피자나 스파게티를 먹으러 가거나, 버거킹에 자주 갔던 것 같다. 우연치 않게 함께 하루짜리 교육을 받으러 강남에 같이 갔었는데, 그 때 난 TGI Friday 라는 패밀리레스토랑에 처음 가봤고, 케이준 샐러드라는 걸 처음 먹어봤다. 그 당시 핑크빛 꽃으로 디자인된 'LG Lady Card'를 테이블에서 내밀며 점심을 사주는 모습을 보며, 나도 저렇게 후배를 위해 이렇게 멋진(!) 식당에서 카드를 턱 내밀며 밥을 사주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가슴 설레기도 했었다.(지금 생각하니 진짜 별 거 아니었는데... 쩝)

어쨌든, 그런데 그 대리님의 책상 서랍엔 늘 초콜렛이 들어 있었다. 가끔은 그 초콜릿을 따뜻한 미소와 함께 나누어주기도 했었는데, 난 그 때 초콜렛을 '상복'하는 사람을 처음 보았다. 그냥 발렌타인 데이 때나 먹는 달콤쌉싸름한 군것질, 많이 먹으면 살을 찌게 하는 나쁜 군것질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초콜렛이, 누군가에게는 그 사람의 특성을 규정짓는 특별한 '음식'이 되고, 더 나아가 나와는 다른 세계에 속한 어떤 사람을 규정 짓는 특별한 의미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어쨌든, 나와 초콜렛은 그닥 밀접한 관계는 아니다. 다만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케이크나 과자 류를 집어들 때 가끔씩 함께 먹게 되는 양념과 같다고나 할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초콜렛의 역사를 역사적, 지리적, 문화적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한 '초콜렛의 사전'과 같은 책이다. 사실, 이미연이 어떤 남자의 바바리 속에 들어가서 쉴 새 없이 눈웃음을 날리던 선전 때문에 우리에게 초콜렛의 대명사는 '가나 초콜렛'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사실, 초콜렛은 '가나'가 최고이자 원조가 아닐까라는 오해를 했었다. 이건 다 이미연 때문이다...라고 하면 좀 웃기겠지만. ㅋㅋ

남아메리카의 고대 제국에서 시작한 카카오 재배와, 카카오를 둘러싼 전쟁들,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으로 옮아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카카오 농장의 노예 노동, 아동 착취까지... 카카오에 대해서 전혀 몰랐던 많은 것들이 흥미롭게 설명되고 있어서 매우 두꺼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재미나게 읽었다. 블러드 다이아몬드 못지 않은 블러드 카카오랄까. 공정무역커피 못지 않게 공정무역초콜렛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에서는 연약한 아이들이 자기들이 만드는 카카오가 어떻게 소비되는 줄도 모르고, 그것을 어떻게 먹는 지도 모르는 채 아무런 댓가도 받지 못한 채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걸 생각한다면, 무심코 집어 드는 초콜렛 하나, 핫초코 한모금도 쉬이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하나 새롭게 안 사실은 라스카사스 신부에 대한 것이다. 라스카사스는 1512년 사제 서품을 받아, 아메리카의 최초의 사제가 된 사람이다. 그 당시 스페인은 그라나다를 무력으로 함락하고 무슬림을 폭력에 의해 카톨릭으로 개종시켰듯이, 남아메리카의 인디오들도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라틴어로 개종 권유문을 낭독하고 거부하는 경우 산 채로 화형에 처하는 등 잔인한 살육을 자행했고, 설사 기독교로 개종한다 하더라도 그들을 열등한 존재로 간주하여 노예로 부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라스카사스 신부 역시 아메리카 대륙의 선교를 위해 그곳으로 가서 처음엔 노예들을 당연히 부리며 선교의 임무를 수행하다가, 인디오들의 비참한 현실을 목도하고는 완전히 변화하여 인디오들의 권리를 위한 투쟁을 전개하고, 본국에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때로는 저항하기도 하면서 선교의 임무를 수행했다. 어찌 보면, 남아메리카 해방신학의 기원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처음엔 기득권 세력의 저항도 거셌지만, 결국 1530년, 스페인 국왕은 라스카사스의 청원을 받아들여서 신대륙에서 노예제도를 폐지하도록 했다고 한다. 과테말라의 치아파스의 주교가 된 이후에는, 노예를 즉각 석방하지 않는 식민정복자들에게는 성체성사를 베풀지 말도록 지시할 정도로 과격한 정책을 펴기도 했다. "인디언들 또한 우리들의 형제이며, 그리스도는 그들을 위해서도 자기 생명을 바쳤다."-라스카사스

과연 하나님은 누구의 하나님인 지, 종교의 역할은 어떤 것인지 지난번 읽었던 책과의 연장선 속에서 다시 한번 고민을 해보게끔 해준 존재 라스카사스 신부. 누군가가 평전을 썼다고 하는데, 우리 나라에 번역이 되어서 나오면 참 좋겠다.



