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 임영신 | 박기태 | 송인수 | 주상완 | 임경수 | 최영우 (지은이) | 시사IN북 | 2011-06-07
가끔씩 내 아이가 크면 어떤 직업을 가지게 될까 상상해볼 때가 있다. 어쩌면 상상이라기보단 바램이라고 표현해야 옳을 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나도 미욱한 인간이기에, 내가 하지 못한 것을 아이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욕심이 생길 때도 있다. 그러다가 다시 또, 아이의 인생은 아이의 인생이라는 이성이 동작을 하게 되기도 하는데, 이렇게 '아이의 미래'란 여전히 나에게 여러 가지 그림을 그려 보게 만들어주는 하얀 백지 상태와 같게 느껴진다.
몇년 전 어떤 행사에 참석했다가 초대 손님으로 윤도현의 공연을 본 적이 있었다. 워낙 좋아하는 가수이기도 했고, 마침 임신 중이라 한동안 그 어떤 문화 행사도 참석하기 힘들었던 나에게 그날의 행사는 오랜만에 즐길 수 있는 굉장한 호사였다. 무대에 윤도현이 올라오고 기타를 튜닝하는 동안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고, 노래가 시작되면서 나는 걷잡을 수 없는 흥분상태가 되었다. 임신 7개월의 배만 아니었으면 펄쩍 펄쩍 뛰며 무대 바로 앞까지 뛰쳐나갔을 수도 있었을텐데, 차마 그렇게는 못하고 제자리에 서서 그 짧은 몇곡의 순간들을 한껏 즐겼다. 그러다가 문득 가슴이 먹먹해지며 드는 생각...
"아... 우리가 아이가 커서 윤도현 같이 되었으면 좋겠어..."
그건 굉장히 여러 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버무려진 생각이었는데 굳이 애써 정리해보자면 이런 것이었다.
무엇보다 자기가 정말 즐겁고 행복한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것, 그러면서 그것을 통해 적어도 자신의 생활비를 벌 수 있기를 바라는 것, 그리고 가능하면 그 일을 통해 남들에게 기쁨 혹은 행복, 즐거움,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라는 것. 어찌 보면 굉장히 단순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어려운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나를 행복하게 하지 못하기에, 그냥저냥 밥벌이의 수단으로만 기능하기에 더더욱 나는 우리 아이가 그렇지 않기를 바라게 되는 것 같다.
아이가 좋아하는 일을 하게 하려면 부모로서 과연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이 그날 이후 나의 가장 큰 과제가 되었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누군가 나에게 세상에 이렇게 많은 직업이 있다는 걸 알려줬다면, 고등학교나 대학교 때 세상이 이렇게 복잡하고 다양한 일들을 하면서 살 수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면 나는 다른 선택을 했을 지도 몰라'라고.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선택을 했을 수는 있겠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나는 우리 아이가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그런 직업들, 혹은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몇몇 좋은 직업들을 얻기 위해 애쓰지 않고, 정말 자기가 좋아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내 그 분야에서 직업을 찾고, 그렇게 살면서 한발 더 나아가 남들에게 기쁨이나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살았으면 정말 좋겠다.
더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박원순, 평화 여행가 임영신, 반크의 대표 박기태 등...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2010년에 진행한 '행복한 진로학교'의 강좌를 책으로 엮은 이 책은, 지금 자신이 걸어가는 길에 어떻게 다다르게 되었는 지를 일곱명의 사회적 멘토의 체험이 실려 있다. 돈에 가치를 둔 사람들이라면 이 사람들의 현재 일자리가 좋은 일자리가 아니라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겠으나, 이 사람들은 일단 자신의 현재 상태에 행복함을 느끼고 만족하면서, 타인을 위하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면서 자기 밥벌이까지 하고 있으니 현대 사회에서 좀처럼 발견하기 힘든, 진정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 아닐까?
정답이 실려 있지는 않다. 다만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낼 수 있고, 학교 안에서 배우는 것은 우리 삶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아이에게 내가 미처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도록 몰아세우며 '이것이 네가 성공하는 길'이라고 합리화시키고 있지는 않은 지, 나의 기준으로 아이의 행복을 재단해서 아이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할 시간조차 빼앗고 있지는 않은 지 돌아보며, 마찬가지로 현재 나의 삶에도 적용해 본다. 지금 내가 행복한 지, 나의 일을 사랑하고 있는 지. 정말 어려운 문제다.
[본문 중에서...]
제게 맞는 삶의 보폭이 있고 제게 맞는 삶의 속도가 있을 텐데, 그것이 시민운동의 속도와 다르다면, 저는 그 안에서 도태되거나 혹은 그 안에서 중요한 무언가를 포기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실존적으로 직면하게 됐죠.(임영신)
나는 내 인생에 두 번의 전쟁을 겪었고, 세 번째 전쟁을 맞을 참이다. 이라크 사람이 전쟁이 두렵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전쟁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다. 미국이 전쟁을 일으킬 힘이 있다면 우리는 전쟁을 이겨낼 일상의 경험이 있다. 무섭지 않은 게 아니라, 두렵지 않은 거다. 고통의 크기를 모르기 때문에 무지한 게 아니라 고통을 감내할 수 있어 무심한 거다.(임영신, 수와드 아줌마)
그 사람이 정말 그것을 배웠는 지 증명해줄 수 있는 권위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사람의 배움은 그 사람의 삶을 통해서 증명될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가르쳐줄 수는 있지만 그 사람이 배웠다고 증명해줄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졸업장이나 수료증을 주지 않는다.(송인수, 맨발대학 벙커로이)
가난한 이웃에게 매일 조금씩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눠주다가 더 이상 나눠줄 것이 없는 상태로 자기 인생을 종결하는 것, 그것은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도 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것을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죽음과 십자가를 '미분'하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조금씩 썰어서 나중에는 제로 상태로 만들어가는 것, 그렇게 해서 '적분'하면 나중에 한 번의 죽음과 십자가로 정리되는 삶. 이렇게 사는 것도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송인수)
부모는 교육적 배려를 하면서도 자율을 허용해야 합니다. 부모가 방치하지 않고 울타리가 되어주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 아이가 마음껏 시행착오를 할 수 있도록 관용해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아이가 잘못하면 부모는 어떻게 합니까? 울타리도 안 쳐주고 아이의 삶의 공간으로 들어가서 아이와 싸웁니다. 성적은 몇 점 맞아야 하고, 너의 진로는 무엇이 되어야 한다느니 하면서 시시콜콜하게 간섭하죠. 나중에 보면 아이가 해야 할 것까지 부모가 대신 고민하고 있습니다.(송인수)
자산이 될 만한 경험을 쌓아줄 필요도 있어요. 어린 시절에는 부모가, 중학교 이후에는 스스로 찾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에 긍정적이 되느냐 아니냐는 주로 어린 시절에 결정됩니다. 그 이후에 세상과 사람에 대한 관심과 돌봄을 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체험을 시키고 부족하면 독서를 하게 하고 말이죠.
인문학적 정신이란 게 꼭 책과 글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평생 시골에서 농사만 지은 농부에게 남을 돕고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그분을 충분히 인문학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아이가 좋아하는 영상이나 노래, 운동선수 등의 다양한 경로를 통해 깊이 있는 소양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모든 아이들에게 똑같이 책을 강요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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