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 김용옥 (지은이) | 통나무 | 2012-08-20
이 모든 건 트렌드다, 적어도 나에겐. 대선과 맞물리면서 그냥 지금의 시류에 어울리는 책을 집어드는 습관적 행동이랄까. 지난번에 이어 붉은색 표지라니, 좀 식상하지만 그래도 책 내용은 볼 게 조금 있긴 했다.
하지만, 도올은 내 스타일은 아니다. 스승과 제자의 문답 형식을 빌려서 서술을 해놔서 그런지, 읽다 보면 "이 할아버지, 참... 스스로를 엄청 높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조국, 주체성, 자주 등과 같은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우리 민족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반면, 언어 사용에 있어서는 지나치게 외국어 의존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충분히 한글로 써도 크게 문제될 것 같지 않은 단어까지 자기만의 발음을 그대로 살려서 써 놓는 건 좀 웃긴 것 같다.(backlash:백크래쉬, discipline:디시플린, theorem:테오렘 등이 대표적인 예) 뉘앙스를 그대로 전달하기 어려운 외국어라면, 원어를 병기해주고 발음 표시에 있어서는 적어도 외래어표기법에 맞추어주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싶은데, 우리 말로 써도 상관 없는 단어를 굳이 자기만의(!) 독창적인 발음을 고집해서 써 놓는 것은 자기의 독선과 아집을 보여주는 또다른 단면이 아닐까 싶다.
10.26 사태를 심수봉의 증언을 빌어 자세하게 알게 되었고, 박정희의 사상적 변화에 대해서도 비교적 자세히 알게 되었다. 그 동안은 그저 만주군 출신의 다카키 마사오란 정도만 알고 있었고, 김재규의 총격에 사망했다는 정도였는데 그 독립운동가였던 그 형의 얘기로부터, 남로당 활동과 그 뒤의 전향 등은 내가 너무 대충 알고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사망 당시의 모습은, 심수봉의 증언이 맞다면, 머리 속에서 그리던 박정희의 모습 중 가장 긍정적인 평가를 해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적어도, 삶과 죽음에 연연해 하는 소인배는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 그런 측면에서 천박한 이명박 류와는 질적으로 다를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도올 이 사람이 스스로 자기를 평가하듯 우리 나라 최고의 사상가인지는 글쎄... 안철수에 대한 속좁은 삐침, 기독교에 대한 지나친 단순화과 적대감으로 이 사람이 결코 대인의 풍모는 갖추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도 좀 든다. 그러다보니, 전체적인 주장에 대해서도 동의가 잘 안 되는 측면도 많고 말이다. 박식한 분이긴 하지만, 훌륭한 분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게 만드는 책. 중간 주역 부분은 어렵고 지겨워서 패쓰했음. ㅋㅋ
"보수파들은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을 썼지만, 좌우를 떠나 가장 정직한 역사적 사실은 김대중/노무현의 10년의 치세야말로 "국민의 진보에 대한 열망을 처절하게 좌절시킨 10년"이라는 것이다. 이승만에서 전두환에 이르는 기나긴 독재의 세월 동안 형성된 국민정서의 정화(purification)가 김대중/노무현의 진보적 치세를 허락하였지만, 그들은 그 갈망에 전혀 부응하질 못했다. 따라서 그 좌절감의 백크래쉬backlash로 태어난 정권이 이명박 정권이며, 따라서 MB정권은 그 이전의 모든 죄악을 마음놓고 재현해도 될 만큼 자유로운 것이다. 그만큼 국민의 절망감이 깊고, 그 절망감이 파생시킨 가치의 혼란이 MB 죄악의 여백을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p.29
"맹자는 이런 말을 한다. 아무리 위대한 신하가 그 나라와 군주를 위해 훌륭한 복무를 한다 할지라도, 그 군주가 걸桀과 같은 놈이라면 결국 민적 노릇을 하는 짓밖에는 되지 못한다.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것이 결국 걸을 부강하게 하는 것이요, 전쟁에 승리를 해도 걸의 폭정을 연장시키는 것일 뿐이다. 오늘의 양신은 결국 내일의 민적일 뿐이다." p.30
"우리가 반드시 깨달아야 할 것은 북한의 문제는 남한의 문제로부터 객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객관적인 실체로서 대상화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북한의 역사가 곧 남한의 역사이며, 남한의 역사가 곧 북한의 역사이다." p.36
"통일을 말하는 자들은 대체적으로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통일'이 레토릭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나 남한이나 꾸준히 통일방안을 제시해 왔다. 그러나 그러한 도식적 방안의 대결은 정책의 방편으로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안의 레토릭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통일을 근원적으로 거부하는 완고한 세력들에게 덜미를 붙잡히는 시비의 말꼬다리가 된다는 것이다."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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