"이처럼 그들의 생활은 개선되었지만 마야인들은 여전히 원두 재배 이상의 것은 하지 못한다. 초콜릿 제조는 다른 이들의 몫이다. 유럽의 세관 장벽이 가공식품 수출을 가로막고 있다. 소비자 만족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오로지 원료 수입만 허용된다. 관행이 바뀌어 마야인들이 가공식품을 수출하게 된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들의 이름을 딴 판형 초콜릿을 살 만큼 부유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p.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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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지은이) | 글항아리 | 2012-12-31


기독교인들을 대표적인 10가지 부류로 나누어 각각을 설명하면서, 현실의 기독교가 맞닥뜨리는 현실 및 기독교의 민낯을 속속들이 파헤치는 책이다. 조금 불편한 이야기가 없는 건 아니지만, 나도 기독교인 중 하나로서 많은 부분 공감가는 이야기들이다.

목사라는 직분을 가지고 있지만, 어린 양들을 인도하기에 너무나도 부족한 사역자들, 교회 안에서의 보수적인 분위기와 파벌주의, 오로지 드러내고 자랑하기에만 바쁜 교회들, 일방적이고 배타적인 교회의 사역들 등 보고 있노라면 어느 교회에든지 해당하는 사람이 있고, 어느 교회든지 일부 가지고 있는 모습들이라서 마음이 불편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이라면, 정말 종교가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이끌어야 한다고 믿는다면, 그리고 우리 나라의 기독교에 대해 수없이 실망하며 시험에 들면서, 다시 또 스스로 자책감에 빠져드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은 읽어볼 필요가 있다. 

과연 기독교인으로서 우리가 지켜내야 할 가치는 무엇일까. 기독교는 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만 하는가. 기독교인들이 세상과 종교 사이에서 어떤 중도를 지켜내야만 하는가. 근 5년 간, 물론 어떤 하나의 인간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되기는 했지만, 개독교라 불리며 너무나 많은 적을 만들어내고 있는 요즘의 기독교는 깊은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단, 저자의 어휘가 너무나 생경한 게 많아서 몇번씩이나 사전을 찾아보았다. 그게 내가 몰랐던 우리말뿐 아니라 사자성어, 한자어까지 한번에 쉬이 읽히지 않는 문장들이 꽤 있다. 물론, 내가 무식해서라고 얘기한다면 할 말 없지만, 이렇게까지 어려운 단어들을 꼭 써야 한 것이었을까. 누군가에게는 상식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상식이 아니란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대표적인 단어들... 알짬, 선손, 명개, 슬금, 언가반가, 인순고식, 동접, 전념집주, 주일무적, 언죽번죽...


"베블런에 의하면 전통적 가부장의 지배 아래에서 부인이 행하는 소비도 꼭 이와 같은 것이다. '부인의 여가 활동은 대부분 일정한 노동이나 가사 의무 또는 사교활동 같은 위장된 형태로 이루어지는데, 사실 그런 활동을 잘 들여다보면 그녀가 소득을 얻거나 자신을 운용하여 이익을 얻는 어떤 직업에도 종사하거나 종사할 필요가 없음을 과시하는 것 이상의 다른 목적은 거의 혹은 전혀 없다는 것이 드러난다.'" p.43


"널리 알려진 푸코의 지적처럼, 육체의 질병을 치유하려는 의사들과 영혼을 구제하려는 사제들의 지위와 역할은 사뭇 닮은 데가 있다. 그런 식으로 이른자 사목권력과 생명정치는 내적으로 연루된다." p.57


"개인의 벌이라는 게 지배의 테크닉과 자아의 테크닉의 교차/결절하는 지점이고, 자아가 자기 배려하는 지점이 체계의 강제와 지배의 구조에 통합되는 지점 - 이른바 '통치성'의 지점 - 이라는 사실에 유의한다면, 체계와 개인 사이의 비평적 거리를, 혹은 (베버의 말처럼) '규율화와 개성적 카리스마 사이의 파란 많은 투쟁'의 거리를 고민하면서 적절한 규모와 수준의 벌이를 모색해야 하는 게 마땅하지 않을까?" p.92


