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재 (지은이) | 어크로스 | 2012-02-20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안 샀는데, 마침 팀장님이 읽고 계셨다. 다 읽고 재밌다고 하시길래 가져다가 읽었는데 굉장히 쉽고 재미나게 읽힌다. 

선대인, 우석훈, 정태인 등의 경제 관련 책을 그 전에도 즐겨 읽어서 그런지 모르는 얘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저 사람들이 얘기한 것들을 엑기스만 뽑아서 정리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가장 쉽게 읽히는 것 같다. 물론, 쉽게 읽힌다고 해서 그 내용이 가볍다거나, 부실한 것은 절대 아니다. 저자의 필력에 좌우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위의 책들은 한 주제를 깊숙이 파는 것이라면, 이 책은 두루두루 쉽게 많은 것을 조금씩 설명해주는데, 이것만으로도 지금 돌아가는 우리사회의 경제 시스템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다. 


어쨌든 내가 읽으며 놀란 것 중 하나는 전세계에서 100만불 이상의 자산을 소유한 사람이 3천만명 정도로, 전체 인구의 0.5 % 정도라는 것. 생각보다 너무나도 적은 수였다. 그만큼 부의 편중은 심각하다. 그리고 우리는 비교적 살 만하다. 그러나 여전히 무언가 배고픈 사람들만 주변에 가득할 뿐... 노트북 하나를 만드는 동안 노트북 무게의 4천배에 이르는 쓰레기가 발생한다. 탐욕이 지배하는 세상, 돈이 돈을 낳는 세상, 그들만의 리그만 배불러지는 불공정한 세상... 진정한 행복은 과연 무엇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것인지, 과연 지금 우리 나라의 경제시스템은 올바른 것인지 고민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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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럴 오프 (지은이) | 배현 (옮긴이) | 알마 | 2011-01-26 | 원제 Bitter Chocolate: The Dark Side of the World's Most Seductive Sweet



초콜릿에 얽힌 추억 1.

초콜렛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발렌타인데이... 사실, 그 이전의 어릴적 내 기억 속에 초콜렛이란 건 없다. 사실 먹어보기야 했을 터이고, 과자에 발라져 있는 초콜렛까지 치자면 내 기억이 허락하는 정도를 넘어서 정말 꼬꼬마 시절부터 경험이야 했겠지만... 내 기억속의 초콜렛은 어쩌면 코코아에서부터 시작할 지도 모르겠다. 코코아와 초콜렛이 한집안 두 가족이라는 건 아주 나중에 알았지만 말이다. 초콜렛이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판형 초콜렛이나, 키세스 같은 개별 포장의 초콜렛은 '교회 오빠'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현대판 레알 사전 버전으로 하자면, 80년대 이은정에게 초콜렛이란? - 좋아하는 교회 오빠에게 어떻게 하면 더 이쁘고 더 특색있는 초콜렛 무더기를 안겨줄 지 고민하게 만드는 발렌타인데이의 소모품... 1년에 딱 한번, 그 날 이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초콜렛...


초콜릿에 얽힌 추억 2. 

회사에 갓 입사했을 때 우리팀엔 아담 사이즈의 이쁘장한 대리가 하나 있었다. 무척이나 스타일리쉬 하면서 순대국이라든가 부대찌개 따위와는 도통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었고, 실제로도 뜻이 맞는 극소수의 사람들과 주로 밥을 먹으러 다녔고, 피자나 스파게티를 먹으러 가거나, 버거킹에 자주 갔던 것 같다. 우연치 않게 함께 하루짜리 교육을 받으러 강남에 같이 갔었는데, 그 때 난 TGI Friday 라는 패밀리레스토랑에 처음 가봤고, 케이준 샐러드라는 걸 처음 먹어봤다. 그 당시 핑크빛 꽃으로 디자인된 'LG Lady Card'를 테이블에서 내밀며 점심을 사주는 모습을 보며, 나도 저렇게 후배를 위해 이렇게 멋진(!) 식당에서 카드를 턱 내밀며 밥을 사주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가슴 설레기도 했었다.(지금 생각하니 진짜 별 거 아니었는데... 쩝)

어쨌든, 그런데 그 대리님의 책상 서랍엔 늘 초콜렛이 들어 있었다. 가끔은 그 초콜릿을 따뜻한 미소와 함께 나누어주기도 했었는데, 난 그 때 초콜렛을 '상복'하는 사람을 처음 보았다. 그냥 발렌타인 데이 때나 먹는 달콤쌉싸름한 군것질, 많이 먹으면 살을 찌게 하는 나쁜 군것질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초콜렛이, 누군가에게는 그 사람의 특성을 규정짓는 특별한 '음식'이 되고, 더 나아가 나와는 다른 세계에 속한 어떤 사람을 규정 짓는 특별한 의미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어쨌든, 나와 초콜렛은 그닥 밀접한 관계는 아니다. 다만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케이크나 과자 류를 집어들 때 가끔씩 함께 먹게 되는 양념과 같다고나 할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초콜렛의 역사를 역사적, 지리적, 문화적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한 '초콜렛의 사전'과 같은 책이다. 사실, 이미연이 어떤 남자의 바바리 속에 들어가서 쉴 새 없이 눈웃음을 날리던 선전 때문에 우리에게 초콜렛의 대명사는 '가나 초콜렛'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사실, 초콜렛은 '가나'가 최고이자 원조가 아닐까라는 오해를 했었다. 이건 다 이미연 때문이다...라고 하면 좀 웃기겠지만. ㅋㅋ

