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엮은이) | 오월의봄 | 2013-04-19


나는 살면서 차별이라 할 만한 것을 겪은 적은 없다. 물론 국민학교 시절에는 선생님이 몇몇 친구만 더 좋아한다고 왜 차별대우하냐며 일기장으로 항의하기도 했었고, 가끔 엄마가 맛있는 걸 사놓고는 바로 안 주고 오빠가 오면 먹자고 할 때 왜 차별대우하냐며 엄마에게 앙탈부렸던 것 정도가 내가 겪은 차별이랄까.

그러던 내가 작년에 '차별'이란 것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생각하게 되는 경험을 했다. 작년에 우리 팀은 나까지 모두 5명이었고, 여자는 나 하나였다. 그런데 공교롭게 나를 뺀 나머지 네 명은 골초. 그리고, 우리 상무님까지 골초. 그들은 틈만 나면 우르르 담배를 피러 나갔다. 그리고 다들 아시다시피 그곳에서 많은 역사는 이루어졌다. 어느 순간 보면 자기들끼리 업무 분장이 되어 있다거나, 내가 전혀 듣도 보도 못했던 일을 자기들끼리 하고 있기도 했다. 한번은 팀장에게 어필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전혀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냥 워낙 다수이다보니까, 그냥 자기들끼리 얘기한 걸 팀 전체가 얘기한 걸로 착각하기도 했고, 자기들끼리는 배려해준다고 어떤 결정을 내린 것이 나에게는 일방적인 통보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너희들과 함께 담배피러 나가지 않는다고 많은 부분에서 난 차별을 당했다라고 그들에게 얘기한다면, 아마 그들은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냐며 항변을 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분명히 난 차별을 당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차별은 당한 사람이 분명한 목소리로 얘기하지 않으면 아무도 차별을 의식하지 못할 수 있다. 

얼마 전에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차별금지법을 여러 가지 관점에서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종교적인 근거를 들이밀며 반대를 했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더이상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법안을 결정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그들에게 가해지는 구체적인 차별이 어떤 것인지 증명해 보이라고 했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좀 우스웠다. 어이가 없기도 했다. 하지만, 내 경험에 비추어보면 결국 차별은 당한 사람들이 이것은 차별이라고 알려주는 것이 가장 빠르고도 직접적인 길이다. 그렇지 않으면, 차별을 행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차별인 것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그들이 자신들이 받은 차별을 당당하게 내놓을 수 있는 사회적인 여건이 조성되어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만 한다. "사실 내가 떳떳하게 나설 수 없는 게 차별이거든. 내가 당당하게 나가서 내 이야기를 해야 되는데 사회가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만들쟎아. 내가 내 테두리를 만드는 게 아니라 사회가 그런 테두리를 만들고 있다고...." 라고 얘기하는 이 에이즈 감염인의 말처럼 말이다. 차별 받은 사람들이 차마 말하지 못하는데, 무언의 힘이 의해 사회의 울타리 밖으로 계속 밀려나고만 있는데, 이들이 스스로 차별을 밝히지 않았다고 해서 이 사회는 평등하다고 얘기할 수 있는가?

"성소수자들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거주하거나 일하는 공간에서 누군가 커밍아웃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 곳은 아마도 성소수자들에게 무척이나 차별적인 공간일 것입니다.(본문 중에서)" 

이 말에 근거하면, 이미 내가 생활하는 모든 공간은 차별적인 공간이다. 우리가 지극히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공간, 또는 매우 개방적이고 평등하다고 생각했던 공간 모두가 차별적인 공간이었고, 그곳에서 행했던 나의 배려는 이미 누군가에게 차별적인 행위였다는 것을 이제는 깨달아야만 한다. 무심결에 지나쳤던 공간들에서 전해오는 신호들을 감지하고, 그들에게 '수신확인'을 통해 힘을 실어주는 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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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들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거주하거나 일하는 공간에서 누군가 커밍아웃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 곳은 아마도 성소수자들에게 무척이나 차별적인 공간일 것입니다.(본문 p.114 중에서)

'도가니'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가해자들에게 분노했다. 그렇게 분노로 이글대던 사람들이 영화가 끝나자마자 휠체어를 탄 장애인에게 조금의 양보도 하지 않고 우르르 나가서 엥리베이터 앞으로 가는 모습을 보았다. 이런 상황을 마주하면 다시 간극이 느껴진다.(본문 p.162 중에서)

정상적인 몸의 기준, 아름다운 외모의 기준이 강요되는 문화, 그러한 사회에서 살아갈 때, 거기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있기 때문에 자신을 부정하거나 그 기준에 맞도록 나를 바꿔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는 사람들은 장애인뿐만이 아니다. 장애인을 억압하는 근거와 기준이 모든 사람들에게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면, '장애'의 문제는 '장애인만'의 문제가 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장애/비장애의 경계가 가지는 문제에 대해 더 얘기해야 하지 않을까?(본분 p.163 중에서)

사실 내가 떳떳하게 나설 수 없는 게 차별이거든. 내가 당당하게 나가서 내 이야기를 해야 되는데 사회가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만들쟎아. 내가 내 테두리를 만드는 게 아니라 사회가 그런 테두리를 만들고 있다고. 어떤 사람들의 목소리를 꼭 강압적으로나 법적으로 규제하는 것만 차별이 아니야......그런데 차별이라는 건 보이지 않는 거야. 너는 여기 있으면 안 된다는 무언의 압력 같은 거. 목소리를 내려면, 진짜 어떤, 한 사람이 인생을 걸고 해야 되는 거야......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다같이 나서서 얘기하는 건 힘들쟎아. 그게 바로 사회구조에서 나오는 차별이야. 지금 당장 아무런 피해가 없으니까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지나가지. 그대신 그만큼 권리를 보장받을 수 없는 거야.(본문 p.180 중에서)

