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간헐적으로 전쟁에 대한 작가의 경험을 접하긴 했었다. 그럴 때마다 그것은 그냥 나에게는 흘러간 역사의 일부였을 뿐이고, 지금 이 땅을 살아가고 있는 그 연배의 사람들에게 그 정도의 경험은 크게 다르거나 유별난 것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으로 무심하게 지나쳤다. 그러나 내가 그럴 수 있던 것은, 작가 스스로 그 경험으로부터 많이 걸어나와 담담해진 말투로 그냥 무심결에 한마디 툭 던지듯 얘기하는 것만을 접해서라는 것을 알았다. 절절한 아픔, 절절한 고통을 내가 느낄 수 있을 만큼 그 경험을 접해보지 못했다는 것은, 그의 작품 자체를 깊게 접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박완서의 작품 중 읽은 것은 도대체 몇권이나 될까. 수필집은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도 같다. 작가의 상상이 덧칠해지는 소설에 비해, 수필은 작가의 생각과 경험을 좀 더 날것의 형태로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이 책을 읽는 그 시간들이 '박완서'라는 작가에 대해 가장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처음의 경험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제 6월이다. 전쟁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본다. 그리고 '행복한 진로학교'에서 임영신 사모께서 얘기했던 이라크 아줌마가 떠오른다. 전쟁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냥 겪어낼 뿐, 그 고통이 어떠한 지를 알고 있기에 더 두려울 것은 없다고 했던 그 아줌마가 작가의 얼굴에 오버랩되는 것은 당연할 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인생을 저 바닥에서부터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던 전쟁. 그 전쟁이 바꾸어 놓은 인생이 어디 작가뿐이랴. 그 전쟁을 피해서 비겁하게 국민을 속이고 도망갔던 소수의 몹쓸 사람들을 제외하면, 이 땅의 민초 중에 그 엄청난 일을 일상처럼 평안하게 넘긴 사람이 몇이나 될까. 또한 그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채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아직도 사회 곳곳에 음습하게 스며 있는 빨간 것에 대한 콤플렉스가 바로 그 증거 아닐까.
이 글들은 부끄러웠던 과거를 드러내 놓기를 주저하지 않아서 또한 아름답다. 한국전쟁 직후 미국인 PX 에서 일하며 만났던 박수근 선생에 대한 이야기가 그렇다. 부족할 것 없는 집안에서 귀하게 사랑 받으며 커서, 문학소녀가 되고, 서울대에 입학했고, 그것도 대학 중의 대학이라던 인문학부에 입학했던 상류계층의 처녀가 경험했을 사회의 밑바닥, 하지만 인정할 수 없는 현실, 그 속에서 겪어야 할 괴리들... 애써 나는 '그림쟁이'들과 같은 부류가 아니라고, 그래서 나는 저들과 동등할 수 없다고 되뇌이며 자신보다 나이가 한참은 많은 사람들을 '김씨, 이씨, 박씨...'로 불러가며 하대했던 일, 그러다가 알게 된 박수근 선생의 존재. 박수근의 그림은 박완서의 '나목'을 잉태했고, 그렇게 해서 우리가 이 여류작가와 한 시대를 공유했다고 본다면, 전쟁은 그럼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책을 덮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생각나는 문장이 하나 있다. 작가가 한끼 밥이 가지는 의미를 이야기하며 아들을 잃었을 때의 고통을 이야기한다. 장례를 어떻게 치루었는 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의 큰 충격이었는데, 장례를 치르는 동안 몸저 누웠던 작가가 장례식때 죽은 아들의 친구들이 많이 왔었다는 이야기에 벌떡 일어나 앉으며 '밥이라도 잘 먹여 보냈냐'고 물었다고 한다. 흔히 우리가 하는 말처럼 '산 사람은 살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 '나는 아직도 삶이 존엄한 지 치사한 지 잘 모르겠다.'
사람의 말년이라는 게 이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평화로울까하는 생각이 들게 작가의 일상과 상념들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이 책. 나도 덮으면서 생각해 본다. 나의 삶은 지금 어떠한가...