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엘 바칸 (지은이) | 이창신 (옮긴이)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05-13 | 원제 Childhood Under Siege (2011년)


얼마 전 회사에서 'customer centric innovation'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자료를 찾아 정리할 기회가 있었다. 아주 생소한 개념은 아닌데, 예전에는 제품이나 상품 자체에 집중해서 그것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를 기술자 중심으로 혁신을 해왔다면, 관점을 좀 달리해서 고객의 관점에서 생각하여 혁신의 지점을 찾아보라는 것이 그 내용이다. 

그 중에 BBVA라는 스페인 은행의 사례가 있었다. 이 은행은 2020년을 대비한 비전을 세우면서, 회사의 상품들을 혁신하기 원했으나 2020년의 주 고객층은 지금의 어린아이들이라는 게 문제였다. 그들이 어떤 식으로 소비를 하고, 어떤 식으로 금융 거래를 할 지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생각해낸 것이 바로 웹킨즈라는 인터넷 게임이었다. 이 게임은 쉽게 말해 동물을 키우는 게임인데, 모든 게임들이 그러하듯 단순히 키우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먹이, 더 좋은 환경, 더 좋은 옷 등을 위해서 추가적으로 돈을 쓰게 만드는 게임이다. 그들은 아이들이 이 게임을 어떤 식으로 하는 지를 세밀하게 관찰해서, 이들이 나중에 어떤 방식의 금융소비를 하게 될 지를 예측했고, 그에 따라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여기까지는 고객의 취향을 파악하는 방법, 고객의 필요를 알아내는 방법에 대한 평범한 사례일 수 있겠지만,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해보면 결국 BBVA는 웹킨즈를 운영하는 회사에서 이미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는 고객의 성향에 대해서 너무 힘들게 알아낸 것일 수도 있다. 이 웹킨즈는 아이들의 경쟁의식, 동물에 대한 애정, '동물이 죽어가고 있다'는 메세지에 대해 아이들이 보이는 두려움과 즉각적인 반응, 적은 금액의 소비 정도는 부모에게 얼마든지 얻어낼 수 있다는 사고방식 등을 이용해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BBVA에게 웹킨즈라는 것은 자신들의 사업을 어떻게 전개해나갈 것인지, 장기적인 사업 방향성을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고마운 툴일 수 있겠지만, 수많은 부모들에게 이 웹킨즈는 아이들을 컴퓨터에 얽매이게 하고, 부모들에게 반항하게 만들고, 왜곡된 애정의 표출을 조장하고, 결국엔 중독에 빠지게까지 만드는 정말 나쁜 게임일 뿐인 것이다. 

이 책은 이렇게 아이들을 고객으로 하는, 그래서 정말 아이들의 심리를 정확하게 읽어서, 진정한 Customer-Centric Innovation을 실천하는 기업들에 대한 보고서이다. 이윤 창출을 가장 기본이자 최고의 선으로 생각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책에 나온 사례들은 충분히 참조할 만 하다. 아이들을 돈 벌이의 수단으로만 바라보는 기업이 존재하는 한, 부모들은 한 시도 방심할 수가 없다. 얼마 전에 문제가 된 남자 아이들의 '쿠키런 딱지' 만 해도 그렇다. 아이가 좋아하고 원하니까 어쩔 수 없이 사주지만, 난 그 재질이 어떤 것일 지 심히 의심스럽다. 하지만 회사는 절대 그 재질을 밝히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먹히고 입히는 것에 예민한 엄마들의 마음을 건드려 자연주의, 유기농 온갖 것들을 갖다 붙이지만, 결국 그것들에 화학첨가물이 정말 어느 정도 들어가 있는 지에 대해서는 번번이 속이거나 감춘다. 도대체 부모들은 무엇을 믿고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주어야 하는 걸까?

나는 아이들의 정신적/신체적 건강에 관해서는 유난 떠는 엄마가 되고 싶다. 하지만 번번이 한계에 봉착하는데 지은이는 이 상황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한다. 


"부모는 아이가 먹을 음식을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게 맞지만, (1)부모의 선택은 아이가 사달라고 조르는 것에 크게 영향을 받을 뿐 아니라(그리고 부모는 아이의 기분이나 가족의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을 뿐 아니라) (2)아이가 건강에 해로운 음식을 사달라고 조르는 이유는 업계가 아이들의 식욕을 자극하는 광고를 끊임없이 해댔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아이들에게 무엇을 먹일지는 부모가 결정하지만, 그 결정은 업계의 전략에 조정 당하기 마련이다. 업계는 수십 억 달러를 들여 부모의 선택에 압력을 넣고 아이들의 건강보다는 업계의 이익에 도움이 될 선택을 하게 한다."


