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은이) | 김욱동 (옮긴이) | 민음사 | 2003-05-06 | 원제 The Great Gatsby (1925년)


많은 사람이 궁금해 했다. 

"책은 다 읽었어. 그런데 개츠비가 왜 위대하다는 거지?"

영화도 안 보고 책도 안 본 내가 제목으로부터 유추한 느낌은 일종의 '대부'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의 저런 의문을 접하고나니 너무나도 궁금해졌다. 그리고 마침 영원한 꽃미남 배우일 줄로만 알았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을 맡은 동명의 영화가 개봉이 되었고, 출판사에서는 너도나도 새로운 개정판을 출간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쇼핑의 단점은 우유부단한 내 성격을 만나서 극대화된다. 여러 출판사의 책을 놓고 끊임없는 비교 분석... 결국 원래 처음 출간했던 번역가가 다시 교정을 봐서 새로 출간판 민음사의 책과 소설가 김영하가 번역한 책을 놓고 저울질을 했다. 알라딘에서 제공한 미리보기를 놓고 비교하다가, 비교적 '각주'가 충실하게 달린 민음사의 책을 선택했다. 아무래도 1900년대 초반의 미국을 배경으로 한다면 단어 하나에도 우리가 전혀 알 수 없는 다른 의미들이 숨겨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또한 소설가의 번역은 지나친 의역으로 원본의 맛을 깎아낸다는 평도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막상 다 읽고 나니, 각주를 충실히 읽으며 책을 읽지도 않았을 뿐더러 스토리에 집중하다보니 시대상 또한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그렇다면, 소설을 소설가가 번역한 건 어땠을까하는 궁금함이 든다. 기회가 된다면 그 번역본으로 한번 읽어보고 싶단 생각이 잠깐 들기는 했다. 

그렇다면 과연 개츠비는 위대한가? 어딘가에서 읽기로는 그 시절, 사람 이름 앞에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고 'The Great'를 붙이는 게 일종의 관습같은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이 책의 제목도 그냥 '개츠비'인 것과 다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가 제목을 붙일 때 그렇게 관습을 따라서 편하게 아무 생각없이 붙인다는 건 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읽는 내내 왜 개츠비는 위대한가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를 않았다. 어쩌면, 그로 인해 나의 책읽기는 좀 방해받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개츠비는 위대하다. 그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엄청난 부와 명예, 업적을 이룬 사람에게만 붙이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이 땅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수 많은 사람들 중에서 개츠비같은 사랑을 해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문제는 그가 사랑한 대상이, 황금모자를 쓰고 높이 뛰어오르는 것에만 관심을 두었던 사람이라는 것이 비극의 시작일 뿐, 그는 정말이지 그녀를 사랑했다. 그가 이루어낸 모든 부가 오로지 그녀를 위해서, 그녀를 되찾기 위해서였다는 건 처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오로지 사랑 하나만 바라보고 전력질주한 인생, 그런 인생을 과연 누가 헛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개츠비는 위대한 것 아닐까.

머리가 복잡하고 피곤할 땐 소설을 읽는 게 최고다. 삶에 대해서 멀찍이 떨어져 관조할 수 있게 해주는 데는 소설만한 게 없다. 남의 인생을 통해 나의 인생을 돌아보는 것, 그래서 소설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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