"이미 우리 시대의 교회는 사회적 강자와 부자들을 대체하거나 각성시키는 어떤 (초대 교회들과 같이) '절실한 약자들로 구성된 희망의 공동체'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사적 욕망을 '소망'이라고 부르며, 자본제적 세속의 성취와 권리, 그 지위와 신분을 언죽번죽 종교신학적으로 합리화하고, 교회마저 점유하고 영토화한 세속적 특권들의 심리적 봉토로 전락한 곳, 필시 다시 찾아올 예수를 가장 격졀하게 배척할 곳이다." p.99


"i는 '세상 끝날까지 전파할 복음'의 전도자를 자처하며 나대는 사람이다. 당연히 그는 책을 읽는 자의 '거리감'-진리와 자신의 현존 사이의 어긋남과 그 안타까운 소격-을 알지 못한 채, 그 스스로의 맹신 속에서 책이 되어버린 사람일 게다. '모국어만 아는 자는 이미 그 모국어도 제대로 모르는 것'(괴테)라고 하듯 한 권의 책만을 맹신하는 것은 이미 책을 읽는 게 아니다." p.110


"종교는 스스로 빈 것으로 남아, 늘 종교가 아닌 것을 도우는 데 그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이다. 조욕가 생활을 규제해왔던 현실을 뒤집어, 어떤 현실과 어떤 희망이 종교를 완성시키는 식으로-그러니까 종교가 생활을 도와, 바로 그 생활이 다시 종교를 완성시키는 방식으로-재배치되어야 한다. 마치  못난 인간들이 못난 신을 제 꼴처럼 품은 채로 역시 못난 생활과 못난 욕망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거꾸로 좋은 사람들의 좋은 생활과 좋은 희망은 종교를 완성하고, 그 속의 신을 아름답게 재현해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p.133



알짬, 선손, 명개, 슬금, 언가반가, 인순고식, 동접, 전념집주, 주일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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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지은이) | 창비(창작과비평사) | 2012-05-25


권정생 선생은 강아지똥, 몽실언니 등을 쓴 동화작가이다. 2007년 소박한 삶을 조용히 마무리하신 지 5년. 작고 5주기를 기념하여 다시 묶어낸 산문집이다. 2007년 어느날, 신문에서 그의 부고를 보고 관심을 가지긴 했었으나, 직접 산문집을 사서 읽어 보긴 처음이다. 사실, 그의 이름을 달고 출간된 산문집들 모두 타인의 의지에 의해 출간된 것이고, 정작 본인은 오로지 아이들을 위한 글을 쓰고 평화와 자연을 향한 재야의 사상가로서 살아가는 데 집중했다. 


책에 실린 대다수의 글들이 1980년을 전후한 시기의 글이다. 벌써 30년 전인 셈.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 내용이 전혀 오래된 것 같지 않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30년 전에도 여전히 산업의 발전 속도가 인간다운 삶을 파괴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예전의 순박함을 잃고 각박해져만 갔으며, 없는 사람들은 더욱 살기 힘들어지고, 재물을 가진 자들이 없는 사람들을 업신여기며, 종교조차도 물질 중심으로 타락하고 있었다는 것. 30년 전부터 그래 왔으니, 지금의 상황은 얼마나 곪아 터질 대로 터진 상황일까.


읽다 보면 참 가슴이 아프다. 2차 대전과 한국전쟁, 두번의 거듭된 전쟁으로 망가져가는 민초들의 삶이 애달프다. 작가의 살아온 삶이 유난히 불행한 것이 아니라, 그 시기를 살아갔던 우리네 부모님들의 세대가 다 그러했을 테니 더더욱 그렇다. 병과 굶주림으로 죽어가야 하고, 가난으로 인해 버려지는 아이들, 전쟁통에 생사조차 알수 없게 된 가족들, 도시화와 산업화 속에서 희생되어야만 했던 수많은 청소년들... 그러나 아무것도 우리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했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만의 싸움에 몰두했고, 가진자들은 한없이 욕심을 내며 없는 자들의 것을 하나라도 더 빼앗기 위해 힘을 휘둘렀다. 유일한 안식처가 되어야 할 종교조차 물질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결국은 권력이나 재물이 있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되어 갔다. 


작가는 이러한 세상에 대해 애정어린 시선을 거두지 않으면서, 끊임 없이 자연으로 되돌아가자고 외치고 있다. 종교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예수님의 정신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호소하고 있다.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고, 그래서 자연과 함께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세상에 대한 열망이 모든 글에 묻어나고 있다. 진정한 평화주의자, 자연주의자, 인본주의자의 모습이다.