혹자는 그렇게 말한다. 우리도 다 그렇게 컸다고. 그러니 너무 유난 떨지 말라고. 하지만 난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할 때마다 내가 하는 말은 '임계점'에 대한 것이다. 우리 부모님 세대들은 거의 청장년 층이 될 때까지 자연에 가까이 살았었다. 그리고 우리 세대도 풍족하게 먹거나, 풍족하게 입고, 온갖 다양한 장난감과 매체에 둘러 싸여 살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 어린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아주 어릴 적부터, 아니 태아에서부터 이미 현대 사회의 온갖 나쁜 환경에 접하게 된다. 그렇기에 몸속에 쌓이는 독소와 머리에 쌓이는 가치체계가 임계점에 도달하는 시기가 훨씬 빨라질 수 있고, 결국 그 지점을 넘어 폭발하게 된다면 온갖 질병과 폭력 들로 발현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얘기한다.


"어른은 특정 화학물질에 다량으로 노출되어도 부작용이 없을지언정 유아, 어린이, 십대, 특히 태아는 미량에 노출되어도 “평생토록 심각한 부작용”에 시달릴 수 있다. 트러샌드가 “극도로 취약한 시기”라고 말한 어린 시절은 몸의 여러 기관이 발달하는 시기라 이때 생긴 손상은 복구하기 어렵다."


결국은 타이밍인 것이다.

그들의 마케팅은 집요하고 무섭다. 약한고리를 건드려서 서서히 파고들어와 결국엔 점령하고 만다. 그들의 그러한 이윤 위주의 마케팅은 결국 교육까지 집어 삼키고 있다. 아직 우리 나라는 그래도 공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좀 더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이미 미국은 공교육의 영역까지 민간 기업들이 점령하기 시작을 했다. 그래서 더욱 두렵다. 늘 미국이나 일본을 따라가려고만 하는 우리 나라가 기업의 이윤 추구의 관점에서 교육을 바라보고 완전히 바꾸어버리는 건 시간 문제일 것 같아서이다. 그리고 이미 자율형 사립고나 사학 재단, 대학평가제, 일제고사 등을 통해 조짐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으니 말이다. 

과연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저자는 낙관적으로 결론 짓는다. 


"역사의 다른 지배 조직들처럼 거대 기업도 청소년의 활력을 자기 목적에 이용해 그 활력이 자사 이익을 해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역사가 되풀이해 우리에게 가르쳐준 사실은 청소년의 이상과 활력은 영원히 방향을 잃거나 희석되거나 억압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이상과 활력은 결국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힘으로 거듭나게 마련이다. 내가 미래에 대해 희망을 갖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물론 동의한다. 하지만 청소년의 활력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힘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역할이 너무나 중요하다. 흔한 예로 핸드폰의 전자파처럼, 이게 "나쁜 영향을 준다는 명백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성숙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사용하게 해도 된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나쁜 영향이 전혀 없다는 명백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사용을 금해야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부모들의 다짐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예방적으로 금할 것들은 금하도록 규제를 만들고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과도한 마케팅을 금지하도록 정부의 정책을 바꾸어내는 것 또한 부모들의 몫이 되어야 한다. 우리 아이는 지금 잘 지내고 있고 건강하니까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아이들"이라는 관점에서, 이 아이들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우는 일은 결국 부모들이 해야 할 의무인 것이다.


[본문 중에서]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의 전략으로 부모의 선택은 제한되고 좌절되었고, 아이를 보호하는 부모의 능력은 점점 약해졌다. 예를 들어, 부모는 아이에게 건강에 좋은 음식을 먹이기로 선택할 수 있겠지만, 아이들이 건강에 해로운 음식을 찾게 하는 강력한 마케팅에 대해서는 어떤 선택도 할 수 없다. 부모는 아이에게 무독성 제품을 사주기로 선택할 수 있겠지만, 아이들을 산업용 화학물질에 노출시키는 다른 많은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선택도 할 수 없다. 부모는 아이들이 미디어에 나오는 폭력을 덜 보게 하기로 선택할 수 있겠지만, 아이들의 삶에 그러한 폭력이 갈수록 만연하고 그 정도가 잔인해지는 상황에 대해서는 어떤 선택도 할 수 없다. (p. 26)

그런데도 어린이 마케팅은 아이와 부모의 유대를 끊는 기술을 개발한다. "아이들을 아이들답게"라는 신조에 충실하려면 아이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유대를 존중하고 북돋워야 하는데도 마케팅은 손쉬운 돈벌이를 위해 이런 유대를 약화시킨다. 어린이 마케팅의 진짜 신조는, 즉 어린이 마케팅의 야심과 활동을 정확히 보여주는 신조는 "아이들을 아이들답게"가 아니라 "우리가 당신 아이들을 간섭하도록"이라고 해야 옳다. 또한 어린이 마케팅이 아이들을 손아귀에 넣은 뒤에 아이들과 함께, 그리고 아이들을 상대로 어떤 행위를 하는지 생각한다면 분노할 이유는 더 분명해진다. (p. 65)