차별은 성별, 직업, 학벌, 나이 등에 따라 쉽게 분리되어 나열되지만 알고 보면 이렇게 모두 치밀하게 엮여 있다. 어느 한순간, 특정한 누군가에게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차별을 만들어내는 사회의 구조들이 서로 연결되어 우리 모두의 삶의 궤적 속에 세세하게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연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신의 삶 속에서 서로의 삶을 발견하며.(본문 p.250 중에서)

닥쳐오는 불운이나 억울한 일을 더 이상 회피하지 않고자 했을 때 그것을 목격한 이가 증언자가 되고 그 옆에 자리하는 것. 그리고 그 차별을 정성을 다해 설명하고자 계속 애쓰는 것. 그리고 차별에 대한 법적인 구제의 과정을 사인간의 문제로 한정하지 않고, 법적인 구제 의미가 사회 관행과 권력을 바꾸어나가는 것을 지향하도록 견인하는 것. 이것이 문제를 보편화하는 방향이 아닐까.(본문 p.278 중에서)


김현진 (지은이) | 다산책방 | 2011-12-21


나의 20대가 어땠는 지 가만히 생각해본다. 

운이 좋게 시험 점수를 잘 받아 한번에 원하는 대학엘 갔고, 고등학교까지 짓눌렸던 내 자유를 마음껏 풀어 헤치며 살았다. 방종까지는 아니었을 지라도, 나의 기본적 원칙 중 하나였던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에 맞추어서 대학 때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본 것 같다. 단 하나 소개팅 빼고. 아, 물론 공부도 열심히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시험 때 공부는 했고, 강의도 들었고, 과제도 냈고 8학기만에 무사 졸업했으므로 한 걸로 치자.

졸업 후 잠시 '業'에 대한 방황 후, 기업체 취직으로 방향을 틀었다. 물론 기업체 취업이 쉬웠던 건 아니다. 나의 스펙을 보고 들어오라고 허락해준 곳은 오로지 지금 이 곳,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밖에 없었다. 그래서 뭐하는 회사인지도 정확히 모른 채 입사를 했고 난 무거운 엉덩이로 주저 앉아 지금껏 살아오고 있다.

생각해 보면 정말 운이 좋았다. 몇년 후 수능으로 입시 제도가 바뀌었으니, 비교적 오랜 기간 안정된 입시 제도의 혜택으로 큰 혼란 없이 대학에 들어왔고, 유난히 수학이 어려웠던 시험 탓에 수학 점수가 상대적으로 높았던 나는 입학하며 등록금을 제하고도 오히려 방학 동안 놀 수 있는 용돈을 학교로부터 받았다. 학교를 졸업할 당시 서울에서 지리교사 TO 가 없었던 것은 정말 운이 나쁜 케이스였고, 결국 지금도 그것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졸업하던 그 때까지만 해도 맘만 먹으면 취업이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 내가 입사하던 그 즈음에는 IT 붐이었고 기업마다 SI 업체를 비대하게 늘려가던 시기였다. 내 입사동기가 500명이 넘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그러다 몇년 후 바로 IMF 가 터졌고, 그 이후부터 대학생들의 취업은 갈수록 어려워져만 갔다. 나도 한참을 팀의 막내로 살아야만 했다.

이 책을 읽다보니, 나의 20대는 어떠했는 지 돌아보게 됐고 그러다보니 장황한 삶의 궤적이 그려진다. 하지만, 이것은 저자의 파란만장한 20대에 비하면 너무나 우아하고, 고상하고, 편안하고, 그래서 배부르기만 한 20대이다. 나도 치열하게 살았다고 주장하는 20대이지만, 비할 바가 아니다. IMF 이후의 어려워진 경제를 온몸으로 껴안고, 그 때 벌거숭이 상태로 사회를 마주 대해야만 했던 불행한 세대. 더군다나 가진 것 하나 없는 집에서 태어나, 오히려 가정을 돌보아야만 했던 준소녀가장. 자기 몸 뉘일만한 공간이 없어 더부살이를 해야만 했고, 점점 산으로 산으로 올라가서 살아야만 했던 가난한 청춘. 이땅의 88만원 세대가 어떻게 살아야만 했는 지, 그리고 지금 어떻게 살아가는 지를 맨얼굴 그대로 보여주는 바람에 가슴이 아프다.

한없이 당당하고, 모든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온몸으로 이겨내는 눈부신 젊음이긴 하지만, 그래서 더욱 슬프다. 그런 젊음에게 이제 난 배때기 부른 기성세대일 뿐... 그러나 이제 내 얘기가 아니라고, 어깨 툭툭 치며 극복하라고 하며 뒤돌아서기에는 이 굴레가 너무나 크고 깊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미래라면 그저 암담할 뿐이다. 청춘이 처한 현실을 청춘에게 해결하라고 해서는 답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저자는 자기의 청춘 자서전을 통해 웅변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자격지심,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불쑥 불쑥 튀어나와 당황하게 만드는 허황된 욕심들, 가진 건 없지만 나눌 줄 아는 소박한 옛동네의 인심들, 가진 것 없어 내 몸 하나 건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위태롭게 이어지는 사랑, 다양한 삶의 모습과 인간 군상들이 지금은 하나씩 짓밟혀져 간 서울의 뒷골목들을 무대로 이야기 꽃을 피워낸다. 간혹 피식거리며, 간혹 시큰거리는 콧등을 만져가며 휘리릭 책장을 넘기도록 만드는 저자의 필력이 놀랍다. 우리가 살아온 모든 것들이 이 땅의 역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아...그나저나 왕십리의 이모네 곱창, 약수동의 나주순대국, 목동 시장의 만두집은 정말 맛있을까? 궁금타...