남아메리카의 고대 제국에서 시작한 카카오 재배와, 카카오를 둘러싼 전쟁들,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으로 옮아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카카오 농장의 노예 노동, 아동 착취까지... 카카오에 대해서 전혀 몰랐던 많은 것들이 흥미롭게 설명되고 있어서 매우 두꺼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재미나게 읽었다. 블러드 다이아몬드 못지 않은 블러드 카카오랄까. 공정무역커피 못지 않게 공정무역초콜렛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에서는 연약한 아이들이 자기들이 만드는 카카오가 어떻게 소비되는 줄도 모르고, 그것을 어떻게 먹는 지도 모르는 채 아무런 댓가도 받지 못한 채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걸 생각한다면, 무심코 집어 드는 초콜렛 하나, 핫초코 한모금도 쉬이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하나 새롭게 안 사실은 라스카사스 신부에 대한 것이다. 라스카사스는 1512년 사제 서품을 받아, 아메리카의 최초의 사제가 된 사람이다. 그 당시 스페인은 그라나다를 무력으로 함락하고 무슬림을 폭력에 의해 카톨릭으로 개종시켰듯이, 남아메리카의 인디오들도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라틴어로 개종 권유문을 낭독하고 거부하는 경우 산 채로 화형에 처하는 등 잔인한 살육을 자행했고, 설사 기독교로 개종한다 하더라도 그들을 열등한 존재로 간주하여 노예로 부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라스카사스 신부 역시 아메리카 대륙의 선교를 위해 그곳으로 가서 처음엔 노예들을 당연히 부리며 선교의 임무를 수행하다가, 인디오들의 비참한 현실을 목도하고는 완전히 변화하여 인디오들의 권리를 위한 투쟁을 전개하고, 본국에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때로는 저항하기도 하면서 선교의 임무를 수행했다. 어찌 보면, 남아메리카 해방신학의 기원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처음엔 기득권 세력의 저항도 거셌지만, 결국 1530년, 스페인 국왕은 라스카사스의 청원을 받아들여서 신대륙에서 노예제도를 폐지하도록 했다고 한다. 과테말라의 치아파스의 주교가 된 이후에는, 노예를 즉각 석방하지 않는 식민정복자들에게는 성체성사를 베풀지 말도록 지시할 정도로 과격한 정책을 펴기도 했다. "인디언들 또한 우리들의 형제이며, 그리스도는 그들을 위해서도 자기 생명을 바쳤다."-라스카사스

과연 하나님은 누구의 하나님인 지, 종교의 역할은 어떤 것인지 지난번 읽었던 책과의 연장선 속에서 다시 한번 고민을 해보게끔 해준 존재 라스카사스 신부. 누군가가 평전을 썼다고 하는데, 우리 나라에 번역이 되어서 나오면 참 좋겠다.



"이처럼 그들의 생활은 개선되었지만 마야인들은 여전히 원두 재배 이상의 것은 하지 못한다. 초콜릿 제조는 다른 이들의 몫이다. 유럽의 세관 장벽이 가공식품 수출을 가로막고 있다. 소비자 만족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오로지 원료 수입만 허용된다. 관행이 바뀌어 마야인들이 가공식품을 수출하게 된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들의 이름을 딴 판형 초콜릿을 살 만큼 부유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p.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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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지은이) | 글항아리 | 2012-12-31


기독교인들을 대표적인 10가지 부류로 나누어 각각을 설명하면서, 현실의 기독교가 맞닥뜨리는 현실 및 기독교의 민낯을 속속들이 파헤치는 책이다. 조금 불편한 이야기가 없는 건 아니지만, 나도 기독교인 중 하나로서 많은 부분 공감가는 이야기들이다.

목사라는 직분을 가지고 있지만, 어린 양들을 인도하기에 너무나도 부족한 사역자들, 교회 안에서의 보수적인 분위기와 파벌주의, 오로지 드러내고 자랑하기에만 바쁜 교회들, 일방적이고 배타적인 교회의 사역들 등 보고 있노라면 어느 교회에든지 해당하는 사람이 있고, 어느 교회든지 일부 가지고 있는 모습들이라서 마음이 불편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이라면, 정말 종교가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이끌어야 한다고 믿는다면, 그리고 우리 나라의 기독교에 대해 수없이 실망하며 시험에 들면서, 다시 또 스스로 자책감에 빠져드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은 읽어볼 필요가 있다. 

과연 기독교인으로서 우리가 지켜내야 할 가치는 무엇일까. 기독교는 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만 하는가. 기독교인들이 세상과 종교 사이에서 어떤 중도를 지켜내야만 하는가. 근 5년 간, 물론 어떤 하나의 인간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되기는 했지만, 개독교라 불리며 너무나 많은 적을 만들어내고 있는 요즘의 기독교는 깊은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단, 저자의 어휘가 너무나 생경한 게 많아서 몇번씩이나 사전을 찾아보았다. 그게 내가 몰랐던 우리말뿐 아니라 사자성어, 한자어까지 한번에 쉬이 읽히지 않는 문장들이 꽤 있다. 물론, 내가 무식해서라고 얘기한다면 할 말 없지만, 이렇게까지 어려운 단어들을 꼭 써야 한 것이었을까. 누군가에게는 상식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상식이 아니란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대표적인 단어들... 알짬, 선손, 명개, 슬금, 언가반가, 인순고식, 동접, 전념집주, 주일무적, 언죽번죽...


"베블런에 의하면 전통적 가부장의 지배 아래에서 부인이 행하는 소비도 꼭 이와 같은 것이다. '부인의 여가 활동은 대부분 일정한 노동이나 가사 의무 또는 사교활동 같은 위장된 형태로 이루어지는데, 사실 그런 활동을 잘 들여다보면 그녀가 소득을 얻거나 자신을 운용하여 이익을 얻는 어떤 직업에도 종사하거나 종사할 필요가 없음을 과시하는 것 이상의 다른 목적은 거의 혹은 전혀 없다는 것이 드러난다.'" p.43


"널리 알려진 푸코의 지적처럼, 육체의 질병을 치유하려는 의사들과 영혼을 구제하려는 사제들의 지위와 역할은 사뭇 닮은 데가 있다. 그런 식으로 이른자 사목권력과 생명정치는 내적으로 연루된다." p.57


"개인의 벌이라는 게 지배의 테크닉과 자아의 테크닉의 교차/결절하는 지점이고, 자아가 자기 배려하는 지점이 체계의 강제와 지배의 구조에 통합되는 지점 - 이른바 '통치성'의 지점 - 이라는 사실에 유의한다면, 체계와 개인 사이의 비평적 거리를, 혹은 (베버의 말처럼) '규율화와 개성적 카리스마 사이의 파란 많은 투쟁'의 거리를 고민하면서 적절한 규모와 수준의 벌이를 모색해야 하는 게 마땅하지 않을까?" p.92


