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 | 지승호 (지은이) | 꾸리에 | 2012-04-12
인터뷰 작가 지승호와 박노자 교수의 대담.
박노자는 우리 나라에서 몇 안 되는 대놓고 좌파하는 지식인 중 한 명이라고 감히 말해본다. 지승호도 에필로그에서 말하듯이, 그렇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을, 특히 자신을 진보적이라 이야기 하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기도 한다. 박노자의 입장에서는 그 사람들이 전혀 좌파도 아니고 진보적이지도 않다고 얘기하기 때문이다. 불편해 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 사람들도 자기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 내가 스스로 깨닫고 있는 나의 약점을 후벼팔 때의 아픔이랄까.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이 귀화를 해서 우리 나라의 국민인 것이 다행스럽게 여겨지기도 한다. 누군가는 한곳에 꿋꿋이 서서 싫은 소리를 해줘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니까.
대선 내내 고민을 했었다. 누굴 찍어야 할까. 친구 말대로, 내가 어차피 문재인을 좋아한 것도 아니었고, 민주당을 신뢰한 것도 아니었는데 왜 고민해야 할까부터 시작해서, 정말 별 것도 아닌 수천만표 중에 한표지만 그래도 누가 과연 '내 후보' 인가를 생각하느라 머리도 아팠고, 그러다 다시 주적이 누구인지를 고르다가, 다시 내 편을 찾다가, 다시 차악을 고르다가, 그러다 혼자 짜증내다가... 그리고 남들과 마찬가지로 대선이 끝나고 멘붕을 겪었다. 그리고 생각한 것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집어든 '좌파하라'. 사실 내가 이 책을 산 것도 잊고 있다가, 사무실 이사를하느라고 짐을 싸면서 발견했다. 그것도 멘붕에 빠진 바로 그날. 무슨 계시인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집어 들었고, 나름 힐링이 되었다.
물론, 최악보다는 차악이 나은 거겠지만, 얼마나 나을 것이라 기대를 했던 것일까. 거기서부터 다시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었다. 박근혜가 노무현 프레임을 걸고 들어온 것도, 문재인이 결국 그 프레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도 단순한 정치공학의 문제가 아니라, 참여정부의 분명한 실정 때문이었던 것이고, 참여정부에 대한 안 좋은 기억들이 여전히 많은 사람들 머리를 헤집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여러 수치를 가져와서 경제 지표가 나쁘지만은 않았다라고 얘기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식자층이나 있는 사람들이 느끼고 알 수 있는 지표일 뿐, 특히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참여정부는 또다른 MB에 다름 아니었으니까.
일본에도 극우 정부가 들어섰고, 우리가 늘 부러워하고, 본받아야 한다고 그렇게 얘기하는 북유럽에도 극우 정당의 지지율이 올라가고 있다고 한다. 박노자는 그것을, 좌파 진영의 무능 때문이라고 힘주어 얘기한다. 좌파가 우향우를 하면 할수록, 거대담론만 뇌까릴 수록, 현실과 타협할 수록, 현실의 절망을 극복하고자 하는 민중들에게 아무런 대안을 주지도 못하고, 무엇이 문제의 근원인지를 알려주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결국 서로를 탓하거나, 내 울타리 밖을 탓하게 되고 그것이 극우주의에 대한 열광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이다.