물론, 워낙 나고 자란 시기가 있다보니, 지금의 기준으로 볼 때 조금은 보수적인 시각을 보여주는 면도 있다. 여성에 대한 관점과 기술의 발전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는 가끔 불편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건 그야말로 옥의 티 수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인지,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소박하면서도 열정적인 글들이다. 바로 전에 읽었던 '불안'의 해법을 권정생의 시각으로 제시하고 있는 느낌도 들어서 개인적으로는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결국엔 '공존'이 키워드 아닐까.



"이 세상의 모든 교육은 선하고 아름답게 살아가기 위한 교육이 아니라, 좀 더 편리하고 풍요하게 살기 위한 교육이 되어 버렸다. 그것도 물질적 풍요와 편리는 지나쳐서 쾌락으로 어긋나 버린 것이다. 그래서 많이 배운 사람은 더 많이 차지하고 더 많이 편하게 살고, 배우지 못한 사람은 가난하고 고달프게 살아야 한다." p.67


"공중에 날아다니는 새에게도, 들에 피어나는 한 송이 꽃에도 하느님은 먹이고 입히신다는데 형님은 먹을 것이 없어 굶어서 죽었다. 숨이 넘어갈 때의 모습은 어땠을까? 할머니는 그래도 불쌍한 손자를 끌어안고 몸부림치셨겠지. 문둥이 삼촌도 손가락이 다 문드러져 나간 손바닥만으로 조카의 이마를 쓸어 주며 눈물을 흘렸을 게다. 가엾은 사람들." p.81


"텔레비전을 보면 온통 먹어라, 입어라, 마셔라, 신어라, 발라라.... 이렇게 돈 쓰게 하는 광고 천지다. 부드럽고 친절하게 말하는 것 같지만 어찌 보면 강요하다 못해 협박을 하는 듯도 하다. 마치 그렇게 안 하면 좋지 못할 것처럼 느끼게 만들고 있다." p.92


"옥이네 할머니는 이런 말씀도 하셨다. '인간 세상 천 층 만 층 구만 층이제.' 같은 똥공장인데도 역시 구만 층이나 될 만큼 불평등한 것이 세상인 것이다. 한숨이 절로 난다." p.113


"언젠가는 우리 모두 죽는다. 그러니 절대 앞서지 말자는 것이다... 드넓은 밤하늘을 보면 우리 인생이 얼마나 작고 초라한지 알 것이다. 하늘을 쳐다보는 데 아직 돈 내라 소리 없지 않은가. 가난한 사람에게도 우주는 그만큼 너그럽다. 작은 것으로, 느리게 꼴찌로 뒤처져 살아도 자유로운 삶이 있다. 자유로운 꽃찌는 그만큼 떳떳하다." p.123


"누군가가 말하길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죄라고 했다.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하고, 먹기 위해서는 죽여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것도 결국은 수많은 목숨들의 희생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p.166


"사랑 사랑 하다보니 결코 용서해서는 안 될 사실까지 덮어 버리고 양가죽을 뒤집어쓴 이리 같은 사기꾼이 되어 버렸습니다. 겸손은 무조건 무릎을 꿇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알량하고 비굴한 인간이 되었습니다. 복종만이 신앙의 도리로 알고 맹종하다 보니, 이젠 마귀의 명령에도 굽신대는 절대적인 착한 인간이 되었습니다." p.285


알랭 드 보통 (지은이) | 정영목 (옮긴이) | 은행나무 | 2011-12-28 | 원제 Status Anxiety (2004년)



우리는 언제 불안을 느끼는가? 저마다 자신이 느끼는, 혹은 느껴본 적 있는 불안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다양하게 나올 수 있는 답들을, 저자가 몇가지의 원인으로 분류하여 불안의 원인과 그 해법을 제시한 책이다. 