"이미 우리 시대의 교회는 사회적 강자와 부자들을 대체하거나 각성시키는 어떤 (초대 교회들과 같이) '절실한 약자들로 구성된 희망의 공동체'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사적 욕망을 '소망'이라고 부르며, 자본제적 세속의 성취와 권리, 그 지위와 신분을 언죽번죽 종교신학적으로 합리화하고, 교회마저 점유하고 영토화한 세속적 특권들의 심리적 봉토로 전락한 곳, 필시 다시 찾아올 예수를 가장 격졀하게 배척할 곳이다." p.99


"i는 '세상 끝날까지 전파할 복음'의 전도자를 자처하며 나대는 사람이다. 당연히 그는 책을 읽는 자의 '거리감'-진리와 자신의 현존 사이의 어긋남과 그 안타까운 소격-을 알지 못한 채, 그 스스로의 맹신 속에서 책이 되어버린 사람일 게다. '모국어만 아는 자는 이미 그 모국어도 제대로 모르는 것'(괴테)라고 하듯 한 권의 책만을 맹신하는 것은 이미 책을 읽는 게 아니다." p.110


"종교는 스스로 빈 것으로 남아, 늘 종교가 아닌 것을 도우는 데 그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이다. 조욕가 생활을 규제해왔던 현실을 뒤집어, 어떤 현실과 어떤 희망이 종교를 완성시키는 식으로-그러니까 종교가 생활을 도와, 바로 그 생활이 다시 종교를 완성시키는 방식으로-재배치되어야 한다. 마치  못난 인간들이 못난 신을 제 꼴처럼 품은 채로 역시 못난 생활과 못난 욕망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거꾸로 좋은 사람들의 좋은 생활과 좋은 희망은 종교를 완성하고, 그 속의 신을 아름답게 재현해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p.133



알짬, 선손, 명개, 슬금, 언가반가, 인순고식, 동접, 전념집주, 주일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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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지은이) | 창비(창작과비평사) | 2012-05-25


권정생 선생은 강아지똥, 몽실언니 등을 쓴 동화작가이다. 2007년 소박한 삶을 조용히 마무리하신 지 5년. 작고 5주기를 기념하여 다시 묶어낸 산문집이다. 2007년 어느날, 신문에서 그의 부고를 보고 관심을 가지긴 했었으나, 직접 산문집을 사서 읽어 보긴 처음이다. 사실, 그의 이름을 달고 출간된 산문집들 모두 타인의 의지에 의해 출간된 것이고, 정작 본인은 오로지 아이들을 위한 글을 쓰고 평화와 자연을 향한 재야의 사상가로서 살아가는 데 집중했다. 


책에 실린 대다수의 글들이 1980년을 전후한 시기의 글이다. 벌써 30년 전인 셈.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 내용이 전혀 오래된 것 같지 않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30년 전에도 여전히 산업의 발전 속도가 인간다운 삶을 파괴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예전의 순박함을 잃고 각박해져만 갔으며, 없는 사람들은 더욱 살기 힘들어지고, 재물을 가진 자들이 없는 사람들을 업신여기며, 종교조차도 물질 중심으로 타락하고 있었다는 것. 30년 전부터 그래 왔으니, 지금의 상황은 얼마나 곪아 터질 대로 터진 상황일까.


읽다 보면 참 가슴이 아프다. 2차 대전과 한국전쟁, 두번의 거듭된 전쟁으로 망가져가는 민초들의 삶이 애달프다. 작가의 살아온 삶이 유난히 불행한 것이 아니라, 그 시기를 살아갔던 우리네 부모님들의 세대가 다 그러했을 테니 더더욱 그렇다. 병과 굶주림으로 죽어가야 하고, 가난으로 인해 버려지는 아이들, 전쟁통에 생사조차 알수 없게 된 가족들, 도시화와 산업화 속에서 희생되어야만 했던 수많은 청소년들... 그러나 아무것도 우리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했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만의 싸움에 몰두했고, 가진자들은 한없이 욕심을 내며 없는 자들의 것을 하나라도 더 빼앗기 위해 힘을 휘둘렀다. 유일한 안식처가 되어야 할 종교조차 물질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결국은 권력이나 재물이 있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되어 갔다. 


작가는 이러한 세상에 대해 애정어린 시선을 거두지 않으면서, 끊임 없이 자연으로 되돌아가자고 외치고 있다. 종교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예수님의 정신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호소하고 있다.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고, 그래서 자연과 함께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세상에 대한 열망이 모든 글에 묻어나고 있다. 진정한 평화주의자, 자연주의자, 인본주의자의 모습이다.


물론, 워낙 나고 자란 시기가 있다보니, 지금의 기준으로 볼 때 조금은 보수적인 시각을 보여주는 면도 있다. 여성에 대한 관점과 기술의 발전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는 가끔 불편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건 그야말로 옥의 티 수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인지,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소박하면서도 열정적인 글들이다. 바로 전에 읽었던 '불안'의 해법을 권정생의 시각으로 제시하고 있는 느낌도 들어서 개인적으로는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결국엔 '공존'이 키워드 아닐까.



"이 세상의 모든 교육은 선하고 아름답게 살아가기 위한 교육이 아니라, 좀 더 편리하고 풍요하게 살기 위한 교육이 되어 버렸다. 그것도 물질적 풍요와 편리는 지나쳐서 쾌락으로 어긋나 버린 것이다. 그래서 많이 배운 사람은 더 많이 차지하고 더 많이 편하게 살고, 배우지 못한 사람은 가난하고 고달프게 살아야 한다." p.67


"공중에 날아다니는 새에게도, 들에 피어나는 한 송이 꽃에도 하느님은 먹이고 입히신다는데 형님은 먹을 것이 없어 굶어서 죽었다. 숨이 넘어갈 때의 모습은 어땠을까? 할머니는 그래도 불쌍한 손자를 끌어안고 몸부림치셨겠지. 문둥이 삼촌도 손가락이 다 문드러져 나간 손바닥만으로 조카의 이마를 쓸어 주며 눈물을 흘렸을 게다. 가엾은 사람들." p.81


"텔레비전을 보면 온통 먹어라, 입어라, 마셔라, 신어라, 발라라.... 이렇게 돈 쓰게 하는 광고 천지다. 부드럽고 친절하게 말하는 것 같지만 어찌 보면 강요하다 못해 협박을 하는 듯도 하다. 마치 그렇게 안 하면 좋지 못할 것처럼 느끼게 만들고 있다." p.92