"세상에는 기억되기 위하여 태어난 사람도 있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다. 그러나,나는 기억하기 위하여 태어났다. 그러므로 이 기억이 죄다 휘발되기 전에, 글씨를 쓴다." (본문 중에서)

"몸이라는 게, 조금 놀아보면 그 맛을 기가 막히게 알아서 계속 편하게 살려고 그래요. 자꾸자꾸 게으름 피우게 놔두면 막 놀고 자빠지고 싶어 해, 아주 습관이 돼서 놀려고만 드니까 좀 후둘겨 패서라도 움직여줘야 돼요..... 그래야 아 이거 내가 해야 되는구나, 싶어서 하지." (곱창집 아주머니 말씀... 본문 중에서)


이원규 (지은이) | 한길사 | 2013-03-01


대학교 입학하고 나서 한 달이 지났을 즈음이었나. 선배들로부터 4.3 항쟁에 대해 얘기를 들었다. 4월이라면 4.19 정도밖엔 떠올리지 못했던 나로서는 새로운 현대사 공부의 시작이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20년이 넘게 흘렀지만, 나는 여전히 우리 나라 현대사의 많은 부분을, 1000피스짜리 퍼즐을 끼워 맞추듯 간간히 조합하고 있을 뿐이다. 역사라고 하면 그저 고조선과 삼국시대, 고려, 조선만을 떠올리게 되는 우리 나라의 역사 교육. 나에게도 그건 예외가 아니었고, 그렇기에 근현대사, 특히 해방 전후와 한국전쟁 직후의 이야기들은 여전히 장님 코끼리 만지듯, 여기저기서 조각조각 떼어와 누더기를 깁듯이 그렇게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조봉암. 죽산 조봉암. 가만... 내가 이 사람을 알았던가? 뭔가 억울하게 죽었다는 것 같았는데, 그게 이승만 때였나 아니면 박정희였나? 박정희 때는 장준하 선생이었으니 이승만이었나? 공산당이었다고도 들었던 것 같은데, 박헌영하고는 또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 아, 정말 이런 무지렁이를 봤나. 도대체 아는 게 뭐야? 혼자 이렇게 자학하다가 저자의 이름을 보았다. 그리고 다시 깜짝 놀란다. 아니, 이 분은 내 주례 선생님이시쟎아? 흐음... 무조건 장바구니에 넣고 구매 버튼을 누른다.

이전에 쓰셨던 김산 평전, 약산 김원봉 평전과 책의 느낌은 비슷하다. 평전이라는 말에 어울리게 일생 전반을 마치 소설처럼 강약을 가지고 긴장감 있게 풀어내면서도, 여러 연구자료들을 인용하면서 다양한 측면에서 하나의 사건을, 하나의 인물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선생님께서는 우리 나라의 독립운동 과정과 국가 수립 과정에서 누구보다 힘을 다해 일했으면서도 후세에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아쉬움이 크신 듯 했다. 그래서 연속해서 평전을 내놓으셨는데, 이를 위해 선생님께서는 중국과 러시아를 수도 없이 답사하셨고, 참고자료 열람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방대한 양의 자료를 모두 읽고 참조하셨다. 그리고 이 세번째 평전의 경우는 세상에 나오기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조봉암을 다시 알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긴장감 있는 구성과, 일제치하에서 독립, 한국전쟁과 2,3대 대선까지의 다이나믹한 대한민국 현대사에 조봉암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어우러져서 한번 잡은 책을 놓기가 어렵다. 절대 얇지 않은 분량임에도 옛날 이야기 읽듯 하다가, 신문의 정치면을 읽듯 하다가, 다시 르포 기사를 읽듯 하면서 만나는 조봉암은 정말 이승만이 두려워할 만한, 또한 우리 역사에서 절대 소홀히 다루어서는 안 될 인물임을 확인했다.

모스크바에서 조선공산당의 대표로 인정받을 정도로 탁월한 식견과 뛰어난 두뇌, 그리고 누구나 감화시킬 수 있는 언변을 지닌 사람이었고, 진보주의자로 방향을 선회한 이후에도 농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제대로 된 발전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최초의 농림부장관으로서 농지개혁을 추진했던 선구자적 인물, 사민주의야말로 조국이 나아가야 할 이상향임을 확신하고 진보주의자로서 두려움 없이 앞으로 전진했던 시대의 등불. 일본에 의해 억압 받는 조국을 구하기 위해 공산주의를 선택했고, 국가를 살리기 위해 가족마저도 뒷전이었던 사람. 그러나 결국 그로 인해 억울하게 갇혀 외롭게 죽어야만 했던 사람.

지금도 사민주의 정도의 이야기만 해도 종북이라는 말도 안 되는 굴레를 씌워대는 상황이니, 이승만이 모든 권력을 휘두르던 한국 전쟁 직후에는 오죽했을까. 그런 상황에도 주변의 협박과 분위기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에 만약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지만, 신익희가 급서하지 않았더라면 조봉암은 좀 더 살아서 시대의 소명을 담당할 수 있었을까? 그저 아쉽기만 하다. 게다가, 조봉암이 법살당한 지 9개월만에 4.19 혁명으로 이승만이 하야했다는 걸 생각하면 더더군다나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반대로 조봉암의 죽음 또한 4.19 혁명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중요한 다리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게라도 생각해야 아쉬움이 달래질 듯 하기에... 

