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엮은이) | 오월의봄 | 2013-04-19
나는 살면서 차별이라 할 만한 것을 겪은 적은 없다. 물론 국민학교 시절에는 선생님이 몇몇 친구만 더 좋아한다고 왜 차별대우하냐며 일기장으로 항의하기도 했었고, 가끔 엄마가 맛있는 걸 사놓고는 바로 안 주고 오빠가 오면 먹자고 할 때 왜 차별대우하냐며 엄마에게 앙탈부렸던 것 정도가 내가 겪은 차별이랄까.
그러던 내가 작년에 '차별'이란 것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생각하게 되는 경험을 했다. 작년에 우리 팀은 나까지 모두 5명이었고, 여자는 나 하나였다. 그런데 공교롭게 나를 뺀 나머지 네 명은 골초. 그리고, 우리 상무님까지 골초. 그들은 틈만 나면 우르르 담배를 피러 나갔다. 그리고 다들 아시다시피 그곳에서 많은 역사는 이루어졌다. 어느 순간 보면 자기들끼리 업무 분장이 되어 있다거나, 내가 전혀 듣도 보도 못했던 일을 자기들끼리 하고 있기도 했다. 한번은 팀장에게 어필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전혀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냥 워낙 다수이다보니까, 그냥 자기들끼리 얘기한 걸 팀 전체가 얘기한 걸로 착각하기도 했고, 자기들끼리는 배려해준다고 어떤 결정을 내린 것이 나에게는 일방적인 통보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너희들과 함께 담배피러 나가지 않는다고 많은 부분에서 난 차별을 당했다라고 그들에게 얘기한다면, 아마 그들은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냐며 항변을 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분명히 난 차별을 당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차별은 당한 사람이 분명한 목소리로 얘기하지 않으면 아무도 차별을 의식하지 못할 수 있다.
얼마 전에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차별금지법을 여러 가지 관점에서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종교적인 근거를 들이밀며 반대를 했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더이상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법안을 결정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그들에게 가해지는 구체적인 차별이 어떤 것인지 증명해 보이라고 했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좀 우스웠다. 어이가 없기도 했다. 하지만, 내 경험에 비추어보면 결국 차별은 당한 사람들이 이것은 차별이라고 알려주는 것이 가장 빠르고도 직접적인 길이다. 그렇지 않으면, 차별을 행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차별인 것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그들이 자신들이 받은 차별을 당당하게 내놓을 수 있는 사회적인 여건이 조성되어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만 한다. "사실 내가 떳떳하게 나설 수 없는 게 차별이거든. 내가 당당하게 나가서 내 이야기를 해야 되는데 사회가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만들쟎아. 내가 내 테두리를 만드는 게 아니라 사회가 그런 테두리를 만들고 있다고...." 라고 얘기하는 이 에이즈 감염인의 말처럼 말이다. 차별 받은 사람들이 차마 말하지 못하는데, 무언의 힘이 의해 사회의 울타리 밖으로 계속 밀려나고만 있는데, 이들이 스스로 차별을 밝히지 않았다고 해서 이 사회는 평등하다고 얘기할 수 있는가?
"성소수자들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거주하거나 일하는 공간에서 누군가 커밍아웃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 곳은 아마도 성소수자들에게 무척이나 차별적인 공간일 것입니다.(본문 중에서)"
이 말에 근거하면, 이미 내가 생활하는 모든 공간은 차별적인 공간이다. 우리가 지극히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공간, 또는 매우 개방적이고 평등하다고 생각했던 공간 모두가 차별적인 공간이었고, 그곳에서 행했던 나의 배려는 이미 누군가에게 차별적인 행위였다는 것을 이제는 깨달아야만 한다. 무심결에 지나쳤던 공간들에서 전해오는 신호들을 감지하고, 그들에게 '수신확인'을 통해 힘을 실어주는 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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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들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거주하거나 일하는 공간에서 누군가 커밍아웃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 곳은 아마도 성소수자들에게 무척이나 차별적인 공간일 것입니다.(본문 p.114 중에서)
'도가니'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가해자들에게 분노했다. 그렇게 분노로 이글대던 사람들이 영화가 끝나자마자 휠체어를 탄 장애인에게 조금의 양보도 하지 않고 우르르 나가서 엥리베이터 앞으로 가는 모습을 보았다. 이런 상황을 마주하면 다시 간극이 느껴진다.(본문 p.162 중에서)
정상적인 몸의 기준, 아름다운 외모의 기준이 강요되는 문화, 그러한 사회에서 살아갈 때, 거기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있기 때문에 자신을 부정하거나 그 기준에 맞도록 나를 바꿔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는 사람들은 장애인뿐만이 아니다. 장애인을 억압하는 근거와 기준이 모든 사람들에게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면, '장애'의 문제는 '장애인만'의 문제가 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장애/비장애의 경계가 가지는 문제에 대해 더 얘기해야 하지 않을까?(본분 p.163 중에서)
사실 내가 떳떳하게 나설 수 없는 게 차별이거든. 내가 당당하게 나가서 내 이야기를 해야 되는데 사회가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만들쟎아. 내가 내 테두리를 만드는 게 아니라 사회가 그런 테두리를 만들고 있다고. 어떤 사람들의 목소리를 꼭 강압적으로나 법적으로 규제하는 것만 차별이 아니야......그런데 차별이라는 건 보이지 않는 거야. 너는 여기 있으면 안 된다는 무언의 압력 같은 거. 목소리를 내려면, 진짜 어떤, 한 사람이 인생을 걸고 해야 되는 거야......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다같이 나서서 얘기하는 건 힘들쟎아. 그게 바로 사회구조에서 나오는 차별이야. 지금 당장 아무런 피해가 없으니까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지나가지. 그대신 그만큼 권리를 보장받을 수 없는 거야.(본문 p.180 중에서)
차별은 성별, 직업, 학벌, 나이 등에 따라 쉽게 분리되어 나열되지만 알고 보면 이렇게 모두 치밀하게 엮여 있다. 어느 한순간, 특정한 누군가에게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차별을 만들어내는 사회의 구조들이 서로 연결되어 우리 모두의 삶의 궤적 속에 세세하게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연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신의 삶 속에서 서로의 삶을 발견하며.(본문 p.250 중에서)
닥쳐오는 불운이나 억울한 일을 더 이상 회피하지 않고자 했을 때 그것을 목격한 이가 증언자가 되고 그 옆에 자리하는 것. 그리고 그 차별을 정성을 다해 설명하고자 계속 애쓰는 것. 그리고 차별에 대한 법적인 구제의 과정을 사인간의 문제로 한정하지 않고, 법적인 구제 의미가 사회 관행과 권력을 바꾸어나가는 것을 지향하도록 견인하는 것. 이것이 문제를 보편화하는 방향이 아닐까.(본문 p.278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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