"옥이네 할머니는 이런 말씀도 하셨다. '인간 세상 천 층 만 층 구만 층이제.' 같은 똥공장인데도 역시 구만 층이나 될 만큼 불평등한 것이 세상인 것이다. 한숨이 절로 난다." p.113


"언젠가는 우리 모두 죽는다. 그러니 절대 앞서지 말자는 것이다... 드넓은 밤하늘을 보면 우리 인생이 얼마나 작고 초라한지 알 것이다. 하늘을 쳐다보는 데 아직 돈 내라 소리 없지 않은가. 가난한 사람에게도 우주는 그만큼 너그럽다. 작은 것으로, 느리게 꼴찌로 뒤처져 살아도 자유로운 삶이 있다. 자유로운 꽃찌는 그만큼 떳떳하다." p.123


"누군가가 말하길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죄라고 했다.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하고, 먹기 위해서는 죽여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것도 결국은 수많은 목숨들의 희생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p.166


"사랑 사랑 하다보니 결코 용서해서는 안 될 사실까지 덮어 버리고 양가죽을 뒤집어쓴 이리 같은 사기꾼이 되어 버렸습니다. 겸손은 무조건 무릎을 꿇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알량하고 비굴한 인간이 되었습니다. 복종만이 신앙의 도리로 알고 맹종하다 보니, 이젠 마귀의 명령에도 굽신대는 절대적인 착한 인간이 되었습니다." p.285


알랭 드 보통 (지은이) | 정영목 (옮긴이) | 은행나무 | 2011-12-28 | 원제 Status Anxiety (2004년)



우리는 언제 불안을 느끼는가? 저마다 자신이 느끼는, 혹은 느껴본 적 있는 불안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다양하게 나올 수 있는 답들을, 저자가 몇가지의 원인으로 분류하여 불안의 원인과 그 해법을 제시한 책이다. 

도대체 내 불안의 근원이 뭘까라며 답 없는 고민을 하다가, 무릎을 탁! 치며 아하~ 하고 얻는 깨달음이 있지는 않다. 사실 어찌 보면 우리가 다 아는 얘기들을 조금 더 일목 요연하게 정리했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막연하게 느끼고 있던 것을 활자화된 글로 발견할 때 느끼는 개운함 내지는 시원함이 있는 책이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보여주었던 사랑에 빠진 사람의 심리에 대한 섬세한 묘사처럼,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불안들에 대해서 여러 가지 방면으로 뜯어보고 곱씹어보면서,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결국 우리는 나의 현재 상태가 허물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혹은 내가 꿈꾸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에 대한 두려움, 누군가로부터 외면을 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불안을 느끼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이 모든 것은 경제적인 것, 사회적인 지위, 사랑 등과 연결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에서 우리는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어느 수준에 이르면 만족을 느낄 수 있을 것인가, 혹은 적어도 어느 수준이 되어야 불안을 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설명은 결국 타인과의 비교 혹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이데올로기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이런 불안의 기원과 그 해법을 2000년 역사와 예술을 넘나들며 풀어내는 저자의 필력은 여전히 놀랍고, 중간 중간의 위트 또한 책 읽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의 범주로 설명했던 전반부에 비해 해법으로 제시하는 뒷부분은 약간 힘이 빠지는 느낌이랄까. 그 해법 중에 가장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것은 철학이나 정치의 카테고리에서 얘기한 부분밖에 없지 않냐고 묻는다면 내가 너무 지나치게 경직된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는 거라고 비판 받을까? 물론, 불안을 해소하는 데 있어서 종교의 힘을 빌리라고 얘기하는 게 오히려 더 현실적일 수는 있겠지만, 불안을 느끼게 하는 근본적 원인을 알아서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냐고 생각하는 나는 너무나 정치적인가보다. 


어쨌든, 남과 비교하지 말고,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이 정말 합당한 것인지 늘 의문을 가져 보면서, 필요할 경우 저항도 하고, 종교적 혹은 정서적 공동체를 이루어서 서로 격려하고 사랑을 베풀면서 나의 불안함을 다스려가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결론. ^^



"그러나 어른이 된다는 것은 냉담한 인물들, 속물들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우리 자리를 차지한다는 의미이다. 그런 인물들의 행동은 지위에 대한 우리의 불안의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어떤 친구나 연인은 우리가 파산을 하거나 수모를 당해도 우리를 모른 체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만(가끔은 그 말을 믿어볼 수도 있겠지), 우리가 일용할 양식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속물들의 매우 조건적인 관심이다." p.27


"속물의 독특한 특징은 단순히 차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인간의 가치를 똑같이 본다는 것이다... 속물의 일차적 관심은 권력이며, 권력구조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리고 순식간에 속물의 존경 대상도 바뀌기 때문이다." p.29


"이 문제를 이해하려다 보면 결국은 두려움이 모든 일의 근원이라는 느낌이 든다. 자신의 자리에 확신을 가지는 사람은 남들을 경시하는 것을 소일거리로 삼지 않는다. 오만 뒤에는 공포가 숨어 있다. 괴로운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만이 남에게 당신은 나를 상대할 만한 인물이 못 된다는 느낌을 심어주려고 기를 쓴다." p.34


"가난이 낮은 지위에 대한 전래의 물질절 형벌이라면, 무시와 외면은 속물적인 세상이 중요한 상징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리는 감정적 형벌이다." p.38


"질투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우리가 모두를 질투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엄청난 축복을 누리며 살아도 전혀 마음이 쓰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우리보다 약간 더 나을 뿐인데도 끔찍한 괴로움에 시달리게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같다고 느끼는 사람들만 질투한다." p.57


"능력주의 체제에서는 가난이라는 고통에 수치라는 모욕까지 더해지게 된다." p.114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뮤즈는 9명인데, 그들은 각각 특수한 재능을 통제하거나 자기 멋대로 나누어 준다...... 이 가운데 어느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었든 그 사람은 자신의 재능이 진정한 자기 것이 결코 아니며, 이 예민한 신들의 마음이 바뀌면 한 방에 날아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했다." p.119