도대체 내 불안의 근원이 뭘까라며 답 없는 고민을 하다가, 무릎을 탁! 치며 아하~ 하고 얻는 깨달음이 있지는 않다. 사실 어찌 보면 우리가 다 아는 얘기들을 조금 더 일목 요연하게 정리했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막연하게 느끼고 있던 것을 활자화된 글로 발견할 때 느끼는 개운함 내지는 시원함이 있는 책이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보여주었던 사랑에 빠진 사람의 심리에 대한 섬세한 묘사처럼,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불안들에 대해서 여러 가지 방면으로 뜯어보고 곱씹어보면서,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결국 우리는 나의 현재 상태가 허물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혹은 내가 꿈꾸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에 대한 두려움, 누군가로부터 외면을 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불안을 느끼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이 모든 것은 경제적인 것, 사회적인 지위, 사랑 등과 연결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에서 우리는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어느 수준에 이르면 만족을 느낄 수 있을 것인가, 혹은 적어도 어느 수준이 되어야 불안을 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설명은 결국 타인과의 비교 혹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이데올로기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이런 불안의 기원과 그 해법을 2000년 역사와 예술을 넘나들며 풀어내는 저자의 필력은 여전히 놀랍고, 중간 중간의 위트 또한 책 읽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의 범주로 설명했던 전반부에 비해 해법으로 제시하는 뒷부분은 약간 힘이 빠지는 느낌이랄까. 그 해법 중에 가장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것은 철학이나 정치의 카테고리에서 얘기한 부분밖에 없지 않냐고 묻는다면 내가 너무 지나치게 경직된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는 거라고 비판 받을까? 물론, 불안을 해소하는 데 있어서 종교의 힘을 빌리라고 얘기하는 게 오히려 더 현실적일 수는 있겠지만, 불안을 느끼게 하는 근본적 원인을 알아서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냐고 생각하는 나는 너무나 정치적인가보다. 


어쨌든, 남과 비교하지 말고,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이 정말 합당한 것인지 늘 의문을 가져 보면서, 필요할 경우 저항도 하고, 종교적 혹은 정서적 공동체를 이루어서 서로 격려하고 사랑을 베풀면서 나의 불안함을 다스려가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결론. ^^



"그러나 어른이 된다는 것은 냉담한 인물들, 속물들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우리 자리를 차지한다는 의미이다. 그런 인물들의 행동은 지위에 대한 우리의 불안의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어떤 친구나 연인은 우리가 파산을 하거나 수모를 당해도 우리를 모른 체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만(가끔은 그 말을 믿어볼 수도 있겠지), 우리가 일용할 양식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속물들의 매우 조건적인 관심이다." p.27


"속물의 독특한 특징은 단순히 차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인간의 가치를 똑같이 본다는 것이다... 속물의 일차적 관심은 권력이며, 권력구조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리고 순식간에 속물의 존경 대상도 바뀌기 때문이다." p.29


"이 문제를 이해하려다 보면 결국은 두려움이 모든 일의 근원이라는 느낌이 든다. 자신의 자리에 확신을 가지는 사람은 남들을 경시하는 것을 소일거리로 삼지 않는다. 오만 뒤에는 공포가 숨어 있다. 괴로운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만이 남에게 당신은 나를 상대할 만한 인물이 못 된다는 느낌을 심어주려고 기를 쓴다." p.34


"가난이 낮은 지위에 대한 전래의 물질절 형벌이라면, 무시와 외면은 속물적인 세상이 중요한 상징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리는 감정적 형벌이다." p.38


"질투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우리가 모두를 질투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엄청난 축복을 누리며 살아도 전혀 마음이 쓰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우리보다 약간 더 나을 뿐인데도 끔찍한 괴로움에 시달리게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같다고 느끼는 사람들만 질투한다." p.57


"능력주의 체제에서는 가난이라는 고통에 수치라는 모욕까지 더해지게 된다." p.114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뮤즈는 9명인데, 그들은 각각 특수한 재능을 통제하거나 자기 멋대로 나누어 준다...... 이 가운데 어느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었든 그 사람은 자신의 재능이 진정한 자기 것이 결코 아니며, 이 예민한 신들의 마음이 바뀌면 한 방에 날아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했다." p.119


"노동과 자본 사이의 투쟁은 적어도 선진국에서는 이제 마르크스의 시절처럼 맹렬하지 않다. 그러나 노동 조건의 향상과 고용 입법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여전히 자신의 행복이나 경제적 복지가 부차적으로 취급될 수밖에 없는 과정에서 도구 노릇을 하고 있다." p.134


"우리의 정신은 만족을 하려면 이런저런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외부의 목소리의 영향력에 민감하다. 이런 목소리는 우리의 영혼이 내는 작은 소리를 삼켜버리고, 긴요한 것을 정확하게 찾아내는 힘들고 까다로운 일을 방해할 수 있다." p.240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대체하고,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불안을 극복하거나 욕망을 채우려고 노력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노력은 하더라도 우리의 목표들이 약속하는 수준의 불안 해소와 평안에 이를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p.247


"사회의 목소리 큰 사람들이 선험적 진리로 여기는 견해들이 사실은 상대적인 것이고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비로소 정치적 의식이 개어난다."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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