다행히 조봉암을 죽음으로 몰고 간 그 재판은 바로잡아졌다. 지난 2011년 1월 20일 대법원 전원 합의부는 재심을 열어 죽산 조봉암의 무죄를 선고했는데 이는 유가족에게 큰 보상이 될 수 있었다. 다만, 여전히 독립유공자로서 서훈 수여가 유보된 것은 한가닥 아쉬움이다. 정황 상 일본에 의해 거짓으로 성금 모금 광고가 신문에 실린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 광고 하나로 인해 친일 행적이 있기에 신청이 반려되었다는 것은 여전히 이 사회의 '정의'가 어디에 있는 지 의심하게 만드는 일이다. 이 또한 하루 빨리 해결되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언제쯤 아이들은 각자 알아서 하는 '사교육'에 의지하지 않고 우리 나라의 역사를, 그것도 승자에 관점에서만 기록되고 왜곡된 것이 아닌 약자의 입장에서도 보여지는 역사를 배울 수 있게 될까? 김산평전과 약산 김원봉, 그리고 죽산 조봉암. 이 세권을 책장에 잘 꼽아 놓고 나중에 우리 아이들에게 꼭 읽게 해야겠다. 그리고 말해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님을, 우리 역사 속에 뿌려진 뜨거운 피와 젊음들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함을, 그렇기에 우리는 의를 위해서는 더욱 치열하게 싸우고 그들이 뿌린 씨앗의 열매를 꼭 거두어야 함을...


"우리가 못 한 일을 우리가 알지 못하는후배들이 해나갈 것이네.결국 어느 땐가 평화통일의 날이 올 것이고국민이 고루 잘사는 날이 올 것이네.나는 씨만 뿌리고 가네." <조봉암 옥중 유언>


전우용 (지은이) | 투비북스 | 2012-10-20


트위터를 하다보면, 온갖 쓰레기같은 잡담 속에서 보석같은 글을 발견할 때가 종종 있다. 내가 Following 하는 사람이라면야 이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구나 하고 넘어가지만, 누군가 retweet 한 글이 크게 느껴질 때면, 애초의 원 저작자를 찾아보곤 한다. 그러다가 알게 된 사람이 바로 histopian 이었다. 가끔씩 어떤 일이 사회적 이슈가 될 때, 역사의 한 토막을 가져와 그 사안을 비평하고, 날카로운 지적과 함께 어떻게 풀어나가는 것이 현명한 것인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곤 했다. 그래서 관심을 갖게 된 histopian... 역사학자 전우용이다.

서울도시사, 근대의료사 등이 전공 분야라고 하는데, 그렇다 보니 우리에게 멀지 않은 역사적 시대이면서도 역설적이게 우리가 제대로 알기 힘든 근대의 역사적 사실들을 끌어와서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시대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난 역사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역사 말하기 대회에 학교 대표로 나갔던 적도 있다. 그리고 대학 입시를 앞두고는, 남들이 선택하지 않는 세계사를 선택하겠다고 우기는 바람에 결국 사회 시간에 뒤에 앉아서 혼자 공부하고, 얼마 되지 않는 애들만 따로 모여 선생님께 특강을 듣고 그랬다. 그래서 역사 이야기는 나에게 언제나 즐거움이다.

우리가 역사를 충분히 공부했다면, 그리고 그 역사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교훈을 충분히 새겨 보았다면 지금 이 사회의 수많은 부조리들도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FTA 문제도 그렇다. 그 약속이 어떤 것인지도 정확히 모른 채, 막연한 희망과 근거 없는 낙관을 가지고 대응했다가 강대국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일들을 분명히 겪었음에도 마찬가지의 막연한 기대만으로 FTA 를 추진하고, 찬성하고, 그것을 통해 우리가 왠지 더 잘 살게 될 것이란 희망을 사람들이 갖도록 만든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에 대해서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가. 학교에서 배우던 따분한 역사가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어주는 역사. 그 역사를 사람들이 만나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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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에 명동에서는 깡패들이 권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하고 싸움을 벌였습니다. 당시 한국 깡패는 1930년대 미국 마피아와 방불했지만, 경찰은 FBI 보다 훨씬 무능했습니다. '쌍팔년도'는 이 무법천지의 1955년을 말합니다. 단기 4288년이었습니다. 이후로 "지금이 쌍팔년도냐"는 터무니없는 일을 겪을 때 쓰는 속어가 됐습니다.(본문 '쌍팔년도' 중에서)

지금의 통장을 조선시대에는 통수라고 했습니다. 조선시대 통수의 의무 중에는 혼자 사는 과부 집 굴뚝을 살피는 일이 있었습니다. 사흘 굶어 도둑질 안 하는 사람 없다지만, 홀로 된 과부 중에는 체면 때문에 차마 밥 빌러 다니지 못하고 버티다 굶어 죽는 사례가 간혹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체면까지 배려해 가며 은정恩政을 베푸는 것이 인정仁政이었습니다. 복지가 뭔지 모르던 시대에도, '찾아가는 복지'가 있었습니다.(본문 '통수와 과부 집 굴뚝' 중에서)

울타리와 같은 말이 '우리'입니다. '나'는 한 우리 한에 모여 있는 집단 속의 개체, 즉 '낱'에서 온 말일 것입니다. 우리 안에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 '남은' 자들이 '남'입니다. 그러니 '남'의 반대말은 '나'가 아니라 '우리'입니다.나는 6척짜리 몸뚱이를 벗어나지 못하지만 우리는 가족, 직장, 나라, 인류, 우주로 무한히 확대할 수 있습니다...저 한 몸 겨우 들어갈 작은 우리를 짓고 그 밖에 남은 사람들을 다 적대시하는 것은,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는 일입니다.(본분 '나, 우리 그리고 남' 중에서)