"노동과 자본 사이의 투쟁은 적어도 선진국에서는 이제 마르크스의 시절처럼 맹렬하지 않다. 그러나 노동 조건의 향상과 고용 입법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여전히 자신의 행복이나 경제적 복지가 부차적으로 취급될 수밖에 없는 과정에서 도구 노릇을 하고 있다." p.134


"우리의 정신은 만족을 하려면 이런저런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외부의 목소리의 영향력에 민감하다. 이런 목소리는 우리의 영혼이 내는 작은 소리를 삼켜버리고, 긴요한 것을 정확하게 찾아내는 힘들고 까다로운 일을 방해할 수 있다." p.240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대체하고,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불안을 극복하거나 욕망을 채우려고 노력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노력은 하더라도 우리의 목표들이 약속하는 수준의 불안 해소와 평안에 이를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p.247


"사회의 목소리 큰 사람들이 선험적 진리로 여기는 견해들이 사실은 상대적인 것이고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비로소 정치적 의식이 개어난다." p.255


조준현 (지은이) | 카르페디엠 | 2011-05-30


책에서 주장하는 바는 간단하다. 전체 목차에 나와 있는 8가지의 명제 중에 하나라도 동의한다면, 이미 당신은 승자의 음모에 넘어 갔다는 것. 

제도권 교육만 착실히 받고, 별다른 사회적 미디어에 노출되어 있지 않은 채, 그저 열심히 주어진 일만 하며 살아온 사람이라면 적어도 반 이상은 동의할 수 있는 것들이겠지만, 스스로 '진보'에 가깝다고 생각하며 진보논객들의 글을 한두번이라도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쉽게 동의할 수 없는 명제들이기도 하다. 

1. 한국경제는 수출로 먹고 살아야 한다. 
2. 박정희 시대 개발 방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3. 대기업 재벌이 없으면 성장은 불가능하다. 
4. 노동시간 단축은 생산성을 떨어뜨린다. 
5. 토건 사업이 국가를 부강하게 만든다. 
6. 부동산이 아니면 부자가 될 수 없다. 
7. 개인의 행복과 불행은 성적순이다. 
8. 북한 체제의 붕괴에 대비해야 한다. 

1번과 2번의 명제에서 저자는 수출주도형 정책 덕에 우리 나라가 발전해왔고, 박정희 시대의 계획/국가개입 경제 정책 하에서 우리가 고도의 성장을 달성한 건 맞으나, 이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얘기한다. 이젠 내수가 강해져야 하고, 국가가 시시콜콜 나서서 주도하는 시장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저자는 약간의 흥분을 하며 장하준과 신장섭을 지나치게 많이 언급하며 그들을 비판한다. 물론, 요즘과 같은 복잡하고 불확실한 시대에서 아무리 저명한 경제학자라 할 지라도 그 사람의 이론이 100% 맞아 떨어진다고 볼 수는 없는 거 아닐까? 이론이란 것이 우리의 현실을 100% 설명해준다면, 리스크란 것은 없을 것이고 경제의 침체 또한 있을 필요도 없고, 우리는 부동산이나 주식 때문에 울 일도 없을 테니… 어떤 경제학자의 이론이란 것은 경제의 어떤 부분을 설명할 때 타당하거나, 혹은 그 이론의 이런 부분은 의미가 있다거나 이렇게 취사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또 그래야만 하는 거 아닐까? 나는 신장섭의 책은 읽어보지도 못했고, 장하준의 책도 두어 권밖에 읽지 못했으나, 저자가 이렇게 반복적으로 언급하면서 비판할 정도로 잘못된 이론을 얘기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자는 그들을 비판함으로써 자신의 견해가 옳음을 입증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자기의 견해가 옳은 근거를 여러 수치들이나 현상들을 더 많이 설명함으로써 주장해야 할 것 같다. 지당하게 옳은 견해를 주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저명한 학자에 반대함으로써 자신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서 조금은 아쉬웠다.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해서도, 난 저자의 견해에 대체로 동의하지만 충분한 근거를 보여주지 못한 점은 여전히 아쉽다. 노동시간 단축이 생산성을 떨어뜨리지 않는다는 근거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단순하게 미국이나 네덜란드의 예를 들며, 거기는 우리보다 훨씬 적게 일하나 생산성이 훨씬 높다는 결과적인 사실만 언급할 게 아니라 뭔가 과학적이고 통계적인, 수치를 가지고 얘기해야 하는 것 아닐까? 나는 그냥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내가 누군가와 논쟁을 할 때 무기가 되어줄 수 있는, 자본가를 설득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가 부족하다. 그냥, 적게 일하고 많이 쉬니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얘기만 반복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부동산 문제의 경우도 지극히 옳은 얘기들이다. 그런데 중간에 저자는 근래의 전세값 폭등의 원인에 대해서 여러 이유를 얘기하다가 자신은 집을 소유한 사람들이, 더 이상 집값이 오르지 않아 추가적인 소득을 노릴 수가 없기 때문에 전세값을 올려서라도 소득을 보전하려고 하기 때문도 주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고 서술한다. 일면 타당성이 있는 얘기고 충분히 그럴 듯 하다. 그런데 그걸로 끝이고, 더 이상 제시하는 근거가 없다. 그냥 저자의 느낌이라고 툭 던지고 끝낼 거라면 말은 왜 꺼냈을까 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가 없다. 경제학자의 생각이니 그냥 믿어야 하나? 

지극히 옳은 얘기를 속 시원한 어투로 우리 대신 내뱉어 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고, 그런 와중에서도 간간히 미처 생각지 못했던 우리의 고정관념 아닌 고정관념을 짚어주니 다행이지만, 여전히 등을 긁다 만 느낌이다. 2% 부족한 느낌이랄까. 경제학자가 어렵지 않게 우리들의 평범한 용어로 설명해주는 건 고맙지만, 그렇다고 그 설명의 깊이까지 얕게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비판을 조목조목 맥락의 처음부터 끝까지 제시하며 반증하고 논쟁할 것이 아니라면, 굳이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저 나의 길을 주장하면 되는 것일 뿐, 누군가를 반대함으로써 나를 드러내는 게 조금은 유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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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타로 (지은이) | 송제훈 (옮긴이) | 서해문집 | 2011-11-20 | 원제 沒落先進國: キュ-バを日本が手本にしたいわけ (2009년)



작년에 의료천국 쿠바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다른 분야의 상황도 궁금해서 집어든 책이다. 쿠바만 수없이 방문해서, 일본 사회에 끊임 없이 쿠바가 보여주는 여러 긍정적인 면들을 전파하고자 애쓰는 요시다 타로가 썼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쿠바의 도시농업, 주거, 환경, 에너지, 식량, 재해방지, 의료, 교육, 문화예술 등 선진적인 실험 모델을 르포 형식으로 취재한 글이다.