부모는 아이가 먹을 음식을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게 맞지만, (1)부모의 선택은 아이가 사달라고 조르는 것에 크게 영향을 받을 뿐 아니라(그리고 부모는 아이의 기분이나 가족의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을 뿐 아니라) (2)아이가 건강에 해로운 음식을 사달라고 조르는 이유는 업계가 아이들의 식욕을 자극하는 광고를 끊임없이 해댔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아이들에게 무엇을 먹일지는 부모가 결정하지만, 그 결정은 업계의 전략에 조정 당하기 마련이다. 업계는 수십 억 달러를 들여 부모의 선택에 압력을 넣고 아이들의 건강보다는 업계의 이익에 도움이 될 선택을 하게 한다. (p. 90)

현재 규제의 기초가 되는 전통적 독성학은 16세기에 파라켈수스가 독성학을 만들면서 처음 말한 대로 “독이 되고 안 되고는 용량에 달렸다”라는 추정에 근거한다. 따라서 특정 화학물질이 즉각적이고 눈에 보이는 부작용을 가져온다고 증명된 수치가 있을 때, 그 수치 미만은 ‘안전하다’고 규정한다. 이는 성인과 소아의 차이를 규정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특히 이미 발달한 생물 조직이 아닌 ‘발달 중’인 생물 조직이 화학물질에 노출될 때의 영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어른은 특정 화학물질에 다량으로 노출되어도 부작용이 없을지언정 유아, 어린이, 십대, 특히 태아는 미량에 노출되어도 “평생토록 심각한 부작용”에 시달릴 수 있다. 트러샌드가 “극도로 취약한 시기”라고 말한 어린 시절은 몸의 여러 기관이 발달하는 시기라 이때 생긴 손상은 복구하기 어렵다. (p.156)

과학자들은 BPA 같은 화학물질이 소량으로도 신체 기관 발달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그 정확한 과정을 이제야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때 중요한 요소는 타이밍과 호르몬이다. 신체 조직이 제대로 발달하고 작동하려면, 태아기와 어린 시절에 복잡한 세포 분열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수십억 회 일어나야 한다. 그러려면 기관 발달을 관장하는 유전자가 제때 켜졌다 꺼져야 하는데, 이는 그 스위치를 움직이는 호르몬이 정확한 순서에 따라 분비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p.158)

아이들은 바닥 가까이에서 생활하고 많은 시간을 바닥과 땅에서 보내는 탓에 화학물질로 가득한 가정 내 먼지에, 그리고 화학물질에 흠뻑 절어 있는 잔디에 쉽게 노출된다. 아이들은 물건을 입에 넣고 끊임없이 플라스틱을 만지는 통에, 그리고 몸이 작다 보니 화학물질에 노출되는 확률이 어른보다 높다. 아직도 발달 중인 아이들의 몸은 신진대사 과정에서 독을 제거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그리고 자궁에서 수백 가지 화학물질에 노출된 탓에 태어날 때 이미 그 물질에 절어 있는 상태다. 최근에 아기 10명의 제대혈을 조사한 결과 평균 200가지 산업용 화학물질이 검출되었는데, 그 중 상당수가 발암물질 또는 신경 독성 물질이거나 선천성 결함과 비정상적 발달을 유발하는 물질이었다. (p.163)

생물에서 일어나는 복잡하고 다양한 과정을 이해하는 현재의 지식수준으로는 각 화학물질이 아이들의 건강에 미치는 부작용을 일일이 이해하기가 한마디로 불가능하다. 부작용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해당 화학물질에 노출된 시간, (나이, 성별, 선천성, 후천성, 사회 환경, 일반적 건강 상태 등에 따른) 민감성의 개인차, 노출된 양, 노출 경로, 서로 다른 화학물질 사이의 상호작용 등 고려해야 할 조합이 끝도 없다. 그렇다 보니 완벽한 결론을 내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거나 적어도 가까운 시일 안에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의심은 늘 존재하기 마련이며, 업계의 소망대로 모든 의심이 제거된 뒤에 조치를 취한다면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p.184)

랜피어를 비롯한 수많은 아동 환경보건 전문가가 말하는 해결책은 (적어도 원칙 상으로는) 간단하다. ‘완벽한 증거’ 원칙을 ‘예방’ 원칙으로 바꾸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예컨대 BPA나 일부 프탈레이트 또는 PBDEs 같은 화학물질이 건강에 해롭다는 절대적 증거는 없더라도 해로울 수 있는 다른 화학물질 수천 가지도 체계적으로 검사하며, 새로운 화학물질이 나오면 판매를 허용하기 전에 예방 차원에서 의무적으로 위해성 검사를 실시하는 것이다. 이런 일에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 업계는 자발적으로 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을뿐더러 부모가 직접 나서기에는 문제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p.186)