지금의 서대문 독립공원이 문을 연 것은 1992년이었습니다...그러나 뜻밖에도 광복회에서 '순국선열'을 추모하는 곳에 '위안부'를 기념하는 시설을 두는 것은 좋지 않다고 반대했습니다. 순국선열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라나요...좋은 일, 즐거운 일은 자랑거리가 되지만, 아픈 일, 괴로운 일은 교훈거리가 됩니다. 자랑은 현재에 속하나 교훈은 미래에 속합니다. 그래서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합니다.(본문 '순국선열의 명예' 중에서)


김재호 (지은이) | 서해문집 | 2013-01-19


느즈막한 결혼과 귀한 딸, 세상에 둘도 없는 딸바보...

금은방을 꾸리며 풍족하진 않지만, 그래도 세 식구 행복하게 살던 가족에게 닥친 '도심 재개발'의 소용돌이. 어떻게든 투자한 돈은 건지고 싶어서, 다른 데로 행여 이사를 가더라도 지금 하던 가게 정도는 다시 시작할 수 있어야 했기에 아빠는 힘겹게 곧 철거될 건물의 옥상, 망루에 올랐다.

그리고 순식간에 벌어진 일들. 함께 있던 동료들은 화마에 휩싸인 컨테이너 속에서 죽었거나, 살기 위해  뛰어 내리다가 다쳤다.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함께 망루에 올랐던 이웃들을 죽인 살인자가 되어 법정에 서게 되고 그렇게 3년의 시간을 차가운 감옥에서 보내야만 했다.

그 3년의 기간 동안 이 딸바보 아빠는 사무치게 가족을 그리워 했다. 그러나 매주 먼 곳까지 와야 하는 10분짜리 접견에 딸은 자주 올 수 없었고, 자신을 누구보다 아껴주던 아빠를 순식간에 잃게 된 아이는 우울증을 앓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빠가 감옥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유일한 통신 수단인 편지마저 길다고 읽지 않는 딸을 위해 아빠가 생각해낸 것은 바로 그림.

아빠는 그렇게 하루하루 구할 수 있는 모든 종이와 필기 도구를 동원해, 종이 위에 사랑을 새겨 나갔다. 비록 능숙한 솜씨는 아니지만, 어릴 적 어딘가에 멈추어서 더이상 꿈꾸지 못했던 '그림'에 대한 소망도 함께 키워나갔다. 

프로다운 멋진 그림은 아니지만, 그림 한장 한장에서는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가정을 책임지지 못한 절망과 미안함, 그렇게 만든 현실에 대한 분노, 그래서 더욱 커져만 가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커가는 아이 옆에 있을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그대로 묻어난다. 어딘가 어색하고 부족한 듯한 그림으로 가득 채워진 책 한권을 읽으며 곰곰히 생각해본다. 도대체 무엇이 이 가족을 이리도 힘들게한 것인지, 그리고 지극히 평범한 이 사람들을 도심의 테러리스트로 만들었는 지, 아빠와 함께 하는 즐거움을 이 아이에게서 뺏어간 사람들은 누구인지, 그들은 지금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는 지...

우리 아이들에게 정의가 바로 서는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


EBS다큐프라임「아버지의 성」제작팀 (지은이) | 베가북스 | 2012-11-28


모성애는 날때부터 갖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물론, 난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런 것과 무관한 여자들을 보았던 탓도 있겠지만, 어떤 것이든 타고난 것으로 귀결시켜 버리는 결정론 자체가 조금은 거부감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남자들에게는 부성애와 같은 감정이 도대체 언제 생길까가 참 궁금했다. 내가 임신했다고 얘기할 때도 남편은 드라마에서처럼 만세를 부르지 않았다. 그리고 임신 기간 내내 들떠 있지도 않았고, 아기를 낳은 후 키울 때에도 남편은 한발 물러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모든 것이 서투르기만 해서 구박도 많이 받았고, 육아에 관한한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게 남편이라는 농담도 종종 했다. 더불어 사랑의 크기로 비교해보자면, 모성애 다음에 조모성애가 있고 그 다음에 이모성애, 고모성애가 있고, 그 다음에 조부성애가 있고, 제일 뒤에 부성애가 있다고까지 자신 있게 얘기했으니까.

물론 그렇게 말한 것은, 나의 개인적 경험과 내 지인들의 경험을 대충 버무려서, 보편적인 모습을 뽑아내어 일반화 시킨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주변을 돌아보면, 엄마보다 아이와 훨씬 더 친밀한 아빠들도 있고, 엄마보다 아이의 필요 - 기저귀 교체, 젖병 물리기, 음식 만들기 등 - 에 훨씬 더 능숙하게 대처하는 아빠들도 있다. 그렇다면, 결국 개인의 성향 및 취향, 성격 탓으로 돌려야 하나? 이것 또한 선척적으로 그래~라고 일갈해버리는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결론이 되어 버리니 맘에 드는 결론은 아니다.