쿠바에 대한 환상으로 무조건 아름다운 면만 보고 다 잘 되어간다고 말하지 않기 위해, 부정적인 면도 충분히 기술하기 위해 애쓴 점이 눈에 보인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항목마다 마지막 마무리는 쿠바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에 대해 역설하고 있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의료천국, 쿠바를 가다'에 비해서는 좀 재미 없게 읽었다. 일부는 그 책과 내용이 겹치는 탓에 더 그랬던 듯... 하지만, 쿠바의 유기농업에 대한 이야기와 주거 정책에 대한 부분은 매우 흥미로웠다. 저공비행, 여전히 모두들 고성장을 외치는 가운데 저공비행은 몰락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과연 그것이 진정한 몰락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그와 달리, 앞으로 고도의 성장을 지속할 수 있을까? 이런 저공비행 속에서도 모두 함께 행복하기 위한 길을 걷고 있는 쿠바에게 우리는 정말 배울 것이 없을까? 진지하게 자문해봐야 한다.


누구나 최저 9년간의 의무교육, 169개의 기초 행정구역에 모두 존재하는 대학, 교육비는 대학원까지 무료, 1천 명당 유아 사망률은 4.7명(미국보다도 낮다), 아이들에게 접종되는 13종류의 예방백신 가운데 12종류가 국산, 세계 유일의 수막염 B형 백신을 포함해 수준 높은 바이오테크와 의료 기술 보유, 평균수명 78세, 100개국 이상의 가난한 개발도상국 지원, 출산휴가 18주(급여 100% 지급), 추가로 엄마든 아빠든 육아휴가 40주(급여 60% 지급), 직장 복귀 후에도 매일 한 시간씩 모유 수유할 권리 보장, 임신한 시점에서 태교를 위해 6일의 유급휴가, 아이가 아프면 아이를 소아과 의사에게 데려가기 위해 월 1일의 쉴 권리 부여, 이미 1970년대 초반에 가족법으로 부부가 가사와 육아를 평등하게 부담할 것을 규정... 낮아진 식량 자급률을 해결하기 위해 국토의 도처를 경작지로 개간하고, 도시농업을 지원하며, 종자에 대한 주권을 지키기 위해 꾸준이 연구개발을 하고 있다. 낡고 노후한 주거문제가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지만, 결코 서두르지 않고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과의 충분한 교감을 통해 개선하는 프로젝트가 정부에 의해서, 건축가들의 자발적 운동을 통해서 산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든, 미봉책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근원을 찾아서 해결하려는 노력이 눈물겹다. 그렇기에 3년 전에 발생했던 태풍의 피해가 여전히 100% 복구가 안 되었으나, 3년전이나 지금이나 그 어떤 태풍이 불어와도 사망자가 발생하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이젠 누구나 GDP, 1인당 GDP라는 숫자가 커지는 것만으로 우리가 행복지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렇다면 우리가 원하는 행복은 어떤 행복일까. 그리고 어떻게 얻어질 수 있을까. 쿠바를 보면 조금은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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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 도정일 | 문정인 | 송호근 | 유홍준 | 이덕일 | 최재천 | 정재승 (지은이) | 블루엘리펀트 | 2012-03-14


월간 신동아 창간 80주년 기념으로 '한국 지성에게 미래를 묻는다'라는 주제 하에 우리 나라의 대표 지성이라 할 수 있는 8인을 초대해 매달 한번씩 강의를 했고, 이 강의를 책으로 묶었다. 사실, 책을 골라집을 때는 눈에 띄는 몇몇 사람을 보고 골랐고,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골랐다. 책을 펼치고 나서야 이게 '신동아'에서 펴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8명에 김지하가 끼어 있다는 걸 알았다. 미리 알았으면 안 샀을 수도. ㅋㅋㅋ 산 지 6개월이 넘은 것 같은데, 이제서야 읽으면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에 민망함을 느꼈다. 


송호근 교수의 강의는 딱히 인상적인 것이 없었고, 유홍준 선생이나 정재승 교수의 경우는 직접 강의를 들어본 터라 내용이 대부분 겹쳤다. 최재천 교수의 통섭론이야 다른 책에서도 많이 접했기에 또 딱히 임팩트가 없었고, 김지하는... 두페이지 읽다 넘겨버렸다. 도대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지 알 수도 없었고, 완전히 중언부언대는 듯한 느낌이랄까. 앞뒤가 안 맞는 얘기에, 무슨 사이비 교주 같은 얘기만 잔뜩 늘어 놓고 있는 듯 했다. 거참... 뭔가 그래도 성의를 표해 보려 했는데 능력 밖이었다.


문정인 교수의 '중국의 부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딱히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뭐, 중국의 부상을 주의 깊에 보면서, 한미 동맹, 북중 동맹을 어떻게 하느냐, 중국과의 외교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이냐에 우리의 미래가 달렸다는 얘기이면서, 정확한 대안을 내놓는 건 없었다. 그냥 잘 하자... 정도? 마지막 이덕일 선생과 도정일 교수의 강의가 나름 재미 있었다. 특히 조선 후기 정치사의 현재적 의의를 이야기하는데, 현재 우리 나라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왜곡된 관점의 시작이 인조반정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이 놀라웠다. 노론의 집권과, 그들이 주무르는 정치가 국가의 운명을 결정 지었고, 그들이 갈아 치웠던(?) 왕과 조선의 패망, 그리고 여전히 그들의 정신세계가 지배하는 작금의 현실까지. 이분이 썼던 책 중에 조선왕독살사건을 예전에 읽었었는데 조만간 다른 책들도 쭉 사서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도정일 교수의 경우는 인문학과 문명에 대한 성찰, 관용이라는 화두가 무척 신선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세계가 과연 문명의 세계인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강의라고나 할까.