르네상스 2010은 시카고상공인클럽으로 대표되는 시카고의 비즈니스 엘리트들이 만든 계획이다……르네상스 2010에 나타난 “민간 부문의 전망’의 중심에는 세가지 기본 사고방식이 자리잡고 있다. 첫째, 실패한 학교는 실패한 기업처럼 폐쇄되어야 한다. 둘째, 실패(또는 성공)를 가늠하는 척도는 표준화한 시험으로 학생들의 성적을 알아보는 것이다. 셋째, 신설되는 학교는 민간 기구가 운영해야 한다. 르네상스 2010에 따라 60여개 학교가 문을 닫았고, 그 자리에 학교 100개가 문을 열었다. 새로 문을 연 학교는 모두 해당 지역의 학구가 아닌 민간단쳬(특히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가 운영했다.  (p.186)

교육은 풍부하고 다차원적이어야 하며, 아이들에게 단지 숙련된 노동자가 아니라 글을 읽고 쓸 줄 알고 정보력을 갖춘 생각하는 시민으로 살 준비를 하게 해야 하고, 단지 인력으로서의 잠재력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잠재력을 충분히 키워주어야 한다는 것이 교양교육의 개념이다. 따라서 교양교육을 실시하는 학교는 학생이 자신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이해하고, 과학정치예술인문에서 개인과 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을 인식하고, 민주 시민의 필수 자질인 비판적 사고와 원칙 있는 행동을 할 능력을 개발하도록 해야 한다. 다이앤 라비치는 “제대로 교육 받은 사람은 역사, 과학, 문학, 예술, 정치에 관한 독서와 사색으로 생각이 잘 정리되어 있다”고 말한다. “제대로 교육 받은 사람은 자기 생각을 설명하고 남의 생각을 경청하고 존중할 줄 안다.” (p.223)

교육이 갈수록 표준화하면서 교양교육은 뒷전으로 밀리는 추세 뒤에 숨은 원인은 다양하고 복잡하다. 그러나 간과할 수 없는 단순한 원인 하나는 새로운 시장 친화적 개혁이 거대 기업에게 돈이 된다는 사실이다. (p.236)

"교육은 들통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불을 지피는 것이다." 시인 윌리엄 예이츠가 한 말이다. 불을 지피고, 생각을 촉발하고, 정보력을 갖춘 활력 있고 잠재력을 실현하는 개인과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 교양교육의 목적이다. 이는 개인의 자아실현을 돕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건재와 번영을 위해 민주사회가 지난 한 세기 동안 끌어안은 이상이다. 개인에게도 정보력과 사고력이 필요하듯, 민주주의에도 정보력과 사고력을 갖춘 시민이 필요하다. (p.239)

고든 브라운은 영국 총리 재임 시절에 "낡은 규제 모델"은 버려야 하며, "교육 받은 부모 소비자, 책임 있는 기업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말은 막연히 그럴듯하게 들릴지 몰라도, 현실을 완전히 무시한 발언이다. 현실에서 부모는 "교육받은 소비자"로서 자유롭게 선택권을 행사할 수 없으며, 기업은 "책임 있게" 행동할 능력이 없다. (p.247)

좋은 부모가 되려면 선택을 할 여건을 바꿔야 하고, 기업을 비롯한 경제 주체의 손에서 아이들을 보호할 조치를 취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 다시 말해 좋은 부모가 된다는 것은 '시민으로서' 사회를 바꾸려는 집단적 노력에, 즉 민주주의에 동참해야 한다는 뜻이다. (p.251)

기업이 막대한 재원을 내놓아 세상에 좋은 일을 한다면 여러 활동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공짜 물건에 트집 잡지 말라"는 속담과 일맥상통하는 주장이다. 그런데 그 공짜 물건이 트로이 목마라면, 안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따져보는 것이 순리다. 기업이 사회운동과 환경운동에 '공짜 물건'을 내놓았다면, 직원들의 의도가 아무리 순수해도 금전적 이익을 꾀하려는 계산된 전략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기업은 자사를 선한 힘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의도로 이런 활동을 벌이는데, 이들의 주요 활동이 그 반대일 때는 더욱 그렇다. (p.256)

역사의 다른 지배 조직들처럼 거대 기업도 청소년의 활력을 자기 목적에 이용해 그 활력이 자사 이익을 해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역사가 되풀이해 우리에게 가르쳐준 사실은 청소년의 이상과 활력은 영원히 방향을 잃거나 희석되거나 억압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이상과 활력은 결국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힘으로 거듭나게 마련이다. 내가 미래에 대해 희망을 갖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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