이 땅의 남자들은 지금의 아빠상과는 전혀 다른 아빠들 밑에서 자라왔다. 그 아빠들을 보면서 아빠 수업을 했고, 일부의 남자들은 그것으로 모자라 자기 스스로 아빠 되는 법을 배우면서 아빠의 모습을 만들어 왔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현재의 아빠들은 과거의 아빠들과는 많은 면에서 다르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모든 경제적 책임을 떠안은 채 아내에게 안 살림을 일임하고, 자식이 행여 잘못되기라도 하면 집구석에서 애들을 어떻게 키운 거냐고 큰소리 치는 남자가 과거 대부분의 아빠들이었다면, 지금의 아빠들은 그와는 좀 다르다. 많은 젊은 남자들이 친구같은 아빠인 '프레디'를 지향하고, 간혹 섬세한 남자들은 아가용품을 직접 만들며 2세를 기다리기도 한다. 남자들의 육아휴직이 법으로 보장되었고, 출산 휴가 정도는 눈치 보지 않으며 자유롭게 쓴다. 공무원 조직을 중심으로 과감하게 육아휴직을 실행에 옮기는 남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자기를 키워주신 아빠의 모습에서 조금 더 이상적인 아빠의 상을 결합해서 자신만의 아버지상을 만들어 나가는 젊은 아빠들이 지금은 당연한 게 되었다. 보면서 배우고, 부족함을 느끼며 또 배우는 과정에서 시대의 아버지상은 점차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여자로 태어났다고 해서 모든 여자들에게 모성애가 철철 흘러 넘치는 게 아니듯이, 남자들이 아빠가 되는 것도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연습이 필요하다. 그리고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해주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명확히 이해하고, 자녀들의 양육을 어머니들과 함께 나눌 필요가 있다. 그리고 혹여 싱글맘일 경우, 아빠의 존재가 왜 필요한 지를 이해하고 아빠의 역할을 대신해줄 누군가를 만들어주거나, 스스로 그런 역할까지 감당하기 위한 공부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좀 무게감이 떨어진다. 제목과 광고 문구에 비해서 너무 이런이런 아빠들이 있다는 나열식이다. 남자와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이해하게 되기를 바라고 읽었는데, 그냥 내가 남편에게 늘 하던 잔소리를 책을 통해 보는 느낌이랄까. 부유수유 같은 조금은 쇼킹한 얘기들을 언급하고 있지만,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결론까지 굉장히 많이 돌아오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너무나 아빠와 엄마를 남여의 성역할에 고정시켜서 설명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살짝 거부감도 드는 게 사실. 하지만, 이 책은 나를 위한 책이 아니라 보편적인 아빠들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하며 애써 너그럽게 이해하기로 했다. 어쨌든, 세상에 어떤 아빠들이 있는 지, 이 땅의 아빠들은 한번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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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 김미월 (지은이) | 유유 | 2012-07-20



로자 룩셈부르크는 알았어도 박진홍은 몰랐다. 맞다. 근대 사회 어디쯤엔가, 우리 나라에도 사회주의가 흥했던 적이 있었고, 그렇게 서로 사상을 논하던 때가 있었으니 그것이 남자들만의 전유물이었을 리는 없었을 게다. 하지만, 그 삭막하고 꽉 막힌 조선, 남자들만이 사람 취급을 받았던 그 사회에 대한 인식이 너무나 강하게 박혀서인지, 여성 대통령이 저렇게 떡하니 푸른 기와집에 앉아 있는 지금도 우리 나라 역사에서 '여자' 사람이 무슨 역할을 하기나 한 적이 있는 지 관심조차 없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일제 시대의 여성 사회주의 운동가라니. 너무나 낯설었지만, 그만큼 반가웠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많은 여인들이 있었구나. 김수영의 여자 김현경, 백석의 나타샤 김영한, 시대가 감당할 수 없었던 허난설헌과 황진이, 사춘기 소녀들의 마음을 한번씩은 휘저어 놓았을 전혜린, 문학의 어머니 박경리... 

우리 나라를 벗어나보면 또 다른 이름들이 아름다운 삶을 살다가 갔다. 강인한 어머니 케테 콜비츠, 아름다운 권력을 행사할 줄 알았던 다니엘 미테랑,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사랑하고 스스로를 극복해 내었던 프리다 칼로, 인간의 울타리를 넘어선 침팬지의 친구 제인 구달, 그리고 혁명의 독수리 로자 룩셈부르크...


그리하여 소설가 공선옥과 김미월이 동서양과 시간을 초월하여,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여자들과 그들의 삶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본 이 책은, 다시 내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책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앙증맞게도 앞 뒤 어디서 펼쳐보아도 책의 앞면이 되게끔 만들었으니 더더욱 그러할 수밖에... 


다만 아쉬운 게 있다면, 각 여성들에게 할애된 지면이 너무 적다는 것. 나중에 여력이 된다면, 이 사랑스러운 여인들의 삶을 다시 하나 하나씩 되짚어보고 싶다. 그래서,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 한스러울 수 있는 삶들을 극복한 강인한 의지와, 여성으로서의 넉넉함을 한껏 펼쳐낸 커다란 이상들을 새겨보며 조금이라도 닮아보기를 소망하련다. 

이덕일 (지은이)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2-06-04


한참 전에 같은 저자의 조선왕 독살사건을 나름 재미나게 읽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읽었던 '명강'이라는 책에서 역사학자 이덕일의 강의를 재미나게 본 영향도 있었다. 그 두 책을 읽으며 새롭게 알게 된 건 바로 '노론'에 대한 것이다.