어쨌든 이 책을 읽고 나니, 대한민국 역사에 대해서 다시 한번 제대로 보고 싶다는 욕구가 불끈불끈 솟는다!


"현재의 권력이 아무리 강해도 흘러간 과거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현재의 권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현실 정치를 잘함으로써 더욱 나은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지요. 역사학은 과거학이 아니라 미래학입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미래가 달라지는 겁니다. 현재의 권력을 가지고 과거 역사를 뒤바꾸려고 한 모든 정권, 모든 국왕은 실패했습니다. 영조가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선왕 독살설을 없애기 위해 과거의 정치에 매진했기 때문입니다. 그 와중에 사도 세자도 죽인 것입니다..." 212p.


"이인직은 이완용의 비서입니다. 이인직을 보내 "나라를 넘기면 우리에게 어떻게 해줄 것이냐라고 묻자, 고마쓰가 '귀족령을 만들어서 계속 귀족으로 대우하고 막대한 은사금으로 나라 팔아먹은 대가를 지불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에 이인직을 좋아서 돌아갑니다. 이완용이 데라우치 통감하고 협상하면서 '고종의 지위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라고 물어요. 데라우치가 '왕으로 봉할 거다'라고 하니까, 이완용이 '대공으로 하면 어떻겠느냐'라고 제안합니다." 217p


"공존은 문명의 정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문명이 정의로운 문명인지 아닌지, 문명의 거죽을 쓴 야만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은 공존의 가능성 유무이며, 공존의 정의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큰 자산이 바로 관용입니다..." 236p


"인간 존중의 사상은 지성사적 의미에서는 동서양에 걸친 오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존중의 토대가 되고 근거가 될 인권 개념을 사상 차원을 넘어 제도와 법률로 옮겨 내고 정착시킨 것은 근대 문명의 업적입니다. 자유 민주주의와 근대 헌법은 인권 개념을 '양도할 수 없는 기본 권리'로 제도와 법률에 정착시킨 근대 문명의 대표적인 업적입니다." 24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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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 지승호 (지은이) | 꾸리에 | 2012-04-12



인터뷰 작가 지승호와 박노자 교수의 대담. 

박노자는 우리 나라에서 몇 안 되는 대놓고 좌파하는 지식인 중 한 명이라고 감히 말해본다. 지승호도 에필로그에서 말하듯이, 그렇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을, 특히 자신을 진보적이라 이야기 하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기도 한다. 박노자의 입장에서는 그 사람들이 전혀 좌파도 아니고 진보적이지도 않다고 얘기하기 때문이다. 불편해 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 사람들도 자기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 내가 스스로 깨닫고 있는 나의 약점을 후벼팔 때의 아픔이랄까.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이 귀화를 해서 우리 나라의 국민인 것이 다행스럽게 여겨지기도 한다. 누군가는 한곳에 꿋꿋이 서서 싫은 소리를 해줘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니까.


대선 내내 고민을 했었다. 누굴 찍어야 할까. 친구 말대로, 내가 어차피 문재인을 좋아한 것도 아니었고, 민주당을 신뢰한 것도 아니었는데 왜 고민해야 할까부터 시작해서, 정말 별 것도 아닌 수천만표 중에 한표지만 그래도 누가 과연 '내 후보' 인가를 생각하느라 머리도 아팠고, 그러다 다시 주적이 누구인지를 고르다가, 다시 내 편을 찾다가, 다시 차악을 고르다가, 그러다 혼자 짜증내다가... 그리고 남들과 마찬가지로 대선이 끝나고 멘붕을 겪었다. 그리고 생각한 것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집어든 '좌파하라'. 사실 내가 이 책을 산 것도 잊고 있다가, 사무실 이사를하느라고 짐을 싸면서 발견했다. 그것도 멘붕에 빠진 바로 그날. 무슨 계시인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집어 들었고, 나름 힐링이 되었다.


물론, 최악보다는 차악이 나은 거겠지만, 얼마나 나을 것이라 기대를 했던 것일까. 거기서부터 다시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었다. 박근혜가 노무현 프레임을 걸고 들어온 것도, 문재인이 결국 그 프레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도 단순한 정치공학의 문제가 아니라, 참여정부의 분명한 실정 때문이었던 것이고, 참여정부에 대한 안 좋은 기억들이 여전히 많은 사람들 머리를 헤집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여러 수치를 가져와서 경제 지표가 나쁘지만은 않았다라고 얘기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식자층이나 있는 사람들이 느끼고 알 수 있는 지표일 뿐, 특히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참여정부는 또다른 MB에 다름 아니었으니까.


일본에도 극우 정부가 들어섰고, 우리가 늘 부러워하고, 본받아야 한다고 그렇게 얘기하는 북유럽에도 극우 정당의 지지율이 올라가고 있다고 한다. 박노자는 그것을, 좌파 진영의 무능 때문이라고 힘주어 얘기한다. 좌파가 우향우를 하면 할수록, 거대담론만 뇌까릴 수록, 현실과 타협할 수록, 현실의 절망을 극복하고자 하는 민중들에게 아무런 대안을 주지도 못하고, 무엇이 문제의 근원인지를 알려주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결국 서로를 탓하거나, 내 울타리 밖을 탓하게 되고 그것이 극우주의에 대한 열광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이다.


박노자가 생각하는 좌파, 박노자가 생각하는 진보, 박노자가 생각하는 민주주의를 교육, 남북관계, 정치, 스타 지식인, 도덕성, 투표...등을 매개로 조근조근 잘도 풀어냈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 박노자는 어쩌면 대선의 결과까지도 짐작하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물론, 내가 박노자의 의견에 100% 동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여전히 나도 불편한 구석이 있고, 생각을 달리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자기가 우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이 한번쯤 읽어볼 필요가 있다. 정말 좌파가 뭔지, 진정한 민주주의란 무엇인지, 그리고 진정 내가 원하는 사회는 어떤 것인지, 그리고 나는 무엇을 할 것인지 차분히 정리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진짜 민주주의는, 우선 착취자들의 선거 왜곡(정치자금 증여 등)의 완전한 차단을 의미하며, 그 다음에는 무엇보다 숙련공 정도의 보수를 받고 일절 특권이 없는, 언제나 유권자에 의해서 소환이 가능한 민중의 대표자들이 매 순간 유권자들의 감시와 견제, 지도를 받고 유권자들의 이해관계를 충실히 실행하는, 조금 더 '소비에트'(노동자 평의회)와 같은 유형의 제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지금으로서는 그러한 진짜 민주주의는 꿈만 꿀 수 있는 것이고, 우리가 통상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현 제도는 '짝퉁' 물건에 불과합니다."