박노자가 생각하는 좌파, 박노자가 생각하는 진보, 박노자가 생각하는 민주주의를 교육, 남북관계, 정치, 스타 지식인, 도덕성, 투표...등을 매개로 조근조근 잘도 풀어냈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 박노자는 어쩌면 대선의 결과까지도 짐작하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물론, 내가 박노자의 의견에 100% 동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여전히 나도 불편한 구석이 있고, 생각을 달리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자기가 우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이 한번쯤 읽어볼 필요가 있다. 정말 좌파가 뭔지, 진정한 민주주의란 무엇인지, 그리고 진정 내가 원하는 사회는 어떤 것인지, 그리고 나는 무엇을 할 것인지 차분히 정리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진짜 민주주의는, 우선 착취자들의 선거 왜곡(정치자금 증여 등)의 완전한 차단을 의미하며, 그 다음에는 무엇보다 숙련공 정도의 보수를 받고 일절 특권이 없는, 언제나 유권자에 의해서 소환이 가능한 민중의 대표자들이 매 순간 유권자들의 감시와 견제, 지도를 받고 유권자들의 이해관계를 충실히 실행하는, 조금 더 '소비에트'(노동자 평의회)와 같은 유형의 제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지금으로서는 그러한 진짜 민주주의는 꿈만 꿀 수 있는 것이고, 우리가 통상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현 제도는 '짝퉁' 물건에 불과합니다."
"숙제는 추가 학습노동으로서의 성격도 있지만, 무엇보다 계급적인 차이를 만들어내는 기제로서의 성격이 강하죠... 저야 정신노동을 하니까 집에 와서 이런 추가 노동을 할 여력이 있지만, 8시간 동안 공사장에서 벽돌 나르고 나서 아이 숙제를 도와준다고 생각해보세요... 제 아내만 해도 아들의 노르웨이어 작문 및 문법, 맞춤법 숙제를 도울 능력이 거의 없는데, 비서구 1세 이민자 학부모들이 다 그럴 것입니다... 숙제를 철폐하면 이와 같은 상류층, 중류 상부층의 아이들만의 '프리미엄'이 사라지고 그나마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기회가 약간 더 주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차라리 학교에 있는 시간에 아이들이 필요한 일을 다 하고, 집에서는 운동하고 놀고 보고 싶은 것만 보라는 겁니다... 학생도 학습노동자인데, 노동자는 노동하는 장소에서 노동을 해야지, 집에서까지 노동을 한다는 것은 학교에 의한 개인 시간의 식민화예요. 노동시간과 개인 시간이 구별되어야 합니다."
"극우파의 대중화는 급진적 좌파의 고학력자로서의 오만과 무능, 그리고 온건 좌파의 신자유주의적 배신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 상황의 해결 방법은? 무엇보다 혁명적, 계급적 좌파의 부활과 대중성 확보입니다. 적색당과 같은 급진 좌파 정당 사람들은 공장 노동자들을 상대하는 방법을 다시 배워야 하고, 그들의 요구 예컨대 제조업 보호 정책이나 해고 방지 등을 우선시할 줄 알아야 하고, 그들에게 오늘날의 상황에서 급진적 변혁이 무엇인지 이야기할 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브 나로드', 즉 인민 속으로 가야 하는 것이죠."
"기자들은 북조선 길거리에서의 집단 오열 장면을 매우 '이국적으로' 여겼습니다. 동시에, '독재자를 위해 꼭 울어야 하는' 북조선인들을 불쌍히 여기려는 분위기도 강했습니다. 그렇다면 6년 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돌아가셨을 때 그를 위해서 울었던 남한을 위시한 전 세계 가톨릭 신도들은 과연 어떻게 봐야 합니까?..... 가족들과 '혈족' 사이의 중간단위가 바로 사회적 이익집단이나 보스에 의해서 주도되는 정파 같은 집단인데, 이와 같은 관계 역시 우리는 의사 가족의 개념으로 파악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즉, 선배나 보스를 '가족의 어른', '형'으로 파악한 나머지, 그만큼 비판적 사고는 그 자리에서 마비되고 맙니다...... 몇 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비명에 돌아가셨을 적에 전국의 분향소들을 메운 인파들을 생각해보시지요. 그때... 노무현이란 정치인이 이라크 침략과 아프간 침략과 같은 초대형 국제범죄를 적극 방조해 종범으로 나섬으로써 한국 역사를 영원히 더럽혔다는 점이나, 노무현이야말로 한미 FTA 발안, 추진 과정을 소신껏 주도했다는 점을 설득시킬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