나에게 노론이란, 예송논쟁에서 상복을 몇년 입을 것이냐로 싸우던 소론의 반대편, 우암 송시열이란 거두를 중심으로 하나의 세를 이루었던 당파였다는 것 정도밖에는 지식이 전혀 없었다. 어찌 보면, 그 예송 논쟁도 논쟁의 숨은 본질보다는 그냥 1년이냐 3년이냐 싸웠다는 기억만 남아 있었다. 물론, 역사 선생님은 제대로 잘 가르쳐줬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이들 책에서 본 노론은 과거 한 시대를 지배했던 거대 정치 세력으로만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일제 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생생히 살아서 우리의 현재를 지배하고 있는 유령과 같은 것이었다. 중국을 떠받들고, 조선의 왕 쯤은 얼마든지 자기들 마음대로 갈아치울 수 있다고 믿었던 그들의 사상을 이완용은 이어 받았고,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친일의 잔재는 현재 우리 사회의 모든 부조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아무래도 제대로 된 역사 공부를 다시 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근대에 대한 저자의 역사 평설이다. 저자가 보는 근대의 핵심은 일제 강점이다. 그래서 이 책의 경우, 고종이 러시아와 일본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시기부터 일본의 침략, 독립운동에 대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그 시기, 우리 나라의 역사를 53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풀어낸다. 읽다 보면 분개할 일들 투성이다. 어쩌면 이렇게 하는 일마다 악수를 두는 임금이 다 있을까, 어쩌면 이렇게 자기 앞가림에만 투철한 간신배들만 임금 옆에 득시글 댔을까, 어쩌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가고 모진 고문을 당해야 했을까, 어쩌면 이렇게 사람들의 삶은 점점 피폐해지기만 했을까... 쓰고 보니,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새로운 사실도 많이 알았다. 60세가 넘은 나이에 새로 부임하는 총독에게 폭탄을 던진 강우규 열사에 대해서도 처음 알았고, 레닌이 사회주의 완성을 위해 일본에게 후원금을 받았다는 사실도 그랬다. 친일에도 서로 경쟁하는 두 파가 있었다는 것도 몰랐었고, 힘을 합쳐도 모자랄 마당에 서로 분열해서, 결국 주변 나라들에게 이용당해 아군에게 총부리는 겨눈 격인 자유시 참변도 정말 가슴 아프기만 하다. 이 작은 땅덩이의 나라가 100여년 동안 겪은 일들이 너무나 파란만장해서 따라잡기가 벅찰 정도이니...


한동안 고등학교 교과과정 근현대사가 분리되었다가, 지금은 다시 국사 과목에 통합이 되었고 교과 내에서는 근현대사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나 아이들이 잘 배울 수 있을 지 모르겠다. 가르치는 사람이 어떤 역사 의식을 갖고 있느냐가 더욱 중요한 문제일 테니까. 한국의 주류 역사학자들이 식민사관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는 한, 아이들이 배울 역사 또한 노론의 역사, 친일의 역사가 되지 않을까. 


한가지 아쉬운 건,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침략과 지배에 촛점을 맞춘 근대사 책이라는 점이다. 그 사이에 벌어졌었던 우리 내부의 움직임, 예를 들어 개화파 라든가 을미사변, 갑신정변, 갑오개혁 같은 역사적 사실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언급만 있을 뿐이다. 정조 부터, 순조, 철종으로 이어지는 시기에 대해서 궁금하다면, 이 책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 어쨌든, 역사 공부, 열심히 합시다...


안소영 (지은이) | 보림 | 2005-11-04



조선시대의 선비 이덕무는 '간서치'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책만 보는 바보'란 뜻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책만 읽는다는 모습에서 책을 정말 좋아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책만 보는 선비라는 측면에서 생계적으로 무능하고, 세상과 담을 쌓는 주변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기도 한다.

사실, 이덕무도 끼니를 잇기 어려울 정도로 가난했었고, 그래서 어렵게 구한 귀한 책들을 팔아 끼니를 이어야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무능해서라기보다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던 후기 조선 사회에서 서자의 핏줄로 태어나야 했던 사회적 제약 때문이었다. 책을 읽었으면 당연히 뜻을 펼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뜻을 펼칠 수 없었던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얼마나 많은 것들이 응어리져서 맺혀 있었을까.

이 책은, 그런 이덕무가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 그들과의 소소한 이야기들, 그들과 함께 나눈 인연과 함께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의지들을 이야기 해주고 있다. 우리가 국사책에서 실학파로 배웠던 사람들인, 연암 박지원, 담헌 홍대용, 박제가, 유득공, 백동수, 이서구 등과 남산 자락 백탑골에 모여 살며 나누었던 우정이 참으로 정겹게 묘사되어 있다. 

이 사람들은 정조 때에 그나마 뜻을 펼치게 되었다. 물론, 그 이후에는 다시 또 좌절의 나날을 겪었겠지만 말이다. 전체적으로 이 사람들은 주류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기록 또한 많지 않다. 저자 또한, 아주 짧게 기록된 이덕무의 자서전인 '간서치전'을 읽고 각각의 사람들에 대한 자료들을 수집하여서 상상을 덧입혀 이야기를 풀어냈다. 많지도 않은 자료들을 가지고 얽어 낸 이야기들이, 마치 가슴 훈훈한 휴먼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 인물들에 대한 저자의 사랑과 지극한 관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일 터. 너무 세상이 승자와 주류 중심으로만 흘러가는 것이 왠지 마음 편치 않다고 느껴질 때, 이런 기록과 이야기가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덕무가 맹자의 책을 팔아 가족들의 끼니를 간신히 해결한 후, 상한 마음을 위로받고자 유득공의 집을 찾아간다. 그 때 유득공은, "맹자를 팔아 밥을 먹었다"는 말 한 마디만으로 그의 마음을 훤히 읽고, 바로 자신의 책을 팔아 술을 대접한다. 선비가 어찌 책을 팔아서 밥을 구할까라는 자괴감을 너만 그런 것이 아니라고 위로할 뿐 아니라, 슬퍼하는 벗을 위해 없는 살림에 기꺼이 술로 위로해주는 마음,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고 조용히 옆자리에 앉아주는 친구의 마음... 빠르고 얕은 디지털 시대라서 그런 지, 이런 묵묵하고도 깊은 우정이 더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 책은 빌려 주기도 아깝다. 그냥 책장에 두고, 시간이 흘러도 가끔씩 만져보며 그들의 우정과 그들의 다정다감한 삶을 기억하며 계속 새기고 싶다. 