"숙제는 추가 학습노동으로서의 성격도 있지만, 무엇보다 계급적인 차이를 만들어내는 기제로서의 성격이 강하죠... 저야 정신노동을 하니까 집에 와서 이런 추가 노동을 할 여력이 있지만, 8시간 동안 공사장에서 벽돌 나르고 나서 아이 숙제를 도와준다고 생각해보세요... 제 아내만 해도 아들의 노르웨이어 작문 및 문법, 맞춤법 숙제를 도울 능력이 거의 없는데, 비서구 1세 이민자 학부모들이 다 그럴 것입니다... 숙제를 철폐하면 이와 같은 상류층, 중류 상부층의 아이들만의 '프리미엄'이 사라지고 그나마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기회가 약간 더 주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차라리 학교에 있는 시간에 아이들이 필요한 일을 다 하고, 집에서는 운동하고 놀고 보고 싶은 것만 보라는 겁니다... 학생도 학습노동자인데, 노동자는 노동하는 장소에서 노동을 해야지, 집에서까지 노동을 한다는 것은 학교에 의한 개인 시간의 식민화예요. 노동시간과 개인 시간이 구별되어야 합니다."


"극우파의 대중화는 급진적 좌파의 고학력자로서의 오만과 무능, 그리고 온건 좌파의 신자유주의적 배신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 상황의 해결 방법은? 무엇보다 혁명적, 계급적 좌파의 부활과 대중성 확보입니다. 적색당과 같은 급진 좌파 정당 사람들은 공장 노동자들을 상대하는 방법을 다시 배워야 하고, 그들의 요구 예컨대 제조업 보호 정책이나 해고 방지 등을 우선시할 줄 알아야 하고, 그들에게 오늘날의 상황에서 급진적 변혁이 무엇인지 이야기할 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브 나로드', 즉 인민 속으로 가야 하는 것이죠."


"기자들은 북조선 길거리에서의 집단 오열 장면을 매우 '이국적으로' 여겼습니다. 동시에, '독재자를 위해 꼭 울어야 하는' 북조선인들을 불쌍히 여기려는 분위기도 강했습니다. 그렇다면 6년 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돌아가셨을 때 그를 위해서 울었던 남한을 위시한 전 세계 가톨릭 신도들은 과연 어떻게 봐야 합니까?..... 가족들과 '혈족' 사이의 중간단위가 바로 사회적 이익집단이나 보스에 의해서 주도되는 정파 같은 집단인데, 이와 같은 관계 역시 우리는 의사 가족의 개념으로 파악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즉, 선배나 보스를 '가족의 어른', '형'으로 파악한 나머지, 그만큼 비판적 사고는 그 자리에서 마비되고 맙니다...... 몇 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비명에 돌아가셨을 적에 전국의 분향소들을 메운 인파들을 생각해보시지요. 그때... 노무현이란 정치인이 이라크 침략과 아프간 침략과 같은 초대형 국제범죄를 적극 방조해 종범으로 나섬으로써 한국 역사를 영원히 더럽혔다는 점이나, 노무현이야말로 한미 FTA 발안, 추진 과정을 소신껏 주도했다는 점을 설득시킬 수 있겠습니까?"




김수경 (지은이) | 자음과모음 | 2012-10-15


아버지의 폭력과 가정 불화에 못이겨 가출한 아이가 대학로 거리의 아이가 되고, 거기서 히로라는 친구를 만나 그 아이의 부탁으로 지리산 기슭 마을로 갔다가, 원인도 모른 채 양아치들에게 쫓겨 산으로 도망가게 되면서 전개되는 이야기. 아이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리듬감을 주변의 온갖 사물로 표현하면서 북치는 사람이라는 뜻의 '고수'라고 불리게 되는데, 그 아이가 대학로에서 보낸 이야기와, 산 속에서 만난 할머니와 겪게 되는 이야기가 큰 두 개의 줄기를 형성하며 전개된다.


거리의 아이들을 떠올렸을 때 연상되는 것은 어쩌면 뻔한 것들이다. 불량, 노숙, 더러움, 범죄, 가출, 문제아, 폭력... 하지만, 그건 일찌감치 사회의 규범과 일반적인 표준에 틀 지워진 어른들의 관점일 뿐, 그들의 세상에는 분명한 이유도 있고 그들의 방식이 있고 그들의 질서가 있을 것이다. 그 무리 속에서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와, 그들의 목소리... 세상에 대한 사랑,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아니면 이런 글이 나올 수는

 없을 터... 사람들이 외면하고 손가락질하는 대상들을 속 깊은 애정으로, 그들의 눈 높이에서 대변해주는 이야기가 너무도 흥미로와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 지 궁금해서 쉽게 중간에 접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단순한 가출 청소년들의 이야기라고만 단정 짓는 것은 금물. 저 멀리 캄차카 반도와, 만주 벌판, 그리고 백두대간을 따라 지리산까지의 긴 여행, 여행에 버무려지는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들까지... 개인적으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인 할머니. 결국 이 땅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모든 아이들을 감싸 안아야 하는 건 기성 세대인 거다. 결국 누구나 다 그 시기를 통과하면서 크든 작든 아픔을 겪어보지 않았던가. 꼭 그렇게 파란 만장한 삶을 살아온 할머니만이 감싸안을 수 있는 건 아닐게다. 조금 더 길게 살아오면서, 조금 더 많은 경험을 한 우리가 그들의 피난처가 되고, 그들을 강하게 만들어줘야 하는 거 아니겠는가. 


"쯧쯧쯧. 하긴 사람이 그렇더라. 살다 보면 훌쩍 큰 걸음을 내딛어야 할 때가 있지. 그걸 못 내딛으면 그냥 그렇게 굳어버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끔 딱 굳어버리지." - 237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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