[본문 중에서...]


"매화나무에 꽃이 피었을 때, 꽃은 자신이 꿀과 밀랍이 되리라 알았겠습니까. 더욱이 그 꿀과 밀랍이 다시 매화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걸 알기나 했겠습니까."... 58p.


"긴 한숨을 내쉬고 그만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뒤통수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돌아보니, 저만치 마당 끝에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믐으로 가는 어두운 달빛이라 흰 옷자락만 설핏 보였으나, 그가 박제가라는 것을 두근거리는 심장이 먼저 알아보았다..." 65p.


"달빛 흐르는 밤의 운종가도 운치가 있지만, 대낮의 운종가도 볼 만 하였다.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저마다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찾아 흘러다니는 모습은, 운종가(雲從街)라는 거리 이름처럼 과연 구름이 뭉게뭉게 흘러다니는 듯했다..." 78p.


"목검을 휘두르는 것이 후련하기만 하다가 문득 두려운 마음이 들 무렵, 스승은 그에게 다시 검을 주었다. 날이 아름답고 서늘한 조선 예도였다. 스승이 말했다. '진정한 무예의 길은 창과 검을 그치게 하는 데 있다.' "... 112p.


"구서(九書)란 책을 읽는 독서(讀書), 책을 보는 간서(看書), 책을 간직하는 장서(藏書), 책의 내용을 뽑아 옮겨 쓰는 초서(抄書), 책을 바로잡는 교서(校書), 책을 비평하는 평서(評書), 책을 쓰는 저서(著書), 책을 빌리는 차서(借書), 책을 햇볕에 쬐고 바람을 쏘이는 폭서(曝書)를 말한다..." 126p.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시간이지만, 그 시간의 흔적은 사람의 기억과 마음속에 남을 것이다. 사람들은 서로의 삶 속에 깊숙이 들어가면서, 시간이 흘러가는 길을 내기도 하고, 각자의 시간을 서로에게 나누어 주기도 한다.... 시간을 나눈다는 것은, 반드시 얼굴을 마주 대하고 있는 사람들끼리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저 아이들과 우리 또한, 서로의 시간을 나누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노력이 저 아이들의 시대를 조금이나마 빛나게 하고, 그런 우리의 시대를 저 아이들이 기억한다면... 오랜 세월이 흐른다 하더라도 누군가 나의 마음속에 스며들어와 나의 진심을 이해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서로 시간을 나눌 수 있다. 옛사람과 우리가, 우리와 먼 훗날 사람들이, 그렇게 서로 나누며 이어지는 시간들 속에서 함께하는 벗이 되리라..." 250p.


사이토 미치오 (지은이) | 송태욱 (옮긴이) | 삼인 | 2006-01-05 | 원제 なやむ ちから (2003년)


일본에서 정신장애인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인 '베델의 집'에 대한 책이다. 우연치 않게 사회복지사에 의해서 시작된 이 공동체는, 구성원들에게 '치유'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서로 기다려주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가운데에서 그냥 남들과 똑같이 살아가고자 한다.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을 적용하지 않고 그냥 하나의 '인간'으로 바라보는 가운데에서 그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은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다.


장애를 가진 사람은 보호해야 하고, 병을 가진 사람들은 치료해서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편견일 수 있다고 이 책을 이야기해준다. 장애, 혹은 정신질환에 대해서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이 결코 진리일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전혀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전혀 예상치 못한 과정들을 통해 함께 어울리고 자립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과연 그들이 기업체를 운영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것이 기우일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우리 나라에서도 한참 이야기되고 있는 장애인들의 자립과 재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립되거나 격리되어서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어쩌면 그것은 이른바 정산인의 사회에서는 결코 실현할 수 없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일할 수 없는 사람은 자고 있어도 괜찮다는 그런 불평등한 시스템을 일반 사회는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델의 집' 사람들은 알고 있다. 정신장애인 가운데는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병의 증상이 나타나면 일할 수 없게 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것을 인정해 안심하고 일에서 빠져도 된다고 보증해주었을 때, 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로웠다. 그 자유와 안심이 마지막에는 장사로 이어졌다. 그 누구도 잘라버리지 않는다는 것과 이익을 낸다는 것은 결코 상반된 주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p.95


"눈앞에 있는 사람들,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그들 안에 있는 깊이를 알 수 없는 편안함에 비해 자기 자신이 안고 있는 것은 그 얼마나 하찮고 불안한 균형인가. 그 차이는 대체 뭐란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한 순간, 방문자는 그곳에서 거울에 비추어지듯 자기 자신의 모습과 인생을 보고 만다. 자신은 병자와 만나러 온 것이 아니었나. 그런데 병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p.116


"뭐라고 할까요. 차별하지 않는 점이라든가, 모두들 서로 격려해주거나 도와주고 또 조언해주고 하는 점이랄까. 그런 것들요. 그리고 절대 혼자 있게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것도요. 아무리 병이 심하고 폐를 끼친다고 해도 다시 함께 해줄 수 있다는 것이랄까. 그 사람의 입장에서 봐주는 그런 